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 쇠하고 허할 때 먹는 한약, 사람들이 찾는 이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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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5대 한약의 입증된 효과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기획 곽한솔 kwak.hansol@joins.com

수천년간 한의학에서 질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쓰인 약이 한약입니다. 풀뿌리, 열매, 나무껍질 등이 주요 약재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근거 중심의 양방과 달리 한방은 과학적인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는데요. 최근 수년간 한방의 과학화를 위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한방의 효능이 동물실험과 인체 적용시험 등을 통해 점차 입증되고 있습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선 주요 한약의 전통적인 효능, 과학적으로 밝혀진 효과와 한약의 이름에 숨은 비밀 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5대 한약
1500여 한약 가운데 국내에서 많이 찾는 5대 한약은 공진단·경옥고·총명탕·쌍화탕·우황청심원으로 꼽힙니다. 각각 전통적으로 알려진 효능이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습니다.
 
우선 공진단(拱辰丹)은 전통적으로 어지럽고 얼굴에 핏기가 없으며 허리와 다리가 시리고 저릴 때 처방해온 약물입니다. 공진단은 중국 원나라 때 의학자인 위역림의 치료 경험을 담은 의서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에서 처음 언급된 처방입니다. 이 의서에서 공진단은 갖고 태어난 기운을 단단하고 조밀하게 하며, 기운의 순환을 순조롭게 해 오장육부를 조화롭게 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는 공진단을 간 허약(肝虛藥)으로 분류해 “간이 허손할 때 치료하는 약으로, 얼굴에 혈색이 없고 근육이 늘어지거나 눈이 어두울 때 사용한다”고 강조했는데요.
 

현대 한의학에서는 공진단 복용이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개선할 수 있다는 효과가 동물실험에서 입증됐습니다. 2016년 미국 공공도서관 온라인판 국제 학술지인 ‘플로스원’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전대 한방병원 연구팀은 쥐에 공진단을 열흘간 먹이면서 공간지각 학습능력을 떨어뜨리는 약물(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방해하는 스코폴라민)을 격일로 복강에 5회 주사했습니다. 그리고서 쥐에게 미로 속 음식을 찾아 먹는 훈련을 시킨 뒤 학습과 기억 능력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공진단을 먹은 쥐 그룹은 먹이가 놓인 미로를 헤쳐나가는 능력은 2배 이상 향상됐고, ‘암실에 들어가면 전기쇼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시간은 3배 늘었습니다. 공진단 섭취군의 해마에서는 새로운 학습·기억 형성에 중요한 뇌 신경 성장인자(BDNF, NGF)가 2배 더 잘 생성됐습니다. 해마에서 줄어든 뇌 신경세포는 공진단을 투여한 이후 재생됐습니다. 이 연구는 새로운 학습·기억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해마조직에서 공진단이 뇌 신경 성장인자를 늘린다는 기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회춘에 좋다는 경옥고(瓊玉膏)는 중국 남송 시대에 의학자 홍준의 저서 ‘홍씨집험방’에 처음 기록된 이후 비위(脾胃)를 다스리는 약으로 사용됐습니다. 홍씨집험방에 따르면 경옥고라는 이름은 곽기라는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때 이 약을 먹고 나으면서 ‘진귀한 옥’과 같다 해 ‘경옥고’라 이름 붙인 것에서 유래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경옥고에 대해 “경옥고를 먹으면 노인이 젊어지고 여러 병을 없애며 오장(五臟)의 기가 차고 넘친다. 흰머리가 검어지며 빠진 이가 다시 생기고 걸을 때 말이 달리는 것과 같다”고 소개했습니다.
 
경옥고는 과학에서 어떻게 입증됐을까요. 올해 1월 경옥고 섭취가 여성의 갱년기 증상 개선에 효능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생약학회 생약학회지에 따르면 경희대 약학대학 류종훈 교수 연구팀은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난소를 절제해 인위적으로 갱년기 증상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서 경옥고를 8주간 투여했더니 우울증이 개선됐습니다. 갱년기는 난소의 기능이 점차 소실돼는 시기로 폐경 전후 3~4년간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급감하면서 안면홍조, 생식기 위축, 배뇨장애, 골다공증, 지질대사 이상, 우울증, 기억력 저하, 불면증, 피부 노화 등이 갱년기 증후군으로 나타납니다. 이 연구에선 경옥고의 인지력 개선 기능도 확인됐습니다. 쥐의 해마 부위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학습·기억·사고에 필요한 뇌 유래 영양인자(mBDNF)의 발현 정도를 확인했는데, 난소절제로 유도된 mBDNF의 발현 감소가 경옥고를 8주간 투여했더니 회복된 것이었습니다. 연구팀은 "경옥고는 이미 임상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제제이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갱년기 증후군 치료제로서의 사용 가능성도 기대된다"고 평가했습니다.
 

