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 기획 곽한솔 kwak.hansol@joins.com
볼일이 급해 잠에서 자주 깨거나 화장실을 다녀와도 개운하지 않을 때, 소변 줄기가 가늘어지고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의심해야 할 병이 있습니다. 50대 이상 남성의 절반 이상이 겪는 병, 바로 전립샘비대증입니다. 소변길(요도)을 감싼 전립샘이 과도하게 커지면서 배뇨장애는 물론 소변이 나오지 않는 요폐나 방광 결석 등 2차 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전립샘비대증을 치료하는 약은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어 사전 체크가 필수입니다. 이번 주 약 이야기에서는 전립샘비대증 치료제의 작용 원리와 주의점에 대해 알아봅니다.

남성에게만 있는 전립샘은 전립샘 액을 생성해 정자에게 영양과 운동성을 공급해주는 생식 기관입니다. 정액에서 특유의 밤꽃 냄새가 나는 이유도 전립샘 액에 있는 특정 성분 때문입니다. 생식 기관인 만큼 성호르몬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요 남성호르몬 즉, 테스토스테론은 전립샘 내에서 5-알파(α) 환원효소에 의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라는 호르몬으로 전환됩니다. DHT에 더 많이, 오래 노출될수록 전립샘 세포가 자극을 받아 크기가 커지며 활성화합니다. 전립샘비대증으로 인한 배뇨장애는 중년 이후 발생·악화하는데 이는 나이가 들수록 DHT에 오래 노출돼 전립샘이 커지고 주변 근육의 긴장도가 덩달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DHT 생성 억제해 전립샘 커지는 것 막아
전립샘비대증 치료제는 원리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DHT를 줄이는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성호르몬 분비량은 감소하는 반면 전립샘은 커지는데 이는 5-알파 환원효소의 작용으로 DHT의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5-알파 환원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면 설령 남성호르몬이 있어도 DHT가 덜 생성돼 결과적으로 전립샘이 커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 성분으로 두타스테리드·피나스테리드가 꼽힙니다. 탈모인들에게는 익숙한 성분일 텐데요 실제로 이들은 탈모 치료제에 공통으로 쓰이는 성분입니다. 혈액을 돌던 남성호르몬은 특정 장기에서 5-알파 환원효소와 만나 DHT로 변환될 때 비로소 고유의 기능을 발현하는데 남성호르몬이 두피에서 DHT로 변환되면 남성형 탈모가, 전립샘에서 DHT로 변환되면 전립샘비대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부 남성은 동일 성분이라며 탈모 치료를 위해 전립샘비대증 약을 잘라 먹기도 하는데요 호르몬은 극소량만으로도 전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절대 금물입니다.

실제로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가 미치는 영향은 강력합니다. 발기부전, 성욕저하, 사정 장애, 근력약화를 비롯해 1~2%는 여성처럼 유방이 커지는 부작용(여성형 유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성에게는 더욱 치명적인데 특히 임신했거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이 약을 절대 만져서는 안 됩니다. 피부로 흡수될 경우 태반을 통과해 태아에게 전달돼 남아 성기 형성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만졌다면 즉시 비누나 세정제로 손을 깨끗이 씻고 1개월 이내로는 임신을 피해야 합니다.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는 혈청 전립샘 특이 항원(PSA) 수치를 낮추는 효과도 있어요. PSA는 전립샘암이 있을 때 수치가 증가하지만 약을 먹으면 PSA가 정상범위에 머물러 암인데도 이를 놓칠 수 있습니다. 5-알파 환원효소 억제제로 전립샘 크기를 줄이려면 최소 6개월 이상 복용해야 하는데요, 만약 PSA 수치가 약을 먹기 전보다 50% 이상 줄지 않는 경우 전립샘암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전립샘 근육 이완해 배뇨장애 개선
두 번째는 알파 차단제입니다. 전립샘이 커지면 소변길을 압박하는 동시에 전립샘 근육(평활근)이 수축합니다. 풍선에 바람을 집어넣으면 겉을 감싼 고무가 팽창하며 단단해지는 것처럼 근육이 긴장해 소변길이 더 좁아져 배뇨장애 증상이 심해집니다. 알파 차단제는 전립샘 근육을 이완시켜 소변 길을 넓혀주는 약으로 10명 중 7~8명은 투약 후 1~2주 내 배뇨장애 증상이 개선되고 용량과 비례해 장기간 효과를 지속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테라조신, 실로도신, 독사조신, 알푸조신, 탐스로신, 나프토피딜 등 치료제 성분도 다양해 임상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알파 차단제 역시 전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특히, 혈관을 넓히는 효과가 있어 심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고혈압·협심증약 등을 복용하는 환자는 심한 저혈압이 나타나기도 해 의사에게 꼭 복약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일반인도 누웠다가 일어날 때 기립성 저혈압으로 어지러움, 의식 상실, 낙상 등의 사고를 겪을 수 있어 체위 변경에 신경 쓰는 등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최근에는 알파 차단제를 장기 복용한 환자는 백내장 수술 시 홍채가 심하게 움직이거나 각막의 절개 부위를 통해 빠져 나와(홍채이완증후군) 치료 결과가 나쁘다고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안과 치료를 받을 때 사전에 전립샘 치료제 복용 여부를 의사에게 알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감기약 함부로 먹으면 안 돼
마지막은 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는 포스포다이에스터레이스5 억제제(PDE5 억제제)입니다. PDE5는 효소의 일종으로 음경과 전립샘·방광 등 골반 장기에 널리 분포해 있습니다. PDE5가 많으면 혈관을 확장하는 물질(cGMP)이 분해돼 혈류량이 줄고 근육이 수축합니다. 반대로 PDE5를 억제하면 혈액순환이 개선되며 긴장된 근육이 풀어지는데 이것이 PDE5 억제제가 발기부전, 전립샘비대증으로 인한 배뇨장애를 치료하는 원리입니다.
PDE5 억제제는 작용 기전 비슷한 알파 차단제와 많이 비교되는데요, 전립샘비대증 치료 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발기부전을 동시에 개선할 수 있어 전립샘비대증과 성기능장애를 함께 겪는 환자에게 주로 처방됩니다. 최근에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알파 차단제와 PDE5 억제제를 결합한 복합제도 출시되고 있습니다. 단, PDE5 억제제도 알파 차단제처럼 심혈관계 위험이 있거나 고혈압·협심증 약을 복용하는 환자는 복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발기부전 치료제와 동시 복용도 금물입니다. 이 약을 먹고 4시간 이상 발기가 지속하는 경우에도 즉시 의사를 찾는 게 바람직합니다.

겨울과 봄은 전립샘비대증 환자의 주름살이 깊어지는 때입니다. 기온이 떨어지면 전립샘 근육이 쉽게 수축하고, 땀이 주는 대신 소변량이 늘어 배뇨장애 증상이 더욱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체온 보호를 위해 옷을 따뜻하게 입고 잠들기 전 온수로 좌욕하는 습관이 증상 개선에 도움될 수 있습니다. 소변량을 늘리는 카페인·알코올도 멀리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전립샘비대증 치료제를 먹는 환자는 감기약도 함부로 먹어선 안 되는데요 감기약의 항히스타민과 에페드린 성분이 소변 길을 좁히고, 방광 수축력을 저하해 전립샘비대증으로 인한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무심코 두 약을 함께 먹었다간 급성 요폐로 응급실에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전립샘비대증 환자는 약물 처방 전 꼭 의사·약사에게 자신의 몸 상태를 알려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도움말 : 고려대 안산병원 비뇨의학과 배재현 교수(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홍보이사)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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