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만든 ‘숨은 한약’, 뇌세포 죽이는 단백질 생성 막고 분해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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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서 찾은 치매 해법 처방

치매는 현대 의학에서 정복하지 못한 난치성 질환이다. 중앙치매센터의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9’ 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는 75만488명(10.16%)에 달하며, 2024년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의 치매 치료제는 증상을 완화하거나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그친다. 그런데 최근 ‘숨은 한약’의 치매 예방·치료 효과가 입증돼 세계 신경의학계의 시선을 끌었다. 1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청뇌탕(淸腦湯)’이 그 주인공이다.
 

이진혁 청뇌한의원 대표원장은 동물실험에서 청뇌탕 복용이 치매의 예방·치료·개선에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성욱 객원기자

 치매는 후천적으로 기억·언어·판단력 등 인지 기능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떨어진 퇴행성 신경 질환이다. 청뇌한의원 이진혁(53) 대표원장은 “전체 치매의 50~6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은 베타아밀로이드·타우 단백질 등 이상 단백질의 과다 침착”이라고 설명했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계속 쌓이면 뇌 신경세포 간 신호전달을 방해하고, 타우 단백질 침착 같은 이차적인 병적 과정을 유발해 뇌세포를 점차 파괴한다.

기존 치료제는 치매 진행 속도만 늦춰

이 같은 이상 단백질이 많아지면 기억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생성을 저해해 아세틸콜린이 부족해진다. 이에 현재 치매 치료에 사용하는 대표적 약물인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도네페질·리바스티그민·갈란타민 등)’는 뇌 안에서 아세틸콜린이 분해되지 않게 해 인지 기능을 높이는 기전으로, 병의 진행 속도를 6개월에서 2년 정도 늦춘다. 이 대표원장은 “기존의 약물은 치매의 직접적인 원인인 이상 단백질의 생성을 막거나 이미 생긴 것을 분해하진 못한다”며 “더구나 이들 약에 대한 내성이 잘 생겨 치료 효과가 급감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점”이라고 언급했다.

이상 단백질의 생성·분해를 조절하며 치매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 ‘숨은 한약’의 연구결과가 지난해 5월 SCI급 국제학술지인 ‘알츠하이머병 저널’에 실렸다. 바로 이 대표원장이 연구를 주도한 ‘청뇌탕’의 동물실험 결과다. 그가 연구에 사용한 한약은 100여 년 전 한 한의사가 『동의보감』 등 전통 의서에서 치매 치료에 사용한 처방을 참고해 자신만의 노하우로 약재의 구성·용량을 바꿔 만든 ‘변방(變方)’이다. 이 변방으로 실제로 치매 환자를 다수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약 이름도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변방에 대해 이 대표원장은 ‘청뇌탕’으로 이름 붙였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약이란 뜻에서다. 청뇌탕은 원지·석창포·백복령 등 총명탕의 주요 약재에 인삼·숙지황 등 총 20여 가지 약재를 배합해 만든다. 이 원장은 “중증의 치매 환자에게 청뇌탕을 처방했더니 복용 3개월 만에 대소변을 가리고 배우자를 알아볼 정도로 호전됐다”며 “이 변방의 약리 효과를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 동물실험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원장은 2015년 착수한 1차 연구에서 미로에 쥐를 넣고 한쪽 출구에만 사료를 놓은 뒤 사료를 찾아가는 훈련을 시켰다. 이후 단기 기억상실증을 약물(스코폴라민)로 유도한 뒤 한 그룹에만 청뇌탕을 넣은 사료를 먹였다. 그랬더니 전체 쥐 가운데 청뇌탕을 먹은 쥐 그룹은 종전대로 미로를 지나 사료를 잘 찾아냈다. 이 원장은 “1차 연구결과를 통해 청뇌탕의 효과를 확신했고, 청뇌탕의 치매 예방·치료·개선 효과를 수치로 입증하기 위한 2차 연구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청뇌탕, 효과 인정받아 특허 등록 완료

2019년 말 그가 주도해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교실과 공동 진행한 2차 연구에서는 치매가 걸리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쥐를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치매에 걸린 쥐는 건강한 쥐보다 물속 미로를 찾아가는 시간이 2.6배 길었고, 치매에 걸리기 전 양방의 치매약(도네페질)을 먹은 쥐는 1.33배 더 소요됐다. 반면 치매에 걸리기 전 청뇌탕을 복용한 쥐는 정상 쥐와 똑같은 시간대에 미로를 통과했다. 이 대표원장은 “유전적으로 치매가 발병할 수밖에 없던 쥐가 청뇌탕을 먹고 이상 단백질량이 증가하지 않은 점은 청뇌탕의 치매 예방 효과를 입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연구에선 치매에 걸린 쥐의 대뇌피질에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덩어리가 정상군보다 8.9배 많았지만 청뇌탕을 복용하게 하자 46%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타우 단백질의 경우 치매 쥐가 정상 쥐보다 1.6배 많았지만 청뇌탕을 복용하자 그 양이 39% 줄었다. 그는 “치매에 걸린 쥐에게 청뇌탕의 주요 유효 성분인 네올린을 투여했더니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생성하는 BACE1 효소는 억제했고, 베타아밀로이드·타우 단백질을 분해하는 AMPK 효소는 활성화했다”며 “청뇌탕의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성분이 치매 치료에 관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청뇌탕의 치매 예방·치료·개선 효과를 인정받아 청뇌탕에 대해 지난해 6월 30일 특허청으로부터 ‘복합 한약재 추출물을 유효 성분으로 포함하는 알츠하이머병 예방, 치료 또는 개선용 조성물’로 특허(제10-2273322호)를 취득해 등록을 완료했다. 그는 “현재까지 청뇌탕을 처방한 치매 환자 중 많은 분들의 증상이 개선돼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며 “치매뿐 아니라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양방 치료와 함께 한방 치료를 고려해 보길 권장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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