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로 도착 알리고 혈압 측정, 환자 시간 매일 460시간씩 아꼈다

인쇄

스마트 기술 입은 한림대성심병원

많은 사람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되레 병원 진료를 받기도 전에 녹초가 될 때가 있다. 진료실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거나, 받아야 할 검사를 깜빡해 장거리를 여러 번 오가기도 한다. 의료진 역시 진료실 앞 대기환자의 신원, 검사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등 단순 업무에 매달려 정작 중증 환자를 돌보는 데 시간이 빠듯해지기 쉽다. 이에 경기도 안양시의 한림대성심병원은 최근 스마트 기술을 병원 곳곳에 입혀 환자와 의료진의 동선·시간 낭비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람 중심의 스마트병원’을 만들겠다는 포부에서다.
 

한림대성심병원 이미연 커맨드센터장(왼쪽)과 김영미 간호사가 센터 내 통합관제모니터링실에서 실시간 병동 인원 현황을 모니터링하며 입·퇴원 지연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 김동하 객원기자
 

한림대성심병원은 스마트병원을 구축하기 위해 세 가지 특화 시스템을 갖췄다. 첫째는 ‘스마트 외래 시스템’이다. 이곳 외래진료 환자의 77%는 진료과별 외래 전용 도착 알림 키오스크를 통해 자신이 도착했음을 진료과에 알린다. 예전처럼 환자가 간호사를 직접 찾아가 도착 여부를 알리는 일, 간호사와 문답하며 신원을 확인하고 접수하는 일을 모두 생략할 수 있다. 환자의 스마트폰엔 환자가 가야 할 곳의 순서·시간을 담은 ‘맞춤형 알림톡’이 카카오톡 또는 문자메시지에 도착한다. 고령 환자를 위해서는 ‘안내 로봇’이 목적지(진료과)까지 동행한다. 진료실에 도착한 환자가 스마트폰에 뜬 모바일 환자카드의 바코드를 키오스크에 대면 환자가 할 일(채혈, 혈압 측정 등)을 알려준다.
 

혈압을 측정해야 하는 환자가 자동 혈압계 키오스크에 바코드를 찍고 혈압을 재면 결과값이 간호사·의사에게 자동으로 전달된다. 이후 병원 전산시스템에서 간호사에게 ‘해당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갈 준비가 완료됐다’고 알린다. 진료 준비가 완료된 환자는 대기자 명단에 올라가며, 실시간 대기 순번을 알려주는 알림톡이 환자의 스마트폰에 뜬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처방한 내용은 모바일 수납 알림톡으로 도착한다. 병원 내 전체 환자의 실시간 이용 현황은 ‘커맨드센터’에서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한다. 이미연(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커맨드센터장은 “아직도 많은 대형 병원에서 외래 환자가 장시간 대기, 복잡한 동선 등으로 불편을 느낀다”며 “환자 중심의 외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스마트 기술을 접목했다”고 설명했다.
 

로봇이 약 갖다주고 수술 과정 알려줘

둘째는 ‘환자를 위한 로봇 응대 시스템’이다. 이 병원은 지난 5월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AI·5G 기반 대규모 로봇 융합모델 실증사업’의 사회문제 해결 분야 사업자로 선정돼 의료 체계와 로봇 산업을 융합한 대규모 실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우선 로봇 5대를 구비했다. 병실을 돌며 공기·바닥의 병원균·바이러스를 박멸하는 ‘방역 로봇’ 1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의약품을 운반하는 ‘배송 로봇’ 2대, 환자에게 수술 전 준비사항과 수술 과정 동영상 등을 화면으로 알려주고 의사의 비대면 진료도 돕는 ‘비대면 다학제 로봇’ 1대, 길을 동행하는 ‘안내 로봇’ 1대 등이다. 내년 11월까지 추가로 67대를 더 들일 예정이다. 이 센터장은 “기존엔 수술을 앞두고 입원한 환자를 위해 수술 과정을 알려주는 설명서나 태블릿PC를 환자에게 가져다주고 다시 수거해야 했지만 이젠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급했다.
 

