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위험 낮출 유전성 망막변성 치료, 골든타임 놓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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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

사람은 다섯 가지의 감각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중 80%는 눈을 통해 인식한다. 즉 시각에 문제가 생기면 세상의 80%를 잃는 것과 같다. 남은 20%의 감각만으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환자들은 삶의 상당 부분을 박탈당한 셈이다. 바로 유전성 망막변성 환자의 상황이다. 이 질환은 망막세포에 유전적 문제가 생겨 실명까지 진행되는 치명적 질환이다.


진료실을 찾은 유전성 망막변성 환자들은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요?”하고 묻는다. 점차 시력을 잃다가 완전히 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20%의 감각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가혹하다. 환자의 시야는 매일 터널에 있는 것처럼 좁고 어둡다. 특히 신체 기능이 가장 활발한 청소년기에 시 기능이 저하되면서 활동이 제한되고 사회 적응력까지 저하돼 학교와 직장 생활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중심 시야마저 좁아지면 환자들은 신체적·정서적으로 더욱 고립된다. 국내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전성 망막 질환자들은 일반인보다 우울감과 자살 생각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까운 사실은 시력을 지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 돌연변이 유전자 대신 정상 유전자를 망막세포에 넣어 시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전 세계 수많은 환자와 의료진이 그토록 기다리던 혁신적인 유전자 치료 기술이다. 아직 시작 단계지만 더 많은 유전자 치료 기술이 곧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유전자 치료는 충분한 양의 망막세포가 남아 있을 때만 효과가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유전자 치료가 고가인 탓에 건강보험 적용 없이는 현실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실명을 눈앞에 둔 환자들은 한시가 급한데도 급여 논의는 느리기만 하다. 환자 수가 적어서일까, 아니면 실명이 당장 생명을 위협하지 않아서일까. 병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 지체하다가 실명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골든타임’을 놓치는 환자가 생길 수 있다.

5월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새 정부에서도 희귀질환 치료를 위한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해 실질적인 보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이번 기념일을 맞아 유전성 망막변성 환자의 고충을 헤아려 봤으면 한다. 하루빨리 환자들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혜로운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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