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스 픽]〈156〉 영유아 RSV 감염 예방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생후 5개월 정도 된 아이 엄마 입니다. 별 문제 없이 태어났는데 생후 2개월 때 RSV 감염으로 모세기관지염, 폐렴 등 폐 감염이 심해 입원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교차가 큰 가을 무렵이라 단순히 감기에 걸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침할 때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숨 쉴 때 너무 힘들어하는 것처럼 느껴져 동네 병원을 찾았다가 RSV에 감염됐고, 폐까지 염증이 번졌으니 입원 치료가 가능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대략 2주 정도 수액을 맞으며 잘 치료받고 퇴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겪으니 또 RSV에 재감염될까 봐 걱정됩니다. 독감처럼 RSV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최영준 교수의 조언
급성 호흡기 바이러스의 일종인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Respiratory Syncytial Virus)는 생후 12개월 이전 영유아 3명 중 2명이 감염될 정도로 영유아에서 흔한 질환입니다.
RSV는 모든 연령에서 감염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후 6개월 미만 영유아는 호흡기의 세기관지 지름이 작아 염증으로 인한 임상적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침·콧물·재채기·발열 등 일반적인 감기 증상이 아닌 쌕쌕거리는 소리가 동반된 기침, 호흡곤란 등 증상이 있다면 RSV 감염으로 염증이 상기도에서 하기도까지 번졌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영유아에서 이렇게 염증이 하기도 감염으로 번져 모세기관지염, 폐렴 등으로 진행하면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RSV는 영유아 호흡기 감염으로 인한 가장 흔한 입원 원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RSV는 건강하게 태어났더라도 어떤 아이가 중증 RSV로 진행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중증 RSV 감염으로 인한 입원 대부분은 만삭으로 태어난 건강한 영아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물론 평소 30초 이상 손을 씻고 영유아 식기·물건을 주기적으로 소독하는 등 개인 위생 관리에 신경쓰면서 침·콧물 등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 접촉을 자제하면 RSV 등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RSV는 딱딱한 환경의 표면에서 6시간 이상 감염력이 유지돼 장난감 등을 통해 확산할 수 있습니다. RSV의 전파력은 감염 증상이 있는 동안 가장 강하지만 잠복기 동안에도 무증상 보균 상태일 때도 전파가 가능합니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성인 보균자가 자신도 모르게 기침이나 재채기·비말(침) 등을 통해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RSV 감염을 선제적으로 막기 위한 예방이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개인 위생 관리만으로는 적극적인 RSV 예방이 어려워 모든 영아가 접종할 수 있는 예방 항체주사 접종(베이포투스)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베이포투스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인체에 직접 투여하는 기전을 가진 항체 주사입니다. 따라서 베이포투스 접종 이후 빠르고 직접적인 보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RSV는 한 번 감염됐다 나았다고 재감염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RSV 재감염이 흔하게 일어나는 편입니다. RSV 감염 후 2개월만에 재감염이 있을 수 있고, 여러 차례 RSV에 감염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소아과학회에서도 RSV 감염력이 RSV 예방 항체주사 접종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또 생후 첫 몇 달이 중증 RSV 질환에 가장 위험해 RSV시즌 말에 태어난 신생아도 RSV 예방 항체주사 접종을 권고합니다.
누구나 접종할 수 있는 유일한 RSV 예방 옵션인 베이포투스는 언제 출생했느냐에 따라 접종 시기가 달라집니다. 먼저 국내 RSV 유행 기간인 10월부터 그 다음해 3월에 출생한 신생아라면 미숙아 여부 등과 상관없이 출생 직후 베이포투스를 접종할 수 있습니다. RSV 유행 기간이 아닌 때 태어난 신생아라면 생애 처음으로 겪는 RSV 유행 시기 직전에 접종을 고려합니다. 또 생후 24개월 이하로 생후 2번째 맞는 RSV 유행 기간에 중증 RSV 위험이 높다면 베이포투스 추가 접종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베이포투스는 1회 접종으로 최소 5개월 정도 항체를 유지합니다. RSV 유행 기간이 시작하기 직전에 베이포투스를 투여하면 국내에서 RSV가 유행하는 기간 동안 이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영유아에서 감염 위험이 높은 RSV는 열이 나면 해열진통제로 열을 떨어뜨리고 탈수 증상을 보이면 수액을 넣으면서 증상을 완화하는 보존적 방식으로 치료합니다. 이런 이유로 현재 다양한 국가에서 베이포투스를 국가 예방접종 프로그램(NIP)에 도입, 소외되는 영유아 없이 RSV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페인 갈리시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RSV로 인한 입원을 82% 낮췄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영유아의 건강한 성장은 물론, 영유아 가정의 부담 완화를 위해 영유아 대상 RSV 예방 옵션이 무료로 접종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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