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된 조현병 지원 정책, 코로나 팬데믹 속 중증 환자 '나침반'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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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정신질환 관련 정책의 변화

정부가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과 함께 정신질환 관련 주요 정책들을 확대하며 정신질환자의 치료 환경과 삶의 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신질환자가 조기에 집중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치료 거부나 중단 없이 안정적인 치료가 지속하도록 국가가 직접 지원, 관리하는 게 골자다. 과거 문제로 지적됐던 수용 위주의 장기 입원 치료에서 벗어나 ‘탈원화’ ‘외래 치료 및 조기 치료 활성화’ 등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는 선진화된 치료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조현병을 중심으로 변화한 정신질환 관련 정책을 알아본다.
 

중위소득 120% 이하까지 치료비 지원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 ‘정신질환자 치료비 지원 사업’ 대상을 더욱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신질환 발병 초기(5년 이내)인 환자에 대해 기존에 중위소득 80%까지 적용되던 치료비 지원 사업이 중위소득 120% 이하 가구(4인 가구 기준 585만2000원, 건강보험료 소득판정 기준표)까지 확대된다. 또한,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돼 긴급 처치가 필요한 행정입원과 응급입원에 더해 외래치료 명령 대상자까지 소득 요건과 관계없이 본인부담금을 1인 연간 최대 45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확대 조치는 2021년 상반기에 발생한 치료비까지 적용된다. 치료비가 발생하고 180일 이내에 환자, 보호 의무자, 의료기관 직원이 국립정신건강센터(www.ncmh.go.kr)와 각 보건소 또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누리집 등에서 신청 양식을 받아 주소지 관할 보건소에 신청하면 된다.
 
입원실 병상 수 10개→6개 '탈원화 및 외래 치료' 가속화

지난 3월 공포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령에서는 병상 밀집도 개선에 대한 지침이 제시됐다. 정신 병동 내 감염병 예방 및 안전 강화를 위해 신규 정신의료기관은 시행일인 3월 5일부터, 기존 정신의료기관은 2023년 1월부터 입원실당 병상 수를 6개 병상 이하로 제한하고 병상 간 간격은 최소 1m 이상 확보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신의료기관의 병상 수를 축소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집단 감염을 예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병상이 줄어 입원 치료가 제한되면 환자들을 위한 외래 치료가 활성화돼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나 제도 등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탈원화’와 함께 외래에서도 원활히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치료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현병 장기지속형 주사제, 환자 부담 크게 줄어

올해 초 발표된 ‘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약물 순응도를 높이고 환자가 스스로 사회 복귀를 지향할 수 있도록 돕는 계획이 담겼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탈원화와 외래 치료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지속해서 촉구해 온 의료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현병의 장기지속형(LAI, Long-Acting Injection) 주사제 처방이다. 지난 4월 20일부터 조현병 의료급여 외래환자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처방 시 치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된다. 조현병 치료에서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환자의 사회적 복귀를 돕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개월 혹은 3개월에 주사 한 번으로 꾸준히 복약 순응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제일 큰 이유다. 특히,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발병 초기 환자에서 더욱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인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국내외 조현병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는 치료 초기부터 장기지속형 주사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의료급여 외래 환자는 치료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사용에 어려움이 따랐다.

이번 정책은 중증 정신질환 환자들의 외래 치료 활성화는 물론 치료 연속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해운대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봉주 교수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이 큰 건강 취약계층 중에서도 정신질환자는 더욱 열악한 치료 환경인 ‘건강 불평등’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해 정신병원 내 집단 감염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에서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의견 표명을 낸 만큼, 팬데믹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중증 정신질환 관리와 치료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질환이 그렇듯,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 정신질환 역시 조기 진단 및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서 발간한 '정신건강동향(vol.16)'에 따르면 연간 약 1만 명에 해당하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한 상태에서 첫 치료를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 미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회복 가능성이 작고 질환의 만성화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2021년 변화되는 정신건강 정책들은 단순히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해소할 뿐 아니라 조기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국내 중증 정신질환 치료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장기입원을 막을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거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발판이자 나침반이 마련된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특히 장기지속형 주사제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치료 접근성이 떨어진 의료급여 환자들이 ‘치료 중단’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막아주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며 "조현병 약물치료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조기 진단 및 치료, 그리고 복약 순응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장기지속형 주사제, 탈원화와 관련한 지원책을 새롭게 개정한 만큼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치료 환경과 삶의 질, 더 나아가 국가의 사회경제적 부담 측면도 더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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