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난치병 퇴치할 백신·신약 연구개발 허브 문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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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메디사이언스 파크'

고려대의료원은 국내 감염병 연구의 메카로 손꼽힌다. 1970년대 세계 최초로 한타바이러스를 발견하고 이를 예방할 백신을 개발한 곳이 고려대의료원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연구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신종 인플루엔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방역 최전선에서 국민의 삶을 지켜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시대에도 고려대의료원의 활약은 계속됐다. 안암·구로·안산 병원 소속 감염내과 교수들은 신문·방송·유튜브를 통해 코로나19의 위험성과 방역수칙, 백신 접종의 필요성 등을 전달하며 대중의 과도한 불안감을 잠재웠다. 지난해 3월 서울 사립대병원으로는 처음으로 대구·경북에 의료진을 파견하며 환자를 돌봤고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요청으로 코로나19 관련 자문을 진행하며 ‘K방역’의 글로벌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감염병 예방·치료 40여 년 노하우 축적
이제 고려대의료원은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를 바라본다. 신종 감염병은 물론 난치성 질환의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백신·신약 등 바이오 메디컬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최근 개소한 서울 성북구 정릉의 ‘메디사이언스 파크’는 이런 고려대의료원의 의지와 비전이 함축된 공간이다. 김영훈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민간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수백억원을 투자해 전문화된 백신·신약 개발에 뛰어든 것은 그 자체로 초일류 의료기관을 향한 고려대의료원의 책임감과 자신감을 대변하는 일”이라며 “새로운 감염병 팬데믹(대유행)에 대비하고 빅데이터 기반의 미래의학을 실현하는 ‘K-의료’의 허브로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메디사이언스 파크의 핵심은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정몽구 백신혁신센터’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기부받은 100억원을 마중물로 향후 10년간 수백억원을 투자해 신종 감염병을 이겨낼 듀얼·범용 백신 개발에 나선다. 김 의료원장은 “감염병 팬데믹을 해결하려면 궁극적으로 전 세계인의 집단면역이 형성돼야 한다”며 “독감과 코로나19, 나아가 모든 종류의 변이 바이러스에 대응할 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고려대의료원의 ‘K-백신’ 개발이 기대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뛰어난 연구 역량이다. 고려대의료원은 이미 유행성출혈열(한타바이러스), 신종플루 등의 감염병 백신 개발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도 코로나19 특성을 분석한 논문을 세계적인 학술지 ‘NEJM’에 국내 최초로 게재한 데 이어 총 6건의 코로나19 관련 임상시험에 참여하며 백신 후보물질 발굴과 운반체(플랫폼)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김 의료원장은 “독감·메르스 연구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실마리가 됐듯, 의료원에서 축적한 바이러스·세균 관련 기초·임상 데이터를 활용하면 신종 감염병에 보다 빠르고 정확한 대처가 가능하다”며 “전문 인력이 한 분야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도 일반 기업과 다른 대학 의료기관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둘째, 폭넓은 연구 네트워크다. 백신 개발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허가, 생산과 공급의 모든 과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산·학·연·관의 긴밀한 소통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고려대의료원은 비영리 기관으로서 대학·병원은 물론 제약·바이오 기업, 정부와도 원활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김 의료원장은 “메디사이언스 파크는 고려대·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5200여 명의 박사급 연구 인력이 모인 ‘홍릉 바이오 클러스터’에 인접해 교류·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지난해 ‘넥스트 노멀 콘퍼런스’를 공동 주최한 미국 존스홉킨스대, 영국 맨체스터대 등 글로벌 감염병 전문가와의 교류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백신혁신센터에는 코로나19와 같은 고위험 병원체를 안전하게 연구하기 위한 생물 안전 3등급(BSL-3), 동물이용 생물 안전 3등급(ABSL-3) 시설도 설치·운영된다. 특히 ABSL-3는 기존에 의료원이 운영하던 데서 규모를 두 배 이상 확대해 ‘전 임상 연구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높일 계획이다. 메디사이언스 파크의 또 다른 건물인 동화바이오관에도 2개 층에 GMP(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 시설을 유치해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낸다. 김 의료원장은 “입주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제약사, 정부 기관 등과 협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감염병·난치병 정복의 시계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 의료 서비스 개발에도 주력
메디사이언스 파크의 또 다른 축은 정밀의료다. 고려대의료원은 최근 산하 3개 병원을 클라우드 기반의 정밀 의료 병원 정보시스템(P-HIS)을 통해 하나로 묶었다. 3000여 개 병상, 연간 400여만 명의 환자로부터 의료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김 의료원장은 “내년에 신설되는 의료정보학교실은 의료 정보를 관리·가공해 정밀 의료, 가상 병원 등 새로운 형태의 의료 서비스로 재창출하는 역할을 맡는다”며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메디컬 융·복합 연구를 통해 미래의학을 현실로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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