[건강100대 궁금증] 노년기 우울증

활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지내시는 부모님이 계신가요? '괜찮다'는 말 뒤에 숨겨진 신호를 놓치지 마세요. 그 작은 신호를 발견하고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의 삶에 새로운 기쁨을 되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활력을 되찾아주는 일, 자녀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김영철(가명·74)씨는 동네에서 유명한 활력 넘치는 어르신이었습니다. 퇴직 후에도 동네 산책, 친구들과의 고스톱 모임, 가끔 봉사 활동까지 하면서 건강하고 바쁘게 지냈습니다. '나 같은 노인 드물다'며 자부심도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김씨는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책 대신 TV만 보며 시간을 보내고 좋아하던 친구들 모임에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이젠 좀 쉬고 싶어서 그래
김씨는 무심한 듯 말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자꾸만 “여기저기 쑤신다”며 애매한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아들이 몰래 챙겨본 김씨 일상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TV를 켜놓고 무기력하게 소파에 누워있기 일쑤고 전화도 자주 받지 않았습니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신체 통증 뒤에 숨은 감정 신호
노년기 우울증은 슬픔과 눈물 대신 신체 통증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몸의 불편감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김씨처럼 감정 표현이 서툰 어르신은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며 병원을 찾지만 뚜렷한 내과·외과적 원인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증상은 단순한 통증이 아닌 감정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노년기 우울증은 경도인지장애 위험을 2배나 높입니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로 이어질 수 있는 전 단계입니다. 노년기 우울증을 방치하면 인지 기능 저하와 함께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요한 건 초기 발견과 관심입니다. 김씨아들처럼 부모님의 일상 변화를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살피고 집안 청소나 요리처럼 부모님이 꾸준히 해오던 일상에 변화가 없는지 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우울감 부르는 감각 기능 저하
노년기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감각 기능 유지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활동적인 노년을 평가하는 요소로 시력, 청력, 저작(씹는 힘) 기능을 꼽는데요, 잘 보이지 않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사회 활동에 제약이 생겨 고립감이 깊어집니다.
김씨도 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보청기 착용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아들 부부는 이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보청기 착용을 권유했고 이후 김씨는 다시 이웃들과의 대화에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치아도 중요합니다. 치아가 없거나 저작 기능이 약하면 영양 섭취에 문제가 생깁니다. 외모에 자신감도 떨어져 우울감이 심해집니다. 부모님이 필요한 경우 틀니, 임플란트 등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노년기엔 경로당·노인대학 등 사람이 약
사람과의 연결은 노년기 우울을 예방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비슷한 상황의 동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큰 위안이 됩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보다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한 끼를 나누는 게 더 좋습니다. 다양한 반찬을 맛보며 영양도 챙기고 대화하면서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경로당, 복지관, 노인대학은 노년의 삶을 지탱해주는 따뜻한 관계의 공간입니다.
김씨는 아들의 권유로 동네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노인대학에 나가게 됐습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같은 나이의 친구를 만나 취미를 공유하면서 '살맛 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은 배워야 합니다. 노년기에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습관은 우울증을 악화시킵니다. 슬픔·분노 같은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두통·근육통·소화불량 같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부모님의 우울감이 깊어 치료가 필요하다면 전문가 상담을 권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울증 치료는 약물치료 외에도 대화와 면담 치료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심각한 상태로 진행하는 걸 막습니다. 노년기 우울증은 뇌의 기능적·구조적인 변화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므로 현 상태를 정확히 평가하고 조치해야 합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