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데 고혈압으로 진단받은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평소엔 혈압이 정상인데 병원에만 가면 혈압이 높게 나옵니다. 난임으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있어 긴장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고혈압일 수 있나요. 또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치료제를 복용하면 혹시나 태아에게도 영향이 갈까 걱정됩니다. 가임기 여성으로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데 어떻게 혈압을 관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손일석 교수의 조언
임신을 계획하는 시점에 고혈압을 진단받아 고민과 걱정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음이 심란하겠지만 아직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험 인자가 없는 1기 고혈압의 경우 저염식,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으로 혈압이 정상으로 유지되면 혈압약을 복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가정 혈압이나 활동 혈압 측정을 통해 백의 고혈압에 해당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고혈압은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을 앓고 있는 국민병입니다.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혈압이 높은 상태로 5~10년 지나면 지속적으로 혈관 벽에 높은 압력이 가해지면서 혈관이 손상되고 염증이 발생하면서 전신 혈관이 서서히 망가집니다. 이런 상태로 장기간 지내면 동맥 혈관이 딱딱해지는 동맥경화증이 생기면서 심장, 뇌, 망막, 콩팥 등 주요 장기에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합니다. 참고로 고혈압은 한국인에서 심뇌혈관 질환 발생 기여도가 가장 높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사망 위험 요인 1위로 고혈압을 지목했습니다. 흡연·음주·매연·비만보다 고혈압이 건강에 더 치명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임기 여성으로 임신을 준비 중이라면 혈압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여성은 임신 초기 태반 형성 과정의 이상으로 혈류 공급이 제한돼 임신으로 혈압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임신 20주 이후 새롭게 발생하는 임신성 고혈압입니다. 질문자처럼 임신 전에도 고혈압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고혈압으로 진단되면 혈관 손상 기간이 오래되므로 장기적으로 심뇌혈관 질환 발생률이 높아져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고혈압 환자이면서 임신을 준비하는 가임기 여성은 약물치료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임신 중 고혈압은 임부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약물치료로 인한 유익성이 위험성을 상회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다만 많은 약물은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이행되므로 임산부에 대한 안전한 약물의 선택과 사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임신 가능성이 있는 가임기 여성에서는 임상 경험 자료가 수집돼 안정성을 확보한 약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가임기 여성에게 우선 고려되는 약제는 칼슘채널차단제(CCB), 알파 차단제, 베타차단제 등이 있습니다. 최근엔 CCB계열의 암로디핀베실산염 성분의 고혈압 치료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가임기 여성이나 임부에게 기존 투여 금지에서 신중 투여군으로 변경됐습니다. 다만, 염분과 수분을 축적하는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renin-angiotensin-aldosterone system, RAAS)에 작용하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ACE 억제제),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기전의 약은 태아에게 해로울 수 있어 금기입니다.
최근엔 혈압 변동성을 최소화한 고혈압 치료에 주목합니다. 혈압은 변동성이 큰 생체 지표입니다. 혈압을 잴 때마다 내·외부 환경, 시간, 장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혈압이 높은데도 ▶병·의원에서 검사할 땐 정상 범위로 측정되는 ‘가면 효과’나 ▶의료진이 혈압을 재면 나도 모르게 긴장해 혈압이 높게 나오는 ‘백의 효과’가 존재합니다.
고혈압 치료는 지속적인 혈압 조절이 중요합니다. 특히 혈압약 복용으로 정상 범위로 유지된다고 약 복용을 중단하면 혈압이 다시 오르고 혈압 변동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혈압이 하루에도 들쭉날쭉 변동성이 크면 반복적인 혈관 수축과 이완으로 인해 혈관이 부담을 받아 동맥경화로 인한 합병증 발생 위험이 커집니다. 혈압 변동성이 높은 고혈압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이 2.1배 높아집니다. 아침 혈압이 높을 땐 뇌졸중 발생 위험이 높고 혈압 변동성이 높을 땐 대동맥 파열 위험이 커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혈압 변동성이 높을수록 고위험 고혈압 환자라는 의미입니다.
대한고혈압학회에서는 혈압 변동성이 높은 고혈압 환자에게 하루 1회 복용으로 약효가 24시간 지속되는 치료제 복용을 권합니다. 여러 고혈압 치료제 중 CCB 계열의 암로디핀 성분은 1일 1회 복용으로 활동 혈압 조절이 가능하고, 긴 지속시간으로 장기 사용에도 치료 효과가 낮아지지 않아 혈압 변동성 관리에 강점을 보입니다.
오는 5월 17일 ‘세계 고혈압의 날’입니다. 고혈압은 심뇌혈관 질환의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입니다. 먼저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혈압을 측정해 볼 것을 권합니다. 20세 이성 성인이라면 적어도 2년에 한 번은 진료실 혈압을 측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고혈압으로 진단받고도 한 번 혈압약을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치료를 미루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평생 혈압약을 먹는 것보다 문제되는 것은 고혈압 상태를 방치하는 것입니다. 특히 변동 폭이 크다면 심뇌혈관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져 주의해야 합니다. 생활습관 개선, 약물치료로 치명적인 고혈압 합병증을 예방해 건강한 일상을 보내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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