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의 건강 토크] 멍 때리고 거품 물고…뇌전증 발작 의심해야 하는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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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병원 신경과 황경진 교수

뇌전증(간질)은 뇌신경 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흥분해 정상적인 뇌 기능을 마비하는 만성적인 신경 질환이다. 뇌전증으로 거품을 물고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쓰러지는 뇌전증 발작 증상에 사회적 편견이 크다. 이런 전신 발작을 보이는 환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 잠깐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보거나 얼굴 또는 손·팔 등을 떠는 정도다. 뇌전증은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 뇌전증 발작을 숨길수록 뇌손상 위험만 커질뿐이다. 경희대병원 신경과 황경진 교수에게 뇌전증에 대해 들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뇌전증의 주요 증상인 뇌전증 발작은 비정상적인 뇌파로 생긴다.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돼 미세한 전기적 신호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 과정에서 뇌 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전류가 흐르면서 경련, 의식 소실 등 증상을 보인다. 과거에는 간질로 불렸다가 사회적 편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뇌전증은 어떤 사람이 잘 걸리는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뇌전증 환자 상당수는 뇌졸중, 열성 경련, 뇌종양, 퇴행성 뇌 질환, 선천성 기형 등 다양한 뇌 손상 후유증으로 뇌전증 발작을 보인다. 전 인구의 1~3%는 살면서 1회 이상 발작을 경험한다. 특히 뇌전증은 나이에 따라 유발 원인에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뇌전증은 영유아나 60세 이상일 때 발병률이 높다. 영유아기에는 선천성 기형, 주산기 뇌손상, 열성 경련이, 노년기에는 뇌 외상, 뇌종양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치매 환자의 20%가량은 뇌전증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발작 30분 이상 지속되면 뇌손상 일으킬 수 있어
뇌전증은 발작 조절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진다.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작이 나타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작을 보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황경진 교수는 “뇌전증 발작이라고 하면 거품을 물고 의식을 잃는 전신 증상을 떠올리지만 임상적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며 “짧게 끝나 뇌전증 발작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멍하게 있는데 말을 걸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의식은 있지만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 등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수의적으로 움직인다면 뇌전증을 의심해야 한다. 의미 없는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뇌전증 발작 증상이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실시간으로 뇌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하는 뇌파 검사 등으로 뇌전증 여부 등을 감별하는 검사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1회의 짧은 발작은 뇌손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단발성 경련을 겪고 의식이 돌아왔다면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의식 회복 없이 30분 이상 발작이 지속되는 뇌전증 지속증이라면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한다.

특히 발작 지속시간이 길어지면 그와 비례해 뇌손상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5분 이상 발작이 지속되면 환자를 가까운 응급실로 데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발작과 함께 의식이 없을 경우에는 꽉 조이는 넥타이, 벨트 등을 풀러 호흡에 도움을 줘야 한다. 특히, 입안에서 분비물이 나오거나 토를 한다면, 기도가 막혀 질식할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입안의 내용물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한다. 

▶ 뇌전증 발작 60%는 약물로 조절 가능
어떤 유형의 발작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뇌전증 진단·치료에 중요하다. 뇌전증 발작은 매우 다양하고 5분 이내 짧은 시간 나타났다 사라진다. 정확하게 감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조 증상, 발작 양상, 발작 후 임상 증상, 두통, 수면 등에 대한 다각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특히 뇌전증은 발작 양상, 환자의 특성 등에 따라 치료 방향도 달라진다. 황경진 교수는 “뇌전증 발작은 주변 상황과 관련없이 나타날 때마다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며 “스스로 발작 상황이 어땠는지 알지 못한다면 발작 당시 목격자 면담을 통해 발작 양상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뇌전증 발작은 크게 발작이 나타나는 범위에 따라 부분 발작과 전신 발작으로 구분한다. 부분 발작은 대뇌피질의 일부분에서 시작되는 신경세포의 과흥분성 발작을, 전신 발작은 대뇌 양쪽 반구의 광범위한 부분에서 생기는 발작을 의미한다.

부분 발작은 의식 유지 여부에 따라 다시 단순 부분발작과 복합 부분발작으로 나눈다. 단순 부분발작은 대뇌 일부분에서 시작되지만 전반으로 퍼지지 않고 의식이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발병 부위에 따라 운동·감각·정신 증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 쪽 손이나 발을 까딱거리거나 입꼬리를 당기거나, 한쪽 얼굴이나 팔다리 등에 이상 감각이 나타나거나, 낯선 물건·장소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의식장애가 있다면 복합 부분발작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거나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면서 주변 사물을 만지작거리는 등 의도가 확실하지 않은 행동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전신 발작은 증상이 온 몸에 나타난다. 발작의 특징에 따라 ①5~10초 이내 종료되면서 전조 증상 없이 갑자기 멍하게 있거나 고개를 푹 숙이는 소발작 ②발작 초기부터 정신을 잃고 온 몸이 뻣뻣해지고 고개가 한 쪽으로 돌아가는 강직 현상과 팔다리를 규칙적으로 떨면서 입에서 침을 흘리는 대발작 ③근육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경련하는 근육간 대경련 발작 ④순간적인 의식소실과 전신 근육에서 힘이 빠지는 무긴장 발작 등으로 세분화한다. 이후엔 뇌전증 유발 부위와 원인 분석을 위한 뇌파 검사, 뇌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등을 시행한다. 뇌전증 파형이 나오면 뇌전증으로 확진된다.

뇌전증은 발작을 조절하는 약으로 치료한다. 뇌전증 환자의 약 60% 이상은 적절한 약물치료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단, 뇌전증 발작의 종류와 뇌전증 증후군에 따라 사용하는 약물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뇌전증 발작을 억제하는 약을 2~3년간 복용하고 추가적인 발작이 없을 땐 약물 치료를 중단한다. 처음엔 단일 용법으로 시작해 조절이 잘 안되면 다양한 약을 복합적으로 처방한다. 발작이 완전히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라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한다. 국소 절제술을 통해 뇌전증 발작을 유발하는 부위를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절제술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미주 신경자극기를 삽입하거나 뇌심부자극술 등을 고려한다. 케톤 식이요법은 주로 소아에게 사용되는 방법으로 증상이 잘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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