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먹고 바르는 약, 언제까지 사용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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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최대 투여기간과 투여기간 주의 성분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 기획 곽한솔 kwak.hansol@joins.com

약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시간들이 있습니다. 우선 식품의 유통기한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유효기간이 있겠죠. '보관 기간이 좀 있는 약인데 사용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들 때 필히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죠. 또 약효 지속시간이 있습니다. 약효가 얼마나 오래가는지는 환자의 상황과 치료 목표에 따라 처방약을 달라지게 합니다. 투약 시간도 중요하죠. 언제 투약(복용)하느냐에 따라 부작용 여부와 치료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 들어본 적은 없으신가요? '이 약을 현재 사용(투약)하고는 있는데, 언제까지 써도 되는 거지?' 증상이 없어지거나 치료가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마냥 계속 써도 되는 걸까요? 약이란 것이 원래 독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써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약에서 중요한 또 다른 시간 개념인 최대 투여기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중세시대 약리학자 파라셀수스가 한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말은 유명합니다. 약은 필연적으로 독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죠. 따라서 오래 사용할수록 몸에는 해로울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장기간 관리 차원에서 사용해야 하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치료제는 예외입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약은 사용 기간이 짧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기간에 치료되거나 증상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그래서 본능적으로 나아질 때까지 약을 사용하게 됩니다. 용법, 용량과 처방을 준수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투여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부작용, 내성, 의존성 위험을 높입니다.
 

그러면 증상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더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기간의 개념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최대 투여기간입니다.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별도로 표기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이 기간을 1주일(7일) 정도로 잡습니다. 전문가들은 "2~3일 혹은 1주일까지 사용해도 차도가 없으면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기간을 잡는 이유는 일반약의 경우 대부분 대증요법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치료하는 약이라기보다는 증상을 완화·억제하는 약이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환자가 손쉽게 구입·사용할 수 있도록 한 약은 당연히 바로 사용해 증상부터 가라앉히는 것이 주목적이겠죠. 전문적인 진료 전에 상황부터 진정시키는 용도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죠. 그래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약들이기 때문에 7일까지 연속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코막힘에 사용하는 비염 스프레이(비충혈제거제) 중 자일로메타졸린 성분(오트리빈 등)은 코 안에 뿌리면 콧속 혈관을 수축시켜 코막힘을 빠르게 완화해 주지만 지속해서 사용하면 오히려 잘 낫지 않는 약제성 비염(반동성 비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약은 7일까지만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또 변비약에 사용되는 비사코딜 성분(둘코락스 등)은 너무 오래 사용하면 장의 신경과 근육에 손상을 줘서 내성이 증가하고 전해질 불균형과 탈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변비가 악화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비사코딜 성분이 들어간 변비약도 최대 투여기간이 1주(7일)입니다. 국소 스테로이드 외용제의 경우 증상이 호전될 때까지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요, 우선 성분에 따른 강도를 잘 고려해 적절한 약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스테로이드 외용제는 적절한 강도의 약을 선택했을 경우 매일 최대 4~5주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처럼 특정 성분이 들어있는 약의 최대 투여기간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리스트로 관리하고 있는데요, 바로 '투여기간주의 성분' 리스트입니다. 투여기간주의 성분이란 특정 투여기간을 초과해서 투여할 경우 효과의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고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커져 최대 투여기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유효성분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일반의약품뿐만 아니라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까지 총 45개 성분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 이 리스트에 명시된 최대 투여기간은 전문가들의 설명대로 대부분 '7일' 혹은 '1주'로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7일보다 기간이 짧은 약도 있습니다. 가장 짧은 최대 투여기간은 '2일'인데요 이들 약은 대부분 주사제입니다. 이 외에 요로 불쾌감 경감에 사용되는 페나조피리딘 성분, 분만 유도 시 사용되는 질정제인 디노프로스톤 성분 역시 최대 투여기간이 2일로 짧습니다. 
 
반대로 최대 투여기간이 긴 약도 있습니다. 보통은 충분한 치료가 필요한 약이 해당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손발톱 무좀치료제인 시클로피록스 성분(풀케어 등)입니다. 이들 약은 임의로 사용을 중단하거나 충분히 제대로 뿌리거나 바르지 않으면 피부 진균을 제대로 죽이지 못하고 재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성분의 경우 최대 투여기간이 6개월로 긴 편입니다.
 

약간 다른 개념으로, 일정 기간 이상 투여해야 하는 약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항생제입니다. 이유는 항진균제와 비슷한데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 제균 치료를 위해서는 7~14일 정도는 투약해야 적절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입니다. 항불안제가 대표적인데요. 여기에 해당하는 약들은 다른 약과 달리 시작용량과 치료용량이 있습니다. 치료용량까지 부작용 없이 연착륙하기 위해 시작용량부터 점점 용량을 올리다 일정 기간 후에 치료용량에 도달합니다. 이런 과정 때문에 환자 중에는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치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죠.
 
 
약에서 투여기간은 참 중요합니다. 너무 길어서도 너무 짧아서도 안 되죠. 이 기간은 부작용은 최소화하면서 효과와 치료결과는 최대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최대 투여기간은 완전히 절대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의사의 판단과 치료 방향, 계획에 따라 처방 기간이 이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 개념을 이해한다면 안전한 약 사용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도움말: 고려대안암병원 약제팀 이정진 약사, 인천성모병원 약제팀 임양순 팀장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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