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면역항암제 시너지, 임상 효과
다른 제약사 병용 땐 각각 신청해야
비용 합의 등 정부 차원서 나설 필요
최근의 항암 치료 트렌드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같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등 혁신적 기전을 가진 신약을 함께 쓰는 병용 치료다. 약제 간 시너지 효과로 뛰어난 임상적 효과를 보이면서 치료 불모지였던 소외암에서도 완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방광암의 90%를 차지하는 요로상피암이 대표적이다. 소변을 저장하는 장기인 방광의 내벽에 생긴 악성 종양인 방광암은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질병 인식도가 낮아 암세포가 림프절이나 간, 폐, 뼈 등으로 전이된 상태에서 뒤늦게 진단받는다.
요로상피암에서 항암 화학요법이 30년 이상 표준치료법이었던 상황을 바꾼 것은 혁신 신약의 병용요법이다. 2023년 유럽종양학회에서 요로상피암 분야 최초의 ADC 항암제인 파드셉(엔포투맙베도틴)과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를 병용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주요 임상 연구를 통해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은 기존 항암 화학요법 대비 무진행 생존기간(PFS), 전체 생존기간(OS) 등을 2배가량 개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요로상피암 환자 3명 중 1명에게서 완치 가능성을 나타냈다. 전례 없는 임상 데이터로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고,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암 치료 지침서인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가이드에도 파드셉+키트루다 병용요법이 유일한 선호요법(Category 1)으로 빠르게 업데이트됐다. 요로상피암에서 이를 능가하는 치료 옵션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문제는 임상적 혜택이 확실한 치료법이지만 국내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건강보험급여 제도 체제에서는 서로 다른 제약사의 신약을 병용하는 경우 각각의 제약사가 개별적으로 급여를 신청해야 한다. A제약사에서 급여 신청을 하더라도 B제약사에서 신청하지 않으면 급여 논의 진행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공정거래법에 따라 제약사끼리 논의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비용 합의 과정 역시 험난하다. 각 제약사가 서로의 약값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협상해야 한다. 급여 논의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 재정영향분석 등 비용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급여 논의가 지연되면서 생기는 어려움은 온전히 환자의 몫이다. 혁신적 치료법이 나왔어도 경제적 부담에 치료를 포기하면서 더 큰 좌절을 겪는다. 서로 다른 제약사에서 개발한 혁신 신약끼리의 병용요법은 급여 논의를 위해 정부의 중간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비슷한 고민에 대해 해외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급여 적용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영국은 병용요법에 쓰이는 약제를 보유한 기업 간 정보 교류가 가능하도록 협상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스위스는 항암제 병용요법에 대해 각 제약사와 개별 협상을 통해 약값을 책정하고 임상적 이점을 반영해 최대 20%의 혁신 프리미엄을 부여한다. 이탈리아·독일은 병용요법에 쓰이는 약제의 가격을 다르게 책정해 급여 도입을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혁신 치료법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혁신 신약에 대한 가치를 보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올해 국정감사 서면 질의를 통해 일부 제약사만 급여 결정을 신청하더라도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타사 간 병용 약제의 비용 효과성 입증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평가 절차를 효율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혁신 신약의 병용요법이 간절한 환자들이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논의를 시작할 때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