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부부의 심리적 어려움은 난임 치료를 중단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난임 시술을 시작할 때는 시술 자체를 무서워하는 부부가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고통을 더 크게 호소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난임 스트레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난임 부부들은 반복된 실패로 인한 우울·불안감,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 일상생활의 어려움, 주변에서 가해지는 출산에 대한 압박, 감정을 이해받지 못하는데 따른 상처 등으로 감정적으로 힘들어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진행한 난임 부부 지원사업 결과 분석 및 평가에 따르면 전체 난임 시술 부부의 85~87%가 난임으로 인해 정서적 고통,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심각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보고되는 고위험군도 21~27%로 보고됐다. 난임 스트레스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요구 역시 75~78%로 높게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이미 난임 스트레스 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04년부터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에서 비용을 지원해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또 국가에서 난임 부부들 간 서로 접촉해 경험을 나누도록 자조모임을 지원한다. 독일에서는 전문적인 난임 부부의 심리상담을 지원한다. 일부 클리닉은 난임 치료 시작 전 상담 및 해당 증명서를 요청한다. 일본에서는 의료진뿐 아니라, 난임을 경험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해 난임 부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난임 부부의 심리 상담을 위한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와 경기·인천·경북·대구·경남 등 권역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7월엔 서울권역 센터가, 10월엔 경기 북부권역 센터도 새롭게 개소했다. 이곳에서 난임부부의 심리 상담과 정서적 지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중등도 이상의 정신 건강 문제가 있으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의뢰하고 의료비도 지원한다. 난임 스트레스에 대한 자가진단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난임 부부의 정서적 지지를 위한 심리 상담을 활용하는 비율은 3~5%로 미미한 수준이다. 심리적으로 지친 난임부부들이 난임 스트레스를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기관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전문적 지원뿐만 아니라 난임 부부의 노력과 주변인의 배려도 필요하다. 일단 부부가 서로 충분히 대화해야 한다. 난임 시술은 아무래도 여성의 부담이 크다. 처음엔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던 남성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진료실을 찾는 여성에 비해 소홀해지기 쉽다. 진료를 하다 보면 금연 등 몸 관리를 하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여성을 많이 본다. 반복된 실패를 누구의 잘못인지로 싸우거나 판가름 해달라는 부부도 있다. 한쪽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정자·난자가 수정해 분열해 나가는 배아의 문제인 경우도 많아 난처했다. 부부는 서로 비난하는 대상이 아닌 동반자다.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야 한다.
운동·명상 등 난임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도 찾아 실천한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숨이 차오르는 운동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는 식이다.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좋다. 사소한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좋지 않다. 활동적인 여성이고 직장에서 배려가 가능하다면 업무를 계속하는 것이 임신에 매달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주변인은 되도록 말을 아끼는 것이 좋겠다. 난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당사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안할수록 믿을만한 정보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뭘 먹어야 할지,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등이다. 사실 임신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할 것은 없다.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신체 활동, 숙면 등 일반적인 건강 상식을 실천하면 충분하다. 영양제도 엽산 등 가임기 여성에 필요한 기본적인 영양소를 중심으로 챙기면 된다.
SNS·인터넷 등에 떠도는 정보는 근거가 부족할 수도 있고 단면적인 타인의 사례로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간혹 자신에게는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낮을 일을 걱정하는 경우도 본다.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난임이기에 비대면적 디지털 세상에서라도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는 것은 이해된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에 연연하는 것은 난임 스트레스를 가중 시킬 뿐이다.
난임을 겪는 부부가 불안과 걱정을 내려놓으면 생물학적 스트레스가 완화해 난임 치료의 과정과 결과까지 보다 수월해 질 가능성이 높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당사자에겐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난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특히 사회적 지지는 난임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부부의 귀중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난임 부부의 마음을 살피는 적극적인 지원이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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