셋째는 ‘의료 빅데이터 구축·활용 시스템’이다. 이 병원은 지난해 4월 제2 별관에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를 개소하고 ▶빅데이터센터 ▶커맨드센터 ▶인공지능(AI)센터 ▶데이터전략팀을 꾸렸다. 예컨대 빅데이터센터에서 의료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한 결과값을 바탕으로 커맨드센터에선 병실·수술실 공실 현황, MRI 가동 현황 등을 실시간 점검하고 향후 상황을 인공지능으로 예측한다. 유경호(한림대성심병원장) 도헌디지털의료혁신연구소장은 “양질의 빅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분석하기 위해 ‘데이터 호수’로 불리는 데이터 레이크 클라우드 플랫폼(HERO)을 구비했다”고 말했다. 빅데이터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데이터 호수는 조직 내에서 수집한 모든 데이터의 저장소로, 물이 흘러들어 모이는 호수와 같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연구소는 한림대의료원 산하 5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 260만 명의 의료데이터를 모아 데이터 호수에 보낸 후 질환별 치료 효과는 어땠는지, 진찰료를 언제 수납할 때 환자가 병원 내 머무는 시간이 더 짧은지 등을 분석했다. 유 소장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해 봤는데, 환자가 진찰료를 수납할 때 병원 내 머무는 시간이 7분 단축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월 진료 후 수납 체계로 바꿨다”고 밝혔다.

1인당 진료 외 시간 10~11분 줄여
이 같은 스마트 시스템은 환자·의료진 모두의 만족도를 끌어올렸다. 키오스크를 사용한 환자가 진료를 받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사용하지 않은 환자보다 평균 3분을, 채혈 시간은 1분을 줄였고, 진료 후 수납으로 인해 줄인 시간은 7분이다. 채혈 여부에 따라 1인당 평균 10~11분씩 아낀 셈이다. 이곳 하루 외래 환자가 평균 3500명이고 그중 채혈해야 하는 환자가 700명인 점을 고려하면 키오스크를 사용한 환자(2695명)가 하루에 아낀 시간만 460시간에 달한다. 간호사는 환자의 진료실 도착 여부 확인 등의 단순 업무를 줄여 환자에게 직접 꼼꼼히 설명해야 하는 상담 업무 시간을 늘릴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이 병원이 지난해 ‘도착 알림 키오스크’를 도입하기 전(6월)과 후(10월) 21개 외래 부서의 간호사 21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했더니 전체의 76.1%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단순업무 경감에 따른 대면 상담 기회 증가’(23.4%), ‘환자 응대에 따른 스트레스 감소’(21.2%) 순으로 많이 꼽았다.
 

이 병원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예약 방식에 대한 특허도 출원했다. 이 센터장은 “MRI 검사의 경우 환자 상태에 따라 어떤 환자는 10분이면 끝나지만 어떤 환자는 2시간30분가량 걸릴 정도로 사람마다 검사 시간 편차가 크다”며 “MRI 1만7000여 건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환자 상태별 예상되는 MRI 검사 시간을 추려내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마다 대기 시간을 최소화한 최적의 검사일에 검사를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 병원은 ▶병상 배정 시스템 ▶입·퇴원 AI 예측 ▶외래진료 프로세스 최적화 ▶중환자실 병상 관리 ▶병원 운영·평가 관리 ▶AI 맞춤형 검사 일정 추천 시스템 등 병원 프로세스 개선 관련 특허 5종을 취득했다.
 

향후 한림대성심병원은 ‘진료 전(全)주기 스마트 시스템’을 가동하겠다는 목표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치료 후 관리까지 전 과정에 대해 스마트 기술을 녹이겠다는 것. 예컨대 심근경색 같은 응급환자가 119구급차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환자에게 무선 심전도 측정기를 붙이면 이 병원이 개발한 ‘한림 세이버’ 앱을 통해 응급의학과 교수가 환자의 생체 신호를 분석해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증상에 대처할 전문 응급 의료진을 미리 소집하기 위해서다. 환자는 병원 응급 CT실로 이송돼 응급 시술을 받는다. 이 병원은 병원 이송 전(前)부터 적용할 수 있는 이 기술의 개발을 마무리했다. 이 병원은 지난달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스마트병원 선도모델 사업’의 우수모델로 선정돼 연내 각 지역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스마트병원 시스템을 알린다. 이 센터장은 “최근 빅데이터와 AI, 사물인터넷, 로봇 등 다양한 신기술을 병원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많지만 정작 부서별 다른 업체의 기술이 제각각 적용되면서 호환성의 한계에 봉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한림대성심병원은 이들 기술이 환자·의료진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이어지며 사람 중심의 병원을 완성하는 이른바 ‘초연결’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 연구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