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폐 굳어가는 질환, 기침 반복·호흡 곤란 오면 빨리 진찰받아야"

인쇄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최혜숙 교수

신체에 생기는 안 좋은 여러 가지 징조 중에 '섬유화(纖維化)'라는 것이 있다. 염증이나 상처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흉터다. 단순히 일부 조직의 변화로 남을 수도 있지만 장기의 구조와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면 문제가 달라진다. 폐에 섬유화가 진행됐을 때 심각한 질환으로 보는 이유다.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말 그대로 아무 이유 없이(특발성) 폐에 섬유화가 생긴 질환이다. 중앙생존기간이 3년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최근엔 치료제가 나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최혜숙 교수에게 특발성폐섬유화증의 증상과 진단, 치료법에 대해 들었다.  
 
 질의 :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정확히 어떤 질환인가.  
응답 : “폐는 허파꽈리라고 하는 폐포로 이뤄져 있고, 폐포와 폐포 사이를 간질 또는 사이질이라고 하는데, 이 간질에 섬유화가 진행돼서 폐포가 파괴되고 결국 폐가 굳는 질환을 말한다.”
 
 질의 : 중앙생존기간이 3년밖에 안 된다는 건 생존율이 낮은, 굉장히 심각한 질환이라는 얘긴데. 
응답 : “중앙생존기간은 병을 진단, 치료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환자군의 절반이 살아 있는 시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즉, 3년이 지나면 환자의 절반은 사망한다는 의미다. 다만, 최근에는 조직의 섬유화를 막는 항섬유화제라는 약을 쓰면 그 기간이 연장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항섬유화제를 사용한 이후의 장기 연구 데이터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질의 : 폐 기능이 망가지는 만큼 호흡 곤란 등이 올 텐데, 대표적인 증상은 무엇인가. 
응답 : “먼저 대표적인 증상은 기침이다. 초기에는 기침을 많이 호소한다. 그 후 어느 정도 진행되면 호흡 곤란이 온다. 폐에서 산소화가 진행되지 않다 보니 숨차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부종이 생겨 손가락이 곤봉 모양으로 변하는 '곤봉지(棍棒指)'도 동반되지만 이는 폐암, 심혈관질환에서도 동반되는 특발성 폐섬유화증의 특이 증상은 아니다. 하지만 많게는 환자의 50% 정도에서 관찰되기 때문에 곤봉지가 특발성 폐섬유화증의 특징적인 증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질의 : 그러면 환자가 초기에 스스로 질환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겠다.
응답 : “그렇다. 특발성 폐섬유화증의 경우 65세 이상에서 많이 발생한다. 청진하면 숨을 들이마실 때 미세한 수포음이 들린다. 다만 수포음은 폐렴을 포함해 폐에 염증이나 섬유화가 생겼을 때 공통으로 들리는 소리다. 그 대신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일반적인 수포음이 아니라 건성 수포음이 들린다. 청진하면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의 : 건성 수포음은 어떻게 다른가.  
응답 : “우리가 빨대를 음료에 넣고 바람을 불면 거품 소리가 나는데 일반적인 수포음은 그것과 비슷하다. 근데 건성 수포음은 마치 비닐봉투를 손으로 만지는 듯한 소리다. 65세 이상인 환자에서 청진 시 건성 수포음이 들리면 의심해 볼 수 있다.”
 
 질의 : 나이 외에 또 다른 위험 요소로 어떤 게 있을까.
응답 : “흡연, 남성 등도 위험 요소다. 성별의 경우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남성 환자가 더 많은 것으로 보고된다. 그리고 가족력도 중요한 위험 요소다.”
 
 질의 : 청진으로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면, 확진은 어떻게 하나.
응답 : “폐 고해상도CT(HRCT)로 한다. 영상에서 폐 하엽에 벌집 모양의 특징적인 섬유화가 관찰되면 진단한다. 조직검사 없이 영상으로 진단할 수 있다. 다만, 벌집 모양이 HRCT 영상에서 관찰되지 않을 정도의 초기라면 조직 검사가 필요하다.”
 
 질의 : 치료에 항섬유화제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어떤 약인가. 
응답 : “세계적으로 피르페니돈, 닌테다닙 두 가지 약을 주로 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두 가지 모두 사용 가능하다. 단, 이들 약은 대부분의 내과 질환 약이 그렇듯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가 아니라 당뇨병이나 고혈압 약처럼 병을 조절하는 약이다. 일단 섬유화가 된 경우 이미 조직이 파괴된 것이기 때문에 재생·회복되진 않는다. 폐 섬유화가 더는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 치료제를 쓰면 생존기간을 9~12년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건강보험은 현재 피르페니돈만 적용되고 있다.”
 
 질의 : 약물치료 중 환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 혹시 있나.
응답 : “피르페니돈의 경우 특징적으로 흔히 '햇빛 알레르기'라고 말하는 광과민성을 보일 수 있다. 햇빛에 피부가 노출됐을 때 발적 혹은 물집이 생기거나 피부가 벗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나 양산을 쓰는 등 자외선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질의 :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질환인데, 이를 위해 어떤 걸 신경 써야 할까.
응답 : “모든 병이 그렇지만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특히 조기 진단과 함께 약을 빨리 써서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침을 하거나 호흡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겼다면 가까운 내과에서 청진을 받아 보고 의사 소견에 따라 CT를 찍어보는 것이 좋다. 특히 가족력이 있다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엔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CT 검사를 통해 질환이 의심된다는 결과를 받고 오시는 환자분이 많다. 근데 이런 분 중 대부분이 증상이 없다고 추적검사를 안 하신다. 근데 특발성 폐섬유화증은 진행 속도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이 있으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추적검사를 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