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종 불문 항암제가 진정한 정밀의학 시대 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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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인터뷰]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명아 교수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명은 암에 걸리는 시대다. 표적·면역 항암제 등 치료 효과가 좋은 약들이 개발되면서 5년 이상 생존하는 암 생존자가 크게 늘었다. 특히 의학이 발전하면서 암 진단이 세분화되면서 기존 치료법으로는 한계가 존재했던 희귀암 치료도 가능해지고 있다. 최근엔 암 종류와 상관없이 특정 유전자 융합이 원인인 모든 암을 치료하는 항암제도 나왔다. 암종 불문 항암제다. 대표적인 제품이 NTRK 유전자 융합 치료제인 비트락비(성분명 라로트렉티닙)이다. 안타깝게도 NTRK 유전자 융합 단백질으로 인해 암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해당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면 무려 79%의 객관적 반응률을 보일 정도로 임상적 유용성이 뛰어나다.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이명아(사진) 교수에게 암종 불문 항암제의 의미와 미래 항암치료 트렌드에 대해 들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Q1. 암종 불문 항암제가 무엇인가.

“어떤 부위에 발생한 암이든 특정 유전자를 표적으로 작용하는 항암제다.  NTRK 유전자 융합을 표적으로 하는 비트락비, 로즐리트렉 등이 대표적인 제품이다.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와 비슷해보이지만 이보다 한 단계 진화한 최신의 항암 치료제다.

개인적으로는 암종 불문 항암제가 항암 치료 분야에서 정밀의학 개념을 가장 잘 반영했다고 본다. 어느 부위에 암이 생겼는지와 상관없이 특정 유전자가 발견되면(표적을 확인하면) 동일한 효과를 보인다는 점에서 의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전 세계적으로 NTRK 유전자 융합 말고 다른 암종 불문 항암제는 없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검사로 더 많은 암 유전자 정보를 연구하고 표적을 찾으면 다양한 암종 불문 항암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진정한 정밀의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Q2. 표적·면역항암제와는 어떻게 다른가.

“이론과 현실이 미묘하게 다른 것과 비슷하다. 처음 표적항암제가 개발됐을 땐 어떤 암이든 표적이 있으면 약효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 써보니 암 종류마다 항암효과가 차이가 존재했다. 같은 유전자가 발현되더라도 종양 주위 미세 환경이나 종양의 성질, 발현 형태에 따라 상호작용이 다른 것이 원인으로 본다. 

실제 HER2를 타깃으로 하는 허셉틴(성분명 트라수투주맙)이라는 표적항암제는 유방암·위암 등에는 치료효과가 좋지만, 대장암 등에는 기대보다 떨어진다. 면역항암제도 PD-L1 양성이라고 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유전자가 발현됐어도 암 종류마다 치료 효과가 다른 셈이다. 암종 불문 항암제는 확실한 표적을 파악해 어느 부위에 암이 발생했는지에 상관없이 치료효과를 보인다.”

Q3. 국내에서도 암종 불문 항암제로 치료받는 사람이 있나.

“아쉽게도 많지는 않다. 국내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반응률이 높지 않아서다. 암종 불문 항암제로 치료를 받으려면 먼저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검사 등에서 NTRK 유전자 융합 등 이상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 암·유전질환 등을 진단하기 위해 NGS 검사를 받을 땐 50% 정도 건강보험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참고로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발현율은 나이와 암종 유형에 따라 다르다. 성인은 분비성 침샘암, 분비성 유방암 등에, 소아는 영아섬유육종, 분비성 유방암 등에 많이 발견된다. 폐·전립선·결장 등 일반적인 암 유형에서 NTRK 융합 발생 빈도는 1% 미만으로 추정된다. 어떤 암이든 NTRK 유전자 융합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면 암종 불문 항암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유전자 변이만 확인하면 어떤 암이든 치료 효과 기대
NGS검사로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확인해야
치료효과 감안하면 신속한 급여 기대

Q4. 암종 불문 항암제의 치료 예후는 어떤가. 

