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중증·희귀 질환 치료 접근성…신속한 신약 급여 절실”

인쇄

한국 신약 지출 비중 낮아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는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과 함께 ‘외면받는 중증·희귀 질환, 치료 기회 확대 방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김길원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회장(연합뉴스 의학전문기자)은 개회사에서 “지난 2월 정부가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중증·희귀 질환에 대한 신약 접근성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많은 질환과 치료제가 건강보험 등재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며 “환자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자 이번 심포지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을 공동 주최한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축사를 통해 “낮은 치료 접근성으로 인한 중증·희귀 질환 환자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의약품 사용 개선 등 환자 중심의 제도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동 주최자인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정부가 추진해야 할 중증·희귀 질환 치료 접근성 강화 정책의 방향성과 구체적 개선 방안을 논의할 것이며,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의정 활동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첫 주제발표를 맡은 최은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중증·희귀 질환 치료 접근성 현주소’를 주제로 상대적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희귀 질환의 보장성 강화 필요성을 공유했다. 희귀 질환에 대한 정부의 의료비 지원은 점차 강화되고 있지만 여러 측면에서 아직 개선되어야 할 정책적 수요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연구위원은 “희귀 질환 치료제에 대한 요구도가 높지만 의료진과 환자 모두 조기에 필요한 정보와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환자 맞춤형 치료 계획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희귀의약품 공급과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효과성을 확보할 근거 마련의 기반 조성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증·희귀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직접 본인의 목소리를 통해 투병기와 신약 치료의 절실함을 발표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첫 순서로는 진행성 폐섬유증을 앓고 있는 이동욱(가명)씨가 무대에 올랐다. 계속해서 폐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진행성 폐섬유증은 예후가 좋지 않은 질환으로 증상이 심한 날에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어야 할 정도고, 이씨의 경우 투병 이후 체중이 15kg이나 빠졌다.

올해 초 폐기능이 계속 떨어지자 그는 주치의로부터 진행성 폐섬유증 신약 치료를 권고 받아 복용을 시작했고, 다행히 효과가 좋아 폐 기능 저하가 늦춰졌다. 하지만 해당 신약은 비급여 약제로 월 150만~300만원의 약값이 든다. 이씨는 “평생 의료 보험료를 납부해 왔는데 절실한 도움이 필요할 때 급여화가 안되고 있는 현실에 절망했다. 진행성 폐섬유증은 생존 기간이 짧아 우리 환자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점을 부디 알아주시면 좋겠다”며 급여화에 대한 간절함을 호소했다.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환자 김갑배씨는 진단을 받은 10년도 훨씬 전부터 질환으로 인한 육체적·심리적 고충을 겪어왔다.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질환 특성 상 수시로 찾아오는 가슴 통증과 어지럼증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고, 작년부터 심장이 더 두꺼워지면서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졌다.

그러던 중 주치의의 권유로 신약 치료를 시작했고, 불과 일주일 만에 그토록 꿈꿔온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김씨는 “신약을 통해 다시 평온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됐는데, 폐색성 비대성 심근병증 신약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비급여로 월 2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부디 신약이 하루빨리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많은 이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두 번째 발제는 이진한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부회장(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이 ‘언론이 바라본 신약 접근성’을 주제로 그간 취재를 통해 접한 환자 사례 및 산업계의 목소리를 통해 국내 신약 접근성 현황을 살펴보고, 한국의 신약 출시 지연 등 일명 ‘코리아 패싱’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이 부회장은 “A8국가의 약제 도입 현황을 보면 한국에서만 급여가 되지 않는 약제들이 많다”며 “정부에서도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 및 제도를 마련해 왔지만 아직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건강보험 재정 지출 구조 개선과 환자 치료 지원 확대 등 정부와 산업계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유승래 동덕여대 약대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 연구결과’를 통해 신약의 치료군별 약품비 지출 현황 분석을 공유했다. 유 교수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 도입 이후 등재된 신약의 최근 6년 간 지출 비중은 총 약품비 대비 13.5%로, 조사된 OECD 26개 국가 중 최저 수준이었다”며 “질병 부담이 높은 질환군에 대한 국내의 신약 약품이 지출비중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나 특히 이러한 질환군에서의 신약 접근성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부 패널 토론에서는 이중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 국장, 최인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헬스케어 혁신부 전무, 이은영 한국환자단체연합회(KAPO) 이사, 김진석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교수, 권선미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의료학술이사(중앙일보헬스미디어 기자) 등이 패널로 참여한 가운데 중증·희귀 질환자들의 보장성 강화와 건강보험재정 개선 방안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다. 

KRPIA 최인화 전무는 “중증·희귀 질환 환자들의 신약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규제가 아닌 보장성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며 “특히 중증·희귀 질환 신약 급여 등재의 유일한 창구나 마찬가지였던 경제성 평가 생략 제도의 축소는 환자 치료 접근성 측면에서 우려가 큰 부분이다. 급격한 약가 제도 변동보다는 앞서 소개된 건강보험 재정 연구결과 발표에서도 시사되었듯 건강보험 재정 내 신약에 대한 지출 비용이 적절한지부터 논의를 시작해 나가야 할 지점”이라고 산업계의 입장을 밝혔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