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국의 파브리병 치료 환경은 열악하다. 특히 여성에게 가혹하다. 파브리병으로 진단받았어도 콩팥·심장 등 장기 손상을 입증한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건강보험을 급여로 지원한다. 게다가 증상이 가벼운 여성은 건강보험급여 적용 기준이 남성보다 엄격하다. 성별에 따른 파브리병 치료 접근성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신장내과 정성진(사진) 교수에게 남성보다 열악한 여성 파브리병 환자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Q1. 파브리병은 어떤 질병인가.
“진행성 희귀 유전 질환이다. 리소좀이라는 세포 내 소기관에서 특정 당지질 대사에 필요한 효소가 결핍돼 발생하는 리소좀 축적 질환이다. 선천성 대사 질환인 파브리병으로 태어날 때부터 세포 내 당지질이 축적된다. 선천성 대사 질환인 파브리병으로 인한 세포 내 당지질 축적은 태아 때부터 시작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내 노폐물이 계속 쌓이면서 세포 손상이 생기고 눈, 심장, 콩팥(신장) 등 장기 손상으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임상적 증상이 심해지는 특징을 보인다. 조기 진단을 통한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첫 증상이 발현되는 평균 연령은 남성은 약 6~8세, 여성은 약 9세다.”Q2. X염색체로 유전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를 통해 유전되는 질병이다. 체내의 리소좀 분해 효소인 알파-갈락토시다제 A를 만들어내는 유전자(GLA)가 성염색체 중 하나인 X염색체에 존재한다. X염색체 연관 유질환이라고 하면 대개 모계 유전이라고 표현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파브리병 원인 유전 변이를 부모 중 여성이 가졌다면 자녀의 성별과 관계없이 물려줄 확률은 각 자녀마다 50%이고, 남성이라면 딸에게 100% 유전되지만 아들에게는 유전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한 명의 파브리병 환자를 발견했을 때 가족 검사를 통해 평균 5명의 환자가 추가로 진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X염색체가 두개인 여성은 정상 유전자와 파브리병 원인 유전자로 이뤄진 이형접합(heterozygote)일 수도 있다. 이형접합자인 여성의 파브리병 증상은 남성보다 경미한 편이다.
그래서 여성은 파브리병 진단이 더딘 경향을 보인다. 불과 20여년 전에는 파브리병 유전 변이를 가진 여성은 환자가 아닌 보인자(carrier)로 인식했다. 최근엔 여성도 다양한 파브리병 증상이 나타나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주요 장기 침범 위험이 존재한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지속적 모니터링과 치료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파브리병 조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Q3. 파브리병으로 확진받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 가족력을 통해 진단된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우연히 파브리병으로 진단돼 가족 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심장 질환의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파브리병은 증상이 발현하고 최종 확진까지 길게는 15년이나 소요된다는 보고도 있다. 파브리병은 태아 때부터 계속 진행되는 진행성 질환이다. 조기 진단을 통한 빠른 치료가 중요하다. 사실 파브리병 진단 그 자체는 쉽다. 간단한 효소 검사와 유전자 검사로 파브리병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파브리병으로 인한 임상적 증상이 비특이적이고 다양하다. 손발 통증, 각막 혼탁 등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 따라 여러 의료기관에서 상담을 받아도 극희귀 유전 질환인 파브리병으로 의심하는 게 쉽지 않다. 질병이 진행되면 고작 10~20대에 콩팥의 여과 기능이 나빠져 미세알부민뇨 등이 검출된다.”
태아 때부터 계속 진행되는 파브리병
효소대체요법으로 치료 가능
여성 차별적 급여 기준은 바뀌어야
효소대체요법으로 치료 가능
여성 차별적 급여 기준은 바뀌어야
Q4. 파브리병 치료는 어떻게 이뤄지나.
“파브리병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효소를 2주에 한 번씩 정맥 주사로 투입하는 효소대체요법(ERT)으로 치료한다. 파브리병은 치료가 가능한 약(파브라자임 등)이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유전 질환이다. 효소대체요법으로 세포 내 당지질이 추가적으로 축적되는 것을 막고 이미 쌓인 것도 분해·제거한다. 파브리병 환자에게 효소대체요법(파브라자임)으로 6개월 동안 치료했더니 콩팥, 심장 및 피부의 혈관 내피세포에서 GL-3가 제거돼 감소한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효소대체요법 투약 6개월 시점에 보인 GL-3 제거 효과는 54개월 동안 지속됐다. 이 외에도 사구체 여과율 감소 속도를 늦춰 콩팥 기능 저하를 억제하는데도 긍정적이다.”
