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발견해 수술이 어렵다는 간암, 완치는 포기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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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 픽]〈22〉진행성 간암 치료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건강검진에서 간암으로 진단받은 50대 남성입니다. 별다른 증상이 없었고 오히려 또래에 비해 건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진행성 간암으로 진단받고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간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도 낮다고 나오던데 아직 초등학생·중학생 아이를 둔 가장으로 너무 막막합니다. 병원에서는 이미 암이 꽤 진행돼 수술은 어렵고 항암치료가 최선이라고 합니다. 진행성 간암에는 어떤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까요. 항암 치료부터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도 있던데, 완치 희망은 버려야 할까요.

울산대병원 소화기내과 정준호 교수의 조언

갑작스레 간암으로 진단돼 환자도 가족도 많이 놀랐을 것 같습니다. 간은 ‘침묵의 장기’로 유명합니다. 간은 바이러스·술·지방 등으로 인한 염증 반응으로 절반 이상 손상되도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암에 걸렸어도 오른쪽 윗배 통증,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체중감소 등 일상적인 증상만 나타나 건강 이상을 자각하기 힘듭니다.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려워 조언을 드리는 분처럼 뒤늦게 수술이 힘든 진행성 단계에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고 계신 것처럼 간암은 여러 암 중에서도 치료가 까다로운 편입니다. 2021년 발표된 암 등록 통계자료에 따르면 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전체 암(70.3%)과 비교해 매우 낮은 37% 수준입니다. 간암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상당수는 B·C형 간염 등 만성 바이러스 간 질환이나 알콜성 간 질환, 간경변증 등으로 간세포가 딱딱하게 굳는 섬유성 변화가 나타나면서 간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입니다. 간암으로 진단 당시 간 기능이 악화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원격 전이된 진행성 간암의 생존율이 매우 낮은 이유입니다.

다행히 최근엔 항암 효과뿐만 아니라 간 기능까지 고려한 치료법이 나오면서 진행성 간암의 치료 환경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한 진행성 간암 치료에 쓰이는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 요법이 대표적입니다. 최초의 항PD-L1계열 면역항암제인 티쎈트릭은 암세포와 암세포에 침윤된 면역세포에서 발현하는 PD-L1에 결합해 면역세포인 T세포가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발견·공격하도록 작용합니다. 아바스틴은 암세포 성장에 필수적인 산소·영양분의 공급을 억제하는 신생혈관 생성을 차단는 역할을 합니다. 서로 다른 작용기전을 가진 두 치료제를 동시에 쓰면 항암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첫 진단부터 암이 진행돼 수술이 어려울 때 고려합니다. 항암 치료를 비롯해 경동맥화학색전술(TACE), 경동맥방사선색전술(TARE), 방사선 치료 등을 결합해 연속적으로 시도하기도 합니다. 


현재 몸 상태 등을 고려해 우선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 요법 등 면역관문억제 방식의 항암 치료를 권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진행성 간암의 항암치료 반응률·생존율 등을 개선하는 효과를 입증해 국내에서도 많이 처방되고 있습니다. 미국·유럽 등 글로벌 간암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도 1차적으로 이 치료법을 적용할 것을 높은 수준으로 권고합니다. 올해 대한간암학회에서도 2022 간세포암종 진료 가이드라인을 통해 진행성 간암처럼 절제 불가능한 간암 환자의 첫 치료에 티쎈트릭+아바스틴을 병용하는 면역항암제 병용 치료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글로벌 임상(IMbrave150)을 통해 치료 효과도 입증했습니다. 티쎈트릭+아바스틴을 병용했더니 기존 치료법(소라페닙) 대비 사망 위험은 약 40% 줄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연구된 치료법 중 가장 긴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19.2개월) 데이터를 보였습니다. 객관적 반응률은 30%로 소라페닙 치료군(11%)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 중 약 8%는 종양이 모두 사라지는 완전 관해 상태로 확인됐습니다. 한국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기존 글로벌 임상 연구와 비슷한 안전성·유효성을 확인했습니다.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 치료는 삶의 질, 신체 기능, 역활 유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가 삶의 질이 떨어지기까지 기간에 대한 티쎈트릭+아바스틴 병용치료군의 중앙값은 11.2개월로 소라페닙 치료군 3.6개월과 비교해 크게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월부터 건강보험 급여도 적용돼 치료비 부담도 줄었습니다. 걱정이 크겠지만 희망을 잃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평소 간 건강 상태를 살피는 것도 필요합니다. 간 질환은 무관심이 키우는 병입니다. 마른 덤불 아래 숨겨진 작은 불씨처럼 소리없이 세력을 넓혀가다 순식간에 치솟아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합니다. B·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만성적인 염증 반응으로 간세포가 파괴하면서 간경화·간암으로 악화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술 소비량이 많고 B·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율도 높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에서도 만 40세 이상 성인 중 간암 고위험군(간 기능이 떨어진 간경변증이나 B·C형 간염 바이러스 항체 양성으로 확인된 사람, B·C형 간염 환자)을 대상으로 6개월 마다 무료로 간초음파 등 간암 국가검진을 무료로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치료가 까다로운 간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간절제, 간이식, 고주파 치료 등 근치적 치료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별다른 증상이 없더라도 간 기능 등을 점검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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