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뇌졸중 환자, 어디 사느냐에 따라 생사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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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졸중학회 "이대로는 제대로 된 치료 어렵다" 경고

2016~18년도에 발생한 허혈성 뇌졸중 환자의 약 20%는 첫 번째 방문한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24시간 이내에 다른 병원으로 전원 돼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전원환자의 비율은 지역별로 편차가 컸는데, 가장 낮은 곳은 제주로 환자의 9.6%, 가장 높은 곳은 전라남도로 환자의 44.6%로 환자의 절반 가까이가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아야 했다.

이에 대한뇌졸중학회 배희준 이사장은 1일 이 학회가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에서 '뇌졸중 치료 향상을 위한 병원 전 단계 시스템과 뇌졸중센터 현황 및 방향성'을 주제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뇌졸중 치료 안전망 확보를 위해 ▶병원 전(前) 단계 뇌졸중 환자 이송 시스템 강화 ▶응급의료센터 분포와 같은 전국적 뇌혈관질환 센터 구축 ▶뇌졸중센터 인증사업 지속·확장 등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대한뇌졸중학회 임원단이 1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뇌졸중 환자의 치료 시스템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심교 기자]

이날 기자간담회는 대한뇌졸중학회 주최로 국내 뇌졸중 치료 현황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효과적인 뇌졸중 치료를 위한 정책적 개선 방안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주제 발표를 맡은 학회 이경복 정책이사(순천향의대 신경과)는 “뇌졸중은 국내 사망 원인 4위 질환으로, 연간 10만 명 이상 환자가 발생한다”며 “전체 뇌졸중 환자의 78%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인 만큼,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뇌졸중으로 짊어질 사회경제적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뇌졸중은 갑자기 발생하는 뇌혈류 장애(뇌혈관의 폐쇄로 인한 허혈 뇌졸중, 뇌혈관의 파열로 인한 출혈 뇌졸중)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뇌졸중 치료에서 ‘골든타임’은 환자의 생명과 후유장해와 직접 관련돼 치료를 가능한 빠르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이 정책이사는 "재관류 치료(급성 뇌경색 환자에게 혈전 용해제로 혈전을 녹이거나, 기구를 뇌혈관에 넣어 혈전을 없애는 시술)가 가능한 뇌졸중센터로 1차 이송 비율이 증가할수록, 환자 사망률이 감소하는 경향이 연구에서 확인됐다"며 "병원 전 단계에서 뇌졸중 환자를 적절한 치료 기관으로 이송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원율이 높은 이유는 전문인력 부족과 뇌졸중센터의 지역 불균형에 있다. 강지훈 병원전단계위원장(서울의대 신경과)은 첫 병원 방문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지역별 편차가 심한 이유로 ▶뇌졸중 전문의료인력의 부족 ▶뇌졸중센터의 지역적 불균형 문제를 꼽았다.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지난 5월 기준으로 215개에 달하지만 표준치료가 가능한 뇌졸중센터는 67개뿐이다. 구급대원이 이송 예상 병원에 뇌졸중 의심되는 환자를 사전 고지하는 비율이 98%에 달하지만, 이 정보가 뇌졸중 진료 의료진에게 적절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대한뇌졸중학회는 지역 기반의 전문적인 뇌졸중 진료 체계를 구축, 양질의 뇌졸중 진료 제공, 지속적인 진료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2018년부터 뇌졸중센터 인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맥 내 혈전용해술 시행 가능 여부, 뇌졸중 집중치료실 운영 등 9개 기준 21개 항목을 통해 뇌졸중 급성기 치료가 가능한지가 인증의 주요 기준이다. 현재 재관류 치료까지 가능한 뇌졸중센터 54곳, 일반 뇌졸중센터 13곳 총 67곳이 뇌졸중센터로 인증됐다.

 문제는 뇌졸중센터가 서울·경기·부산 등 특정 지역에 밀집돼 있고, 소위 복합쇼핑몰 분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뇌졸중 환자의 급성기 치료가 가능한 뇌졸중센터도 수도권에 57.1%가 집중돼 있어 지역 편중이 극심하다. 차재관 질향상위원장(동아의대 신경과)은 "전남·전북·경북·강원 등과 같이 고령 인구의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 지역은 뇌졸중센터가 확충돼야 한다"며" 뇌졸중 같은 급성기 질환은 치료에 따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주지역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센터 50곳은 24시간 뇌졸중 진료 '불가'
학회는 뇌졸중센터 지역 불균형의 주원인 역시 인력·자원 부족을 꼽았다. 차재관 질향상위원장은 “뇌졸중집중치료실은 뇌졸중 후 환자 사망률을 21% 줄일 정도로 환자의 예후를 가늠한다. 2017년 뇌졸중 집중치료실에 대한 수가가 신설됐으나 턱없이 낮아 운영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뇌졸중 집중치료실의 입원료는 13만~15만원으로, 간호간병통합 서비스 병동 병실료보다 저렴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그는 신경과 전문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짚었다. 급성기 환자가 주로 방문하는 지역응급의료센터에 뇌졸중 진료가 가능한 전문인력이 부족하며, 2018년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 자료에 따르면 전국 163개 응급의료센터 중 24시간 뇌졸중 진료가 가능한 센터는 113개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집계된다. 즉, 30.7% 응급의료센터에서는 24시간 뇌졸중 진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학회는 이런 지역편중 현상 해결을 위해서는 병원 전 단계 뇌졸중 환자 이송 시스템을 강화하고, 중증응급의료센터 기반으로 뇌혈관질환 센터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응급의료서비스(EMS, Emergency Medical Service)와 뇌졸중 치료가 가능한 센터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담당 의료기관을 전국에 균형감 있게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진료권을 기반으로 한 응급의료센터 분포 체계와 같이, 급성기 뇌졸중 진료가 가능한 뇌졸중 센터를 전국적으로 확충하고 신경과 전문의를 배치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응급의료와 외상의 경우 1995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제정 이후 5년 단위로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세우고 행하며 지역-권역-중앙응급의료센터 지정·운영으로 전달체계의 구축이 어느 정도 안착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심뇌혈관의 경우 법률의 제정은 2016년으로 응급의료보다 약 20년 뒤졌고, 전달체계의 구축도 전국에 13개 권역센터가 지정된 수준이다. 배 이사장은 "이조차 현재 정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들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응급의료기금은 2759억으로 2021년보다 12% 증가했고, 암 관련 예산은 1019억 정도로 편성됐다. 하지만 중증 필수질환인 뇌졸중과 관련된 권역심뇌혈관센터 지원 예산은 71억으로 예산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배 이사장은 "전달체계의 기본인 지역뇌졸중센터의 설치, 권역센터 확대, 중앙센터 설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국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 학회는 이러한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대한응급의학과와 함께 내일(2일) 공청회를 진행한다. 이 정책이사는 "뇌졸중은 적정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급격히 달라지는 급성기 질환인데도 전문의 부족, 뇌졸중 센터 운영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지역별로 상당히 큰 편차를 보인다"며 "변화하는 인구 구조와 치료 환경을 반영해 병원 전 단계에서 적절한 기관으로 이송돼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며 치료의 질 관리를 위해 자원이 적절히 배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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