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성애 대한장연구학회 회장 

정성애 교수는 임신 전 관해 상태를 충분히 유지할 것과 임신 중 약을 임의로 끊지 말 것, 수유도 대부분 가능하다는 점을 당부했다.  
정성애 교수는 임신 전 관해 상태를 충분히 유지할 것과 임신 중 약을 임의로 끊지 말 것, 수유도 대부분 가능하다는 점을 당부했다.  

"임신 중엔 약을 끊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불안한 눈빛으로,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성애 교수(이대서울병원 소화기내과·대한장연구학회 회장)는 수도 없이 들어온 질문이지만 단 한 번도 가볍게 넘긴 적 없다. 누구에게나 처음 겪는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병이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은 유산 위험이 높고, 약 선택도 제한됩니다. 염증 유발물질이 혈액을 타고 돌아다니므로 태아에게 더 해로워요."

정 교수는 국내 염증성 장 질환(IBD) 치료의 1세대 전문가이자 여성 환자 관리에서 독보적인 임상 경험과 시스템을 구축해 온 인물이다. 30년 가까이 환자들과 함께 걸어오며 국내 치료 환경의 학문적·사회적 기반을 닦아왔다. 5월 19일 '세계 염증성 장질환의 날'을 맞아 정 교수는 “이 병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동반자가  곁에 있다면, 그 길은 덜 외롭고 덜 힘들어진다. 장이 좀 아프나 잘 치료하면 합병증을 예방하며 원하는 삶의 형태를 살 수 있고, 그걸 지켜주는 게 의료진의 역할이라고 했다.

-가임기 여성 환자의 치료 특징은 뭔가. 

"식욕 저하, 설사, 복통, 체중 감소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염증성 장 질환은 대개 15~35세에 처음 진단된다. 여성에겐 이 시기가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인생의 큰 굴곡점과 겹쳐진다. 남자에게 자유로운 약이 여자에겐 조심스러울 수 있다. 가족계획 시 관해 상태(염증이 거의 없는 안정기)를 임신 전 충분히 유지하고, 임신 중에도 생물학적 제제 등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은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생물학적 제제는 염증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 자체를 차단하는 일종의 표적치료제다. 일부 약제만 제외하면 대부분 수유 중에도 안전하다. 다만 소분자 제제는 세포핵에 작용해 유전적 기전에 관여하므로 임산부에게는 권장되지 않는다. 이 약은 염증 유발 세포인 백혈구가 염증 부위로 이동 못 하도록 차단하는 원리다." 

-염증을 놔두면 문제가 뭔가.

"병이 경증이면 기본적으로 항염증제로 조절되지만 중등도 이상의 상태가 반복되거나 처음부터 심한 경우면 초기에 상급 치료제인 생물학적 제제, 소분자 제제를 써야 한다. 너무 늦으면 장의 구조가 변형되고 기능을 소실한다. 원래 보들보들하고 유연해야 할 장이 쇠파이프처럼 딱딱해지거나, 장이 좁아지는 협착과 구멍이 나는 천공 합병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와 수술까지 받게 된다. 증상이 좋아지면 다 나았다고 생각해 치료를 중단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재발한다. 궤양성 대장염은 직장부터 대장 상행까지 염증이 퍼질 수 있다. 크론병은 식도를 포함해 소화기관 전체에 염증이 발생할 수 있다."

-최신 치료는 어디까지 왔나.

"약물치료 환경이 크게 발전했다. 자가 주사와 경구 약제, 유연한 용량 조절 등으로 일상이 수월해졌다. 아직 완치가 어렵지만 치료 목표는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 열렸던 제8차 대한장연구학회 국제학술대회(IMKASID 2025)에서는 치료 목표 확대에 관한 내용이 다뤄졌다. 증상 완화와 내시경상 점막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에서 더 나아가 조직 검사에서도 염증 반응이 보이지 않는 상태인 '질병 제거(disease clearance)를 치료 목표로 삼게 됐다. 다양한 약물이 등장하면서 어떤 약을 1차, 2차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순서 설정(Sequencing)’ 전략도 주요하게 다뤄졌다. 약이 많아질수록, 그중 어떤 약을 언제 써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정 교수는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와의 연결을 놓지 않아 왔다. 연극·요리·노래·힐링캠프… 환자와 가족에겐 병이라는 단어를 잠시 잊게 하는 순간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은 ‘해피바울 캠페인’, ‘장 건강의 날’, ‘당장(당신의 장을 위한) 캠페인’ 등 대한장연구학회와 환우회가 함께 하는 주요 활동으로 이어졌다. 

“환자들과 춤도 추고 요리도 해요. 귀찮은 잔소리도 하죠. 그러다 보면 마음이 열려요.” 진료는 몸을 돌보지만, 삶 전체를 지키려면 마음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는 누구보다 잘 안다.

갑작스러운 복통과 설사, 화장실이 급해지는 상황에서 염증성 장 질환 환자들은 사정을 설명할 시간조차 없다. 정 교수는 명함 크기의 ‘배려카드’를 만들어 말하지 않아도 보여주면 이해할 수 있도록 공공 캠페인을 선도했다. 지금도 지하철 역사, 휴게소 화장실에서 ‘배려 화장실 칸’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의 배려가 환자에겐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

정 교수가 센터장으로 있는 이대서울병원 염증성장질환센터는 간호사·약사·영양사까지 포함된 팀 기반의 환자·가족 교육을 한다. 응급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 신약 개발 현황, 복지 제도까지 전달한다. 병원이 직접 개발한 ‘IBD 임산부 수첩’도 그중 하나다.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는 약, 수유 가능한 약물 정보, 병이 악화하지 않도록 평생 관리하는 방법 등을 담아 전국 병원에 배포했다. 연구팀 SNS로 환자가 질문해오면 연구원과 교수들이 직접 답한다. 정 교수가 “이 병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환자 중심’이라는 말이 추상적이던 시절, 정 교수는 2000년대 초반 대한장연구학회 창립 초기부터 전산정보위원장, 섭외홍보위원장 등을 거치며 환자들과의 소통 프로그램을 구축해왔다. 지난 4월 회장으로 취임해 학회를 이끄는 그에게 다음 구상을 물었다. 

대한장연구학회의 미션은 Strive(매진하다), Provide(제시하다), Contribute(이바지하다) 크게 세 가지라고 했다. 각각  장 질환 연구, 최신 의학적 근거 반영한 국내 진료 지침, 질환 인식 개선 활동 등 국민 건강을 향한 목표다.   

“혼자 연구하면 큰 성과 못 내요. 다기관, 다국가 협력이 필요한 시대예요. 그리고 진료지침은 계속 바뀌어야 하죠. 새로운 약이 빠르게 나오니까요. 연구에 매진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학회이면서 환자의 실질적인 건강에 이바지하는 학회로 이끌 겁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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