“기대 이상이다. 사실 NTRK 유전자 융합 양성인 경우가 매우 드물어 '이 약을 쓸 수나 있으려나’라는 의문이 컸다. 마침 관련 임상 연구를 통해 대상자에게 사용해 보니 드라마틱한 효과를 체감했다. 50대 초반 남자 환자였는데, 젊은데 표준항암치료를 받아도 반응이 거의 없고 전신 상태는 매우 불량했다. 식사도 거의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NGS 검사에서 NTRK 유전자 융합 양성을 확인하고 비트락비로 치료했더니 암 크기도 줄고 잘 먹으면서 체중도 늘었다. 현재 10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NTRK 유전자 융합 암종 불문 항암제인 비트락비는 체내 발암인자 역할을 하는 NTRK 융합 단백질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암을 치료한다. 임상연구 통합분석에서 객관적 반응률(ORR) 79%, 완전 반응률(CR) 16%, 부분 반응률 63% 등을 확인했다. 종양의 완전 관해는 아니더라도 후속 치료 등이 더해지면 더 좋은 치료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더 이상 치료법이 없는 이들에게 암종 불문 항암제는 마지막 희망이다. 

향후 임상 연구가 더 진행되면 생존기간을 얼마나 유효하게 연장시켰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도 암종 불문 항암제의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는 NGS검사 결과를 살필 때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여부를 더 잘 살피게 됐다.”

Q5. 암종 불문 항암제에 적합한 사람인지 어떻게 아나. 


“NGS검사를 통해서다. 안타깝게도 NGS 검사를 받아도 정작 타겟 유전자인 NTRK 유전자 융합 양성인 경우도 많지 않다. 현실적으로 암종 불문 항암제를 염두해두고 수술 혹은 항암치료 전부터 미리 NGS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다만 1차 치료 후 예후가 기대했던 것보다 매우 나쁘다면 NTRK 유전자 융합 양성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NTRK 유전자 융합 단백질 양성 반응 자체가 발암 요인이다. NTRK 유전자 융합 단백질을 보유한 암 환자는 암세포의 증식·분열이 빠르다. 항암치료를 받아도 치료 반응이 매우 미미하고 전신 상태도 불량한 경우가 많다. 이때는 NGS 검사로 NTRK 유전자 융합 양성 여부를 확인하고 암종 불문 항암제 사용을 논의해 볼만 하다. 또 담도암·육종·두경부암 등 표준치료가 없거나 췌장암처럼 1차 치료가 끝나면 전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라면 처음부터 NGS 검사를 받는 것을 고려한다. 

암종 불문 항암제를 쓰지는 못하더라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NGS검사 결과를 다음 항암치료 때 활용할 수 있고 새로운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임상연구에 참여하는데도 유리하다.” 

Q6. 소아도 암종 불문 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다던데.

“그렇다. 생후 1개월부터 사용이 가능하다. 비트락비는 소아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 약효·안전성·내약성 등을 확인했다. 생후 1개월부터 21세까지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높은 반응률을 확인했다. 란셋 등에 보고된 데이터에 따르면 대부분 경미한 이상반응만 보였다. 일반적으로 소아암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약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일이다.”

Q7.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는 비트락비처럼 표적에 딱 맞는 항암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표적·면역 항암제 모두 특정 암에만 효과를 보일 뿐이었다. 비록 발현빈도는 높지 않지만 비트락비 같은 암종 불문 항암제의 치료효과는 확실하다. 언젠가 핵심 표적(Key-Factor)을 갖춘 치료제가 나오면 암도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암종 불문 항암제는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 치료제다. 

좋은 약이지만 정작 쓰려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금전적 부담이 크다. NTRK 유전자 융합 양성은 매우 희귀하게 나타나고 기존 표준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로 지원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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