‘수험생 보약’으로 통하는 총명탕(聰明湯)기억력 감퇴와 건망을 치료하는 데 처방됩니다. 총명탕은 중국 명나라 때의 의사인 공정현(?廷賢)이 창안했습니다. 의원 집안에서 태어난 공정현은 1581년 간행된 그의 저서 ‘종행선방’에서 총명탕의 처방을 언급했습니다. 총명탕은 백복신·석창포·원지 등 약물 3가지로 간결하게 만들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총명탕이 ‘다망(건망증)’을 치료하며, 총명탕을 오래 복용하면 하루에 천 마디를 외울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총명탕은 기억력 감퇴와 건망증 등을 치료하는 데에 쓰였습니다. 기(氣)와 혈(血)을 원활하게 해 뇌세포의 신진대사가 활성화하고 기억력·집중력을 향상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두뇌 건강, 신경 보호, 기억력 증진, 병적 건망증과 경도 인지장애 치료, 치매 예방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총명탕에 대한 연구 결과물이 연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총명탕의 주원료인 원지(遠志)에서 분리·추출한 물질이 치매를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의 생성을 막고 이 단백질의 독성을 완화해 결국 기억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2016년 세계 최초로 입증됐습니다. 국내에서 진행한 동물실험에서 이 물질을 먹은 쥐는 먹지 않은 쥐보다 미로를 잘 찾아갔습니다. 물속 두 개의 방 중 한 방에만 전기충격을 주자 이 물질을 먹은 쥐는 전기충격을 준 방을 기억하고는 더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 물질을 먹지 않은 쥐보다 덜 우울했고 운동능력이 개선됐습니다.
 
기존 총명탕의 처방을 다르게 구성한 ‘시험총명탕(HT008-1)’의 임상시험 결과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SCI 저널인 약리생화학행동학회지(2008)에 게재된 임상시험 논문에 따르면 황만기 한의학 박사와 경희의료원 한방신경정신과학교실, 경희대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공동연구팀은 ‘시험총명탕’을 기억력이 떨어진 60세 전후 남녀 118명을 두 그룹을 나눠 한 그룹에만 시험총명탕을 먹게 한 뒤 웩슬러 기억 검사법 등을 활용해 인지 기능을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시험총명탕을 복용한 그룹이 대조군보다 인지 기능이 유의미하게 향상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총명탕에 대한 인체 적용시험을 국내 최초로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흔히 쌍화탕(雙和湯)은 감기 치료를 위해 많이 찾지만 기와 혈이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도록 쌍(雙)으로 조화롭게 해 피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원리를 담은 처방입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음양(陰陽)이 모두 허할 때 쓴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즉 마음과 몸이 모두 힘들고 기혈이 모두 상할 때, 성관계 후 일을 많이 하거나 일을 많이 한 다음 성관계를 가질 때, 큰 병을 앓은 다음 허하거나 기가 모자라 저절로 땀이 나는 등의 증상을 치료할 때 쌍화탕을 처방했다고 합니다. 쌍화탕의 약제인 백작약은 기를 북돋워 주고 근육·조직의 긴장으로 인한 혈행 장애를 개선하기 위해 처방됐습니다. 숙지황·당귀·천궁은 혈을, 황기는 기를 보해주며 계피·감초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데 사용됩니다. 이 때문에 피로, 권태감, 복통, 병후 쇠약, 신기 부족 시 쌍화탕이 처방됩니다.
 
