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형 탈모는 진행성 질환이다. 유전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에서 이마가 점점 넓어지고 정수리 모발이 가늘어지는 게 특징이다. 남성형 탈모는 가장 흔한 탈모증으로, 우리나라 남성 5~6명 가운데 한 명에서 발생한다. 국내 남성형 탈모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젊은 층 환자가 늘고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병원을 찾는 남성형 탈모 환자의 약 절반은 20~30대다. 그간 남성형 탈모의 진행을 멈추고 모발의 재성장을 돕기 위한 수많은 치료가 시도돼 왔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약물치료가 꼽힌다. 광선조사기나 자가혈소판주사 등 비약물적 치료법도 있지만, 약물치료의 효과를 능가하진 않기 때문에 보조요법 정도로 활용된다.
현재까지 남성형 탈모 치료를 위해 승인된 약물로는 먹는 5-알파환원효소억제제(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와 바르는 미녹시딜이 있다. 5-알파환원효소억제제는 탈모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남성호르몬(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감소시킨다. 미녹시딜은 혈관 확장 및 모낭의 생장 기간 연장을 통해 모발의 성장을 돕는다. 단독 투여할 때보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병용했을 때 치료 효과가 더 뛰어나다.
최적의 효과를 얻기 위한 약물치료의 시작 시기와 유지 방안은 환자의 탈모 상태나 여건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가급적 탈모가 많이 진행되기 전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탈모가 많이 진행될수록 치료 효과가 낮고 회복 기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환자들이 기대하는 발모 효과를 못 느낄 수도 있다.
따라서 먹는 약은 적어도 육안으로 탈모를 인지할 수 있을 시점에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먹는 약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면 바르는 약을 먼저 사용하고, 이후 필요에 따라 먹는 약을 추가할 수 있다. 약물 투여 후 1~2년 정도가 지나면 대다수 환자들에서 탈모의 진행이 멈추거나 모발의 재성장이 이뤄진다. 치료하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약물치료로 인한 이득과 만족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모발 개선 효과가 서서히 사라진다. 원칙적으로 탈모가 호전된 이후에도 탈모 진행을 막기 위한 꾸준한 유지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전후 탈모 부위의 사진을 촬영하고 주기적으로 모발의 개수, 굵기 등을 비교 측정해 보면 환자들도 약물치료의 필요성을 체감한다. 간혹 장기간의 5-알파환원효소차단제 복용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염려하는 환자들이 있다. 장기 복용의 안전성은 수많은 임상연구와 수십 년간의 실사용 경험을 통해 입증됐다. 약 복용 중 드물게 성기능 저하나 기분 변화 등의 부작용을 경험할 땐 의료진과 상담 후 잠시 약 복용을 중단하거나 바르는 약으로 변환해 볼 수 있다.
기존 미녹시딜 외에도 5-알파환원효소차단제의 일종인 피나스테리드 제제의 스프레이가 최근 국내에 승인돼 사용 가능해졌다. 바르는 피나스테리드는 먹는 약과 동일한 발모 효과(24주 사용, 단위 면적 당 모발 수 20여 개 증가)를 보인다. 성욕 감퇴나 우울, 불안과 같은 전신 부작용이 발생하는 일도 거의 없어 약 복용이 어려운 환자에게 좋은 대안이 된다. 약물치료가 번거롭다고 한두 번의 모발이식으로 탈모치료를 끝내려는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뒷머리의 굵은 모발을 옮겨 심어도 앞머리와 윗머리에 남아있던 모발의 탈모는 점점 진행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탈모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전보다 많은 환자가 본인의 질병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찾아보고 병원에 방문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경우도 적잖다. 최근 국내 탈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환자가 탈모가 있다는 것을 자각한 이후에도 병·의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기보다 발모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샴푸, 모발영양제를 중심으로 한 기능성 화장품과 식품을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남성형 탈모 치료에 있어 숨겨진 비법은 없다. 머리카락 한 올이 소중한 남성형 탈모 환자들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현혹돼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부과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꾸준한 약물치료를 통해 풍성한 머리카락과 자신감을 되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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