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금연 정책 펴온 미국·영국, 전자담배 빗장 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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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독보다 유해성에, 英 일반담배 흡연율 줄이기에 활용

미국·영국 등 강력한 금연 정책을 추진해온 나라를 중심으로 최근 전자담배를 둘러싼 규제를 완화하면서 우리나라도 새로운 선진규제 환경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자담배 업계 관계자는 "전자담배가 청소년이나 여성, 비흡연자를 새로운 담배 제품 사용자로 끌어들이지 못하도록 규제·감시가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선진규제 당국처럼 전자담배가 일반담배 대체재로서 공중보건 증진에 도움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차별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이 나오는 데에는 지난해 10월 전 세계 공중보건 전문가 및 니코틴 정책 전문가 100명이 성명서를 내고 'WHO가 담배 위해 감소 정책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한 데서 비롯했다. 또 같은 달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한 회사의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 3종에 대해 ‘판매 인가’에 해당하는 ‘시판 전 담배 제품 신청(PMTA)’을 인가했다.


미국 내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해 중증 폐질환 발생 사건 이후 전자담배 규제를 강화한 FDA는 “자료 분석 결과, 해당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의 독성이 일반담배보다 훨씬 적었다”며 “담배 사용을 완전히 또는 현저히 줄이려는 흡연자에 대한 잠재적인 이익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위험보다 클 것이라고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FDA 인가 결정으로 힘을 얻게 된 새로운 담배 규제책은 ‘담배 위해 감소(Tobacco Harm Reduction)’ 정책이다. 담배 제품의 ‘중독’이 아닌 ‘유해성’에 초점을 맞춘 해당 정책은 일반담배 사용으로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는 성인 흡연자가 유해물질이 줄어든 대체 제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담배 규제와 관련한 해외 기관과 전문가는 위해감소 정책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은 전자담배를 통해 일반담배 흡연율을 빠르게 줄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영국은 일반담배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함께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95% 덜 해롭다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일반담배 흡연자의 전자담배 전환을 유도하는 금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영국의 흡연율은 2011년 19.8%에서 2017년 14.9%, 2018년 14.4%로 점차 줄었다. 캠페인의 효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23년에는 8.5~11.7%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日, 전자담배 등장 후 일반담배 42% 사라져 
미 FDA는 PMTA 외에도 ‘MRTP(Modified Risk Tobacco Product)’ 인가 제도를 두고 담배 제품이 공중보건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위해가 줄어든 담배제품’이라는 사실을 마케팅에 사용할 수 있는지 심사하고 있다. MRTP는 금연 정책 지속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흡연자를 위한 대안 방법이 있다면 과학적으로 엄격히 검증한 후 이를 인정하고 채택하도록 한 담배규제법을 가리킨다.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의 아이코스가 지난 2020년 7월 MRTP 인가를 받으면서 전자담배 분야에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로 기록됐다. 이로 인해 이 회사는 자사 제품에 대해 ‘담뱃잎을 태우지 않고 가열함’, ‘가열 시스템을 통해 유해물질 발생이 현저하게 감소함’, ‘아이코스로 완전히 전환할 경우 유해물질의 인체 노출이 현저하게 감소함’이라는 메시지를 미국 내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은 전자담배의 빠른 전환 추세로 담배 위해 감소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 나라로 손꼽힌다. 전자담배 시장이 궐련형 전자담배 제품 위주로 형성된 일본에서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등장한 초기인 2016년 대비 5년 만에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일반담배의 판매가 42%나 줄었다. 특히 일본의 국립암센터는 2020년 11월 궐련형 전자담배 간접흡연자 발암 위험이 일반 담배의 0.3%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의 사례는 대체재의 적극적인 수용과 전자담배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지 않는 정확한 정보 제공이 일반담배 판매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선 전자담배와 일반담배를 피우는 사람, 금연한 사람의 건강 위해도를 비교한 연구가 진행됐다. 지난해 10월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일반담배를 전자담배로 교체한 남성은 아예 금연한 사람보다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31% 높고, 특히 일반담배를 5년 이상 끊었다가 전자담배를 새롭게 피우기 시작한 사람은 지속해서 금연 상태를 유지한 사람보다 심뇌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70%나 급상승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자담배가 금연한 사람보다는 심뇌혈관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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