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생후 19개월 된 남아 엄마입니다. 아이는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이유 없이 온몸에 빨갛게 발진이 돋고 39도 이상의 고열이 오르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피부 발진이 심하고 열이 너무 자주 오르다보니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다며 어릴 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피부 발진이나 고열이 없을 땐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려 놉니다. 그런데 돌이 좀 지났을 무렵, 또래처럼 잘 걷던 아이가 잘 걷지를 못하더니 통증이 심한지 자꾸 울고 보챕니다. 걱정이 돼 찾은 병원에서는 염증 수치가 높게 나오는데 염증 때문에 열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뚜렷한 원인은 모르겠다고 합니다. 아이가 반복된 발진·고열로 너무 괴로워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좀 더 크면 괜찮아지는 걸까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정대철 교수의 조언
의사표현이 어려운 영유아는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말로 표현하지 못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아이가 어렸을 땐 열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대개 해열제를 먹이고 열이 떨어진다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주신 분의 아이처럼 39도 이상 열이 지속·반복된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은 소아 면역 전문의를 찾아 아이 상태에 대해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합니다.
특히 붉은 피부 발진이 전신에 나타나고 고열이 반복되며 근육통·관절통·복통 등 통증을 동반한다면 매우 드물지만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을 염두해둬야 합니다.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은 39도 이상의 고열이 주기적으로 재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말 그대로 특별한 이유 없이 발진·발열을 반복합니다. 또 어떤 외부 감염이 없더라도 전신의 만성 염증을 동반합니다. 보통 태어나자 마자 증상을 보이거나 10년 내 질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은 열이 없을
땐 특별한 건강 이상이 없어 진단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대개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 발열, 전신 염증 소견 등 증상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뒤늦게 진단받습니다.

반복된 발진·고열을 가볍게 여기면 위험합니다. 전신에 걸친 만성 염증이 장기 손상을 유발합니다. 청각 상실, 관절 변형 등 근골격계 이상, 진행성 인지장애, 무균 뇌막염 등 심각한 합병증을 동반할 수 있습니다. 관절 이상으로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심각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치료는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 면역체계가 인터루킨-베타(IL-1β)라는 염증 유발 물질을 과다 생성하는 것을 막는 기전을 가진 약으로 증상을 통제합니다. 이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장기 손상을 예방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소아 자가면역 질환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료진 입장에서 열악한 치료 환경이 안타깝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환자들에게 주로 쓰이는 약은 국내에서 공식 허가된 약이 아닌 희귀의약품선터를 통해 긴급 도입된 약제입니다. 문제는 주사 스트레스입니다. 주로 양육자인 부모가 집에서 아이의 몸무게에 따라 약 용량을 조절하고 매일 주사를 놔야 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용량만큼 자가 주사하면서 증상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현재 8주에 한 번 병원에서 투약하는 일라리스라는 약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사용에 큰 제한이 있는 상황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학교 생활도 하고 사회로 나가 제 몫을 하려면 증상의 치료는 물론, 일상 생활이 가능한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한다고 봅니다. 오랫동안 매일 자가 주사 치료를 받은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행·출장 등 삶의 많은 부분이 제한된 채 살아간다고 호소합니다. 매일 주사를 맞는 고통도 큽니다. 또래·동료와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주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치료 옵션에 대한 접근성 개선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도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같은 희귀 질환자들의 어려움을 면밀하게 살피길 바랍니다. 하루 빨리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돼 유전성 재발열 증후군 환자들이 정식 허가된 치료제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치료받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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