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암인 자궁경부암은 HPV 감염으로 발병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실제 자궁경부암 환자의 99% 이상은 HPV에 감염됐다. 남성 역시 HPV에 감염되면 음경암, 항문암, 구강암이 생길 수 있다. 얼굴에 생기는 암인 두경부암은 HPV 감염에 따라 남성 발병률이 여성보다 2~3배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암의 5%는 HPV 감염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고위험 HPV에 반복해서 감염되면 자연 소실되지 않고 암으로 진행한다. HPV 백신 접종을 통한 암 예방 전략이 강조되는 배경이다. 김영탁 AOGIN 회장은 “9가 HPV 백신으로 HPV와 관련된 질환의 80~90%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HPV 감염으로 인한 암 발생을 줄이려면 남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남성에서 흔한 HPV 관련 암을 예방하면서 여성의 자궁경부암 유병률도 낮출 수 있다. 김 회장은 “성 접촉을 통한 감염을 예방하고 집단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성 예방접종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HPV 백신을 12세 이상 여성 청소년을 중심으로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2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 중 33개국이 남성에게도 NIP로 HPV 백신 접종을 시행한다. 남성에서 HPV 백신 접종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HPV 질환 예방을 위한 글로벌 전략도 강조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자궁경부암을 근절하기 위한 행동 목표를 공개했다. 바로 90-70-90 전략이다. ①인구의 90%가 HPV 백신을 완전 접종하고 ②70%에서 자궁경부암 등 고성능 HPV 검진(screening)을 받고 ③HPV 질환이 확인되면 90%에서 치료를 강조한다.
이미 전 세계 194개국이 자궁경부암 근절에 동참하기로 선언했다. 호주에서는 적극적인 HPV 예방 정책으로 향후 10년 내에 자궁경부암 퇴치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영국도 2040년까지 자궁경부암을 근절하기로 발표했다. 반면 한국은 이런 목표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회장은 “매년 5월 자궁경부암 예방의 날을 중심으로 HPV 백신 접종 중요성을 알리면서 HPV로 인한 암을 예방하기 위해 남성 HPV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반인에게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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