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피임약 먹고 하혈 했어도 임신 가능…장기 피임 계획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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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픽]〈30〉장기 지속형 피임법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최근 응급피임약(사후피임약)을 복용한 20대 초반 여성입니다. 콘돔을 사용했으나 관계 후 찢어진 것을 봤습니다. 배란일과 겹쳐 불안한 마음에 다음날 바로 응급피임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약 복용 후 속이 메스껍고 불편합니다. 이번엔 이렇게 넘겼지만 임신에 대한 불안감이 큽니다. 사전 피임약도 먹어봤지만 약 복용을 깜빡 잊기 쉽더라고요. 또 매일 먹지 않으면 피임 효과가 떨어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응급피임약을 먹기도 부담스럽습니다. 피임약 복용으로 결혼 후에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지도 걱정됩니다. 안전하게 피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성훈(대한피임생식보건학회 부회장) 교수의 조언

먼저 앞선 상황에서 빠르게 병·의원을 방문해 응급피임약을 복용한 것은 훌륭한 대처입니다. 콘돔이 찢어지는 등 돌발 상황으로 피임에 실패했다면 최대한 빨리 응급피임약을 먹어야 합니다. 응급피임약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관계 후 투약이 빠를수록 피임 효과가 높습니다. 성관계 후 24시간 이내 복용하면 피임 성공률은 95%입니다. 하지만 48시간이 지나면 피임 성공률은 85%, 72시간이 지나면 58%로 뚝 떨어집니다. 약 성분에 따라 다르지만 응급피임약은 늦어도 72~120시간 이내 먹어야 합니다. 

응급피임약은 여성호르몬을 고용량으로 투여해 임신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체내 호르몬 균형을 깨뜨려 난자의 배란을 억제하면서 수정란이 착상하는 자궁내막을 허물어뜨리는 최후의 피임법입니다. 다만 언급하신 것처럼 사전 피임약과 비교해 호르몬 농도가 10배가량 높아 몸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속이 메스껍다고 느낀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런데 응급피임약이 100% 완벽한 피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이 나팔관을 이동해 자궁내막에 착상했다면 피임 효과가 없습니다. 응급피임약을 먹고 하혈을 했다고 안심하는 것도 이릅니다. 응급피임약을 먹으면 월경주기가 평소보다 늦거나 빨라질 수 있습니다. 배란 2주 후 나타나는 월경(생리)이 아닌 부정 출혈일 수 있습니다. 월경예정일 이후나 응급피임약 복용 2~3주 후에는 소변검사 등으로 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응급피임약은 약 복용 바로 직전에 있었던 임신 가능성만 차단합니다. 그렇다고 한달에 2번 이상 혹은 매달 한 번씩 상습·반복적으로 복용하면 위험합니다. 간편하게 피임할 수 있어 보이지만, 체내 호르몬 체계가 교란돼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피임 효과도 떨어집니다. 특히 응급피임약은 복용 후 두 번째 성관계로 72시간 이내 또 약을 먹으면 임신 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장기간 피임이 필요하다면 한시적으로 활용하는 응급피임약이 아닌 피임 효과가 오래 유지되는 피임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체내 삽입형 피임약입니다. 한 번의 시술로 3~5년 동안 확실하게 피임이 유지됩니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활용하는 체내 삽입형 피임약은 여성호르몬 성분을 ▶팔뚝 안쪽에 이식하는 임플라논 ▶자궁 내 시스템인 미레나·카일리나·제이디스 등이 있습니다. 일정량의 여성호르몬을 지속적으로 방출해 자궁경부 점액의 농도를 높여 정자 이동을 어렵게 만들고 배란을 억제하는 등 동시다발적 기전으로 임신을 막습니다. 각 제품마다 삽입 부위, 유효 성분 용량, 피임 기간 등이 달라 의료진과 상담 후 자신에게 적합한 것으로 비교·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내 삽입형 피임약은 피임 효과가 탁월합니다. 체내 삽입 후 1년 내 누적 피임 실패율은 임플라논 0.05%, 미레나 0.2% 등으로 우수합니다. 어떤 제품이든 먹는 피임약을 완벽하게 복용했을 때 1년 내 누적 피임 실패율인 0.3%보다 낮습니다. 일반적인 사전 피임약의 피임 실패율은 8~9% 수준입니다. 임신이 걱정되지만 피임약 복용을 잘 잊을 때 적합한 장기 피임법입니다. 

만일 체내 삽입형 피임약으로 장기 피임을 고려한다면 월경주기에 맞춰 병의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체내 삽입형 피임약은 월경 시작일(생리출혈 첫날)을 기준으로 1~7일 이내 시술해야 합니다. 물론 시술 전 임신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해야 합니다. 시술 후에는 월경 주기, 출혈 양상 등이 달라질 수 있어 상태 변화를 관찰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월경으로 인한 출혈량이 줄면서 무월경 상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혼 등으로 가임력 회복이 필요하다면 체내 삽입형 피임약을 제거하면 다시 임신할 수 있습니다. 임플라논의 경우 반감기가 약 25시간에 불과합니다. 피임약 성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면 피임 효과가 사라집니다. 임플라논 임상 연구에서 체내 삽입형 피임약을 없앤 후 첫 주에 임신한 사례도 있습니다. 자궁 내 시스템이 적용된 제품 역시 10명중 7명 이상(71%)이 1년 내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이런 수치는 1년 간 피임을 하지 않은 여성의 평균 임신율인 85%와 유사한 수치입니다. 

9월 26일은 피임의 날입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은 여성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법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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