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으로 얼굴 화끈거려 힘들다? 호르몬 치료 시작할 때입니다

인쇄

[닥터스 픽]〈65〉폐경 호르몬 치료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폐경 진단을 받은 50대 여성입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고 열감에 화끈거립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도 많아져 밤이 늦도록 잠을 자지 못해 괴롭습니다. 감정기복도 심해져 가족과 말다툼도 늘었습니다. 또래와 비교해 유독 갱년기 증상이 심한 것처럼 느껴져 병원을 찾으니 호르몬 치료를 권하더라고요. 주변에 물어보니 호르몬 치료는 부작용 위험이 크고 시도하더라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말리는데, 고민이 큽니다. 호르몬 치료는 최대한 늦게 하는 것이 좋은지, 또 부작용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정경아 교수의 조언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50세를 전후로 폐경을 겪습니다. 의사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생리주기 변동성이 커지는 45세 이후부터 생리가 오락가락하면서 점점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 끊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생리 후 12개월 이상 생리를 하지 않으면 폐경으로 진단합니다. 

단순하게는 매달매달 겪던 생리(월경)가 사라졌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실 폐경은 여성의 일생에서 주요한 신체적 변화 중 하나입니다. 폐경으로 여성호르몬이 급감하면서 얼굴이나 목·가슴 등이 붉어지면서 불쾌한 열감을 겪는 열성홍조, 밤잠을 설치는 수면장애, 우울·불안 등 감정기복, 방광·질·요도 등 비뇨생식기의 위축성 변화로 배뇨시 작열감, 절박뇨 등 다양한 증상을 겪습니다. 질문자를 포함해 대다수의 중년 여성이 이런 증상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저도 폐경으로 건강이 나빠졌다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시작한 폐경 호르몬 치료로 지금까지 큰 건강 문제 없이 계속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폐경의 여파는 매우 장기적입니다. 사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혈관을 보호하고 뼈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폐경으로 몸을 지켜주던 강력한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예전과 똑같이 생활해도 전신 건강이 나빠집니다. 

먼저 폐경으로 촘촘했던 뼈가 엉성해지는 골다공증이 생기기 쉽습니다. 골밀도는 특히 폐경 3~5년 이내 가장 빠르게 소실됩니다. 실제 폐경 여성 2명 중 1명은 골다공증을 겪습니다. 이미 폐경으로 빠르게 약해진 뼈를 다시 튼튼하게 되돌리기는 어려운 만큼 미리 대비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 외에도 이상지질혈증(고지혈증), 고혈압과 같은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도 높아집니다. 폐경 이후 여성은 동맥경화 진행 속도가 빨라져 심혈관 질환 위험도가 25% 증가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비뇨생식기 증상의 경우 폐경 2~3년 후 발현돼 점차 악화하면서 폐경비뇨생식증후군(GSM)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폐경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건강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폐경 진단 이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 후반기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폐경이지만, 사람마다 체감하는 정도는 다릅니다. 폐경 증상의 양상, 강도, 빈도, 기간 등에 차이를 보입니다. 누구는 가볍게 1~2년 만에 스치듯 지나가지만, 다른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강렬한 폐경 증상이 10년 이상 지속되기도 합니다. 특히 폐경 증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예측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괴로운 폐경 증상으로 혼자 끙끙 앓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치료 적기를 놓칠 수 있습니다. 

치료는 결핍된 여성 호르몬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요즘엔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을 같이 복용하거나 조직 선택적으로 에스트로겐 활성 기전을 가진 티볼론 성분의 약(리비알 등)으로 치료합니다. 이를 통해 갑작스러운 열감으로 괴로운 열성홍조, 한밤 중에 땀을 흘리는 야간발한, 비뇨생식기 위축, 우울감 등 여러 폐경 증상을 효과적으로 완화합니다.

또 골소실을 막아 폐경과 관련된 골다공증 골절 빈도를 줄여줍니다. 폐경으로 골감소증을 보인 여성 310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티볼론 치료를 시행했더니 요추의 골밀도는 2.2%, 대퇴골은 1.26%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만약 수술이나 악성 질환 등으로 조기 폐경을 겪었다면 열성홍조 같은 폐경 증상이 더 자주, 심하게 나타나고 골다공증 위험이 더 높아 호르몬 치료가 더욱 필요합니다.  

치료 시점도 중요합니다. 폐경 증상 완화로 삶의 질을 높이면서 뼈가 약해지는 골다공증을 막고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을 낮춰주는 등 호르몬 치료의 효과는 폐경 초기부터 시도할수록 좋았습니다. 따라서 열성 홍조 같은 혈관운동 증상이 나타나는 폐경 초기인 50대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안타깝게도 임상적으로 장점이 확실한데도 여전히 폐경 호르몬 치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건강기능식품을 먹으며 버팁니다. 그런데 건강기능식품은 폐경 증상 개선 효과 등을 입증한 호르몬 치료를 절대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간혹 유방암 발병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이런 위험 역시 매우 제한적입니다. 비만, 늦은 출산 등 다른 유방암 위험 요소와 비교하면 호르몬 치료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한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86.6세(통계청, 2021년 생명표)입니다. 폐경 이후에도 무려 30여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그저 누구나 겪는 폐경이라고, 좀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시간을 보내기보다 일상의 건강한 삶을 위해 폐경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합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