현대에 들어 진행된 쌍화탕에 대한 연구결과 피로·골다공증 개선 효과, 모발 성장 효과, 항염증 효과 등에서 유의성 있는 결과가 보고됩니다. 그중 쌍화탕의 피로 개선 효과는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여러 차례 입증됐습니다. 한국체육과학회지에 따르면 쌍화탕을 복용한 선수는 그렇지 않은 선수보다 산소 최대 섭취량이 늘었고, 혈중 젖산농도를 더 잘 회복해 피로를 푼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대한본초학회지에 따르면 쌍화탕을 복용하면 운동 후 피로의 신속한 제거와 노화 방지에 일정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이 밖에도 쌍화탕의 진통과 항경련 효과, 성호르몬 분비 증가 효과, 간 기능 개선 효과 등이 보고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긴장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 많이 찾는 한약재가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이죠. 우황·사향·서각 등 생약 30여 종으로 만든 환제입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우황청심원은 갑자기 풍을 맞아 정신을 잃고 넘어질 때 처방됐습니다. 또 심기(心氣)가 부족하고 정신·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아무 때나 기뻐하고 성내거나 정신 착란 증상, 신병(神病)에 두루 쓰는 처방이라고 설명합니다. 신병은 정신 관련 질환을 가리키며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발작, 금전적인 손실을 보는 등 충격으로 인해 기력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을 포함합니다.
 
우황청심원을 복용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뇌 조직의 손상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한의학연구원(2013년)에 따르면 대전대 한의대 연구팀은 증류수만 먹인 쥐와 우황청심원의 양을 달리 투여한 쥐에 스트레스를 가한 뒤, 뇌 조직의 손상 정도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돼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코르티코스테론과 혈관 수축 등을 유발하는 아드레날린이 증류수를 먹은 쥐보다 우황청심원을 투여한 쥐에서 각각 86.9%, 75.2% 적었습니다. 또 뇌 조직의 손상을 일으키는 스트레스성 활성산소도 우황청심원을 먹인 쥐에서 50~60% 적게 나타났는데요. 이는 우황청심원이 스트레스 호르몬과 유해산소 발생을 억제해 뇌 조직을 보호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우황청심원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뇌 조직 손상에 대해 예방 효과가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힌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내게 맞는 제형 선택하고 한약처방명 확인해야
한약도 양약처럼 제형이 다양합니다. 경옥‘고’, 공진‘단’처럼 이름의 끝 글자에서 제형의 힌트를 찾을 수 있죠. 한약의 제형은 크게 탕제(湯劑), 전제(煎劑), 고제(膏劑), 산제(散劑)로 구분하는데요. 물약 형태의 한약이 탕제입니다. 쌍화탕이 대표적인데요. 한약재의 유효성분을 추출하기 좋고 약물이 체내 잘 흡수될 수 있지만, 맛이 쓸 수 있다는 게 단점입니다. 전제는 끓여서 약간 졸인 형태이며, 고제는 탕을 더 오래 달려 수분을 날리고 꿀처럼 만든 약입니다. 경옥고가 대표적입니다. 오랜 시간 약을 달여 약의 흡수율을 높이고 약의 부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어 예민한 체질에 권장됩니다. 산제는 가루 형태의 한약입니다. 조제 시간이 짧아 감기, 소화 장애, 설사 등 빠른 치료가 필요할 때 처방됐습니다.
 
이들 한약을 알약 형태로 만들어 휴대성을 높인 제품이 많이 나옵니다. 알약 형태는 한약재를 가루 내고 둥글게 빚은 환(丸), 으뜸가는 유효성분을 보호하기 위해 금박을 입힌 원(元), 원보다 약간 큰 환약인 단(丹), 환을 살짝 눌러 납작하게 만든 정(錠)으로 구분합니다. 이들 한약은 한의사가 한의원·한방병원에서 처방하는 ‘전문한의약품’과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 등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몸 상태에 따라 한약의 약제와 제형을 잘 선택해야 하므로 한의사와 상담하는 게 권장됩니다. 한약처방명과 유사한 명칭으로 나온 식품은 한약의 약리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과대광고일 수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간혹 ‘공진환’ ‘경옥정’ ‘쌍화액’ 등 한약처방명(공진단·경옥고·쌍화탕)과 유사한 명칭으로 일반 식품이 출시돼 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적발되고 있으므로 소비자의 신중한 선택을 당부했습니다.
 
 
도움말: 황만기 한의학 박사(아이누리한의원 대표원장 겸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자생한방병원 한방의학정보, 한의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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