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있어도 못 쓰는 중증·희귀 질환…“현실적 접근성 높여야”

인쇄

'중증·희귀 질환자 중심 건강보험재정 개편 방안' 심포지엄서 논의

중증·희귀 질환 신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절차를 개선해 실질적인 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에서 신약 출시 후 급여권으로 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6개월로 일본 17개월, 프랑스 34개월보다 길다. 약제 허가에서 급여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경제적 부담으로 결국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나온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KAMJ)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후원하는 '중증·희귀 질환자 중심 건강보험재정 개편 방안' 심포지엄이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은 중증·희귀 질환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뤄졌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중증·희귀 질환 환자와 가족이 직접 나와 투병 사례를 소개했다. 척수성근위축증(SMA)을 앓는 31개월 아이의 엄마인 임채원씨는 건강보험 급여화로 희귀 질환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했다. 임씨의 아이는 생후 8개월에 SMA로 진단받았다. 다행히 지난해 8월 ‘졸겐스마’라는 20억 원대 초고가 치료제가 건강보험 승인을 받았고 이를 투여하면서 기적처럼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 임씨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누워서 자기 몸도 못 움직이던 아이가 내 손을 잡고 두 발로 서 있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증 천식으로 투병 중인 김용진씨는 호흡이 힘들고 기침·가래가 멈추지 않아 일상생활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호흡곤란으로 한 달에 4~5번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해 증상이 빠르게 나아졌지만 임상이 끝나면 신약 투여가 중단돼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갈까봐 걱정했다.

폐암 4기 아내를 둔 임성춘씨는 3년째 급여화를 기다리며 나날이 심해지는 재정적 부담을 토로했다. 임씨는 “4주 약값이 600만 원이다. 차도 팔고 집도 저당잡아 약값을 지불하면서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상태”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비롯해 급여 정책을 책임지는 정부 관계자가 국민을 먼저 살리는데 앞장 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자의 관점에서 본 중증 질환 보장성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는 “국내 도입된 신약은 급여 신청 이후에도 암질심-약제평가위원회-약가협상 3단계를 거치면서 실제 급여로 지원되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며 “많은 중증·희귀 질환 환자들이 연 1억 원에 가까운 비용으로 치료를 포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백 대표는 “허가와 급여 시기가 달라 막상 급여가 되도 의학적 근거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다. 달라지는 의료 현장에 따른 합리적인 약가 제도가 필요하다”며 희귀 암 치료제 승인 절차 간소화를 제안했다.

임상 현장에서 신약 접근성에 대한 분석도 나왔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는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이 원하는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 10명 중 8~9명은 경증 질환보다 암, 심장 질환과 같은 중증 질환과 필수의료 중심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우리 국민이 원하는 건강보험 개혁 방향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원칙에 따라 중증 질환과 필수의료 우선 보장으로 전환해야 하고, 의료 약자의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의료 안전망 기금을 조성해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항암요법에 대한 허가초과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다양한 본인부담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가천대 길병원 종양내과 안희경 교수는 “허가가 나지 않으면 환자가 약을 원하더라도 처방이 어렵고, 허가초과요법이 있더라도 승인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허가 준비 중인 약제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며 “다양한 본인부담제도를 적용해 급여 적용이 어렵더라도 약을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 복귀, 완치 가능성 등 항암 신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손호준 보험정책과장은 “최종적으로 건강보험 종합 계획을 수립하는 입장에서 오늘 논의한 내용을 잘 반영하겠다”며 “건보 제도가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선순환 구조가 잘 구성돼야 하므로 이러한 요구를 잘 수용해 종합 계획이 수립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