정성진 교수는 진단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했다. 치료가 어려운 유전 질환은 진단 당시에 치료제가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미가 매우 크다. 치료제가 없다면 유전 질환으로 진단 받아도 추가적으로 조치할 것이 없다. 정 교수는 “파브리병처럼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라면 증상 악화를 막기 위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전 상담도 중요하다. 환자의 치료는 물론 자녀 계획 등에도 도움된다.
Q5. 여성은 차별적 급여 기준 탓에 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들었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파브리병은 유전적 요인으로 성별에 상관없이 발병한다. 그런데 파브리병으로 진단받아도 임상적 증상 또는 징후를 보여야지만 건강보험 급여로 약값이 지원된다.

남성은 단백뇨 검출만 쓰여 있지만, 여성은 진행의 임상적 증거를 동반한 단백뇨가 급여 조건이다. 임상적 증거를 동반한다는 문구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남성은 단백뇨 150mg 초과, 여성은 단백뇨 300mg 초과해야 한다. 파브리브병으로 진단 받아도 급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보다 사구체 여과율이 더 나빠져야만 효소대체요법의 급여 치료가 가능하다. 임상적으로 사구체여과 속도가 더 느려지는 등 콩팥이 손상되고 있는 증거도 있어야 한다. 급여 적용 기준이 차별적이고 모호하다. 콩팥의 사구체 여과 기능은 한 번 나빠지면 회복이 어려운 것은 성별에 상관없는데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급여 기준이 적용됐다고 본다. 이런 차별적 기준으로 여성의 파브리병 치료 접근성은 더 떨어진다.
한국의 파브리병 급여 기준은 성별에 상관없이 파브리병의 조기 진단·치료를 강조하는 글로벌 진료 지침과 상충된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파브리병은 유전적 요인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진행하는 리소좀 축적 질환이다. 빨리 치료할수록 콩팥 보호 등 예후가 좋고, 돌이키기 어려운 장기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적극적 치료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Q6. 여성 파브리병 환자가 임신을 하면 효소대체요법을 중단해야 하나.
“임부에 대한 사용 경험은 제한적이다. 대규모 연구는 없지만 일부 증례 보고에 따르면 임산부에서 효소대체요법으로 치료해도 약물 관련 부작용이 보고된 바는 없다. 어떤 치료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의료진과 함께 치료할 때의 이득과 질병으로 인한 위해를 잘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Q7. 파브리병 치료 환경이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여성에게 차별적인 치료 기준을 바꿔야 한다. 콩팥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손상을 동반한다. 파브리병으로 심장·신경·통증 등 다른 조건은 성별과 상관없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유독 콩팥(신장)만 남녀에 차이를 두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브리병은 시간이 지날수록 질환이 진행하면서 장기 손상이 발생한다. 성별에 상관없이 조기 진단을 통한 빠르고 적극적 치료가 중요하다. 차별적 급여 기준을 두는 것은 유독 여성의 치료를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번째는 파브리병 등 치료가 가능한 유전 질환의 진단 활성화다. 몇 해 전, 우연히 파브리병 환자를 진단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데 원인을 알 수 없이 콩팥 기능이 나빠져 복막 투석을 받는 환자였다. 이 환자의 동생이 콩팥을 기증하겠다고 해서 전신 상태를 살펴보는 검사를 했는데 단백뇨가 검출됐다. 콩팥 조직검사에서 파브리병 소견을 발견했고, 유전 검사로 확진됐다. 이후 복막 투석을 받는 환자에게도 관련 검사를 받도록 했는데 파브리병이었고, 치료를 할 수 있게 됐다. 이후로 젊지만 별다른 원인 없이 콩팥 기능이 나쁜 환자에게는 혹시나 싶어 유전 검사를 시행한다. 유전 질환을 제대로 확진하려면 유전 검사가 기본이다. 현재 국내 파브리병으로 치료받는 환자는 200명 정도다. 파브리병이 전체 인구에서 10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빈도를 고려했을 때 아직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유전 질환이 의심돼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유전 검사를 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삭감하는 경우가 많다. 대략 전체 시행하는 NGS검사의 50%는 삭감되는 것 같다. 의료진 입장에서 유전 질환이 의심돼도 삭감을 우려해 꺼리게 된다. 환자 입장에서는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인데도 더 오랜 기간 진단 방랑을 겪게 된다. 진단이 늦어진 만큼 예후도 나쁠 수밖에 없다. 희귀 유전 질환을 제대로 발굴해 치료하려면 유전 질환의 진단에 대한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다. 유전 질환에 대한 유병률 등 데이터가 쌓여야 치료제 개발에 대한 필요성도 커진다. 제약사, 연구기관, 대학 등에서 치료제 개발을 위한 동기부여를 위해 진단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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