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는 책 봐도 소리 내 못 읽으면 난독증 … 조기에 ‘뇌 문제’ 바로잡아야

인쇄

[인터뷰]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아이가 글을 소리 내 읽기 싫어하고, 글자를 다르게 읽는다면 난독증(難讀症)일 수 있다. 읽기 장애인 난독증은 듣고 말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지능도 정상이지만, 유독 글을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뇌 기능이 떨어져 조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하지만 아직 난독증이 무엇인지,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 의심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수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이하 ADHD)나 지적장애로 오해해 잘못된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최근 ‘신경생물학적 측면에서의 난독증 분석 연구’(대한소아과학회지 2월호)를 진행한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에게 난독증의 증상과 조기 치료의 필요성에 관해 물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난독증 유병률은.
“최근 진행한 연구에서 국내외 소아의 난독증 유병률이 많게는 17.5%로 10명 중 1.7명의 아이가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난독증과 함께 자주 발생하는 질환은 ADHD가 40%로 가장 흔했다. 지적 능력의 문제가 없음에도 학습 성취도가 지속해서 낮은 아동의 80%가 난독증과 관련이 있었다.”
 
-생각보다 환자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 난독증 지원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고, 교육청에서 지원 시범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난독증 아동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난독증은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DCDC2’ ‘KIAA0319’ ‘DYX1-9’ ‘ROBO1’ 등의 유전자가 관련된 것으로 보고된다. 난독증 환자 부모의 50%가 난독증이고 형제의 50%에서도 난독증이 발생한다. 다만, 가족의 사회 경제적 위치와 부모의 교육법 등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린 나이에 스마트폰, TV 등 전지기기에 과도한 노출이 난독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까지 확실한 근거는 없는 상황이다.”
 
-난독증의 특징은.
“난독증은 시각에는 문제가 없으나 문자를 뇌에서 소리로 바꾸는 과정인 음운 인식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 눈으로 읽을 순 있어도 소리 내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난독증의 특징이다 ‘스파게티’를 ‘피스게티’로, ‘가방’을 ‘빠강’으로 잘못 읽거나 글자나 문장을 생략해서 읽고, 다른 글자로 대치해서 읽기도 한다.”
 
-뇌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가.
“그렇다. 언어와 문자는 다르다. 언어는 수만 년 전부터 출현해 진화를 거치며 언어 유전자로 내재화됐지만, 약 5000년 전에 처음 출현한 문자는 여전히 ‘학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실제로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어를 보고 → 시신경을 통해 후두엽의 시각중추가 이를 인식하고 → 하두정엽에서 글자에서 소리로 전환된 후 → 전두엽에서 이해하고 운동 중추를 통해 발성 기관을 조절해야 소리 내서 읽기가 가능하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에 따르면 신경생물학적으로 난독증 환자는 읽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좌측 후두-측두 영역의 활성화가 감소해 있다. 이를 보상하기 위해 우측의 단어인지 영역과 전두엽이 활성화되긴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래서 비슷한 또래처럼 글을 읽는 게 어려운 것이다.”
 
-지적 장애와는 다른가.
“지적 장애 아동은 인지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돼 읽기, 쓰기, 이해 모두에 어려움을 겪는다. 난독증은 정의 자체가 지적 장애가 없는 (IQ 70 이상) 경우다. 글을 읽어 주거나 말로 이야기해주면 이해하고 실행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데 만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난독증 환자에게 오디오북을 제공해 학습을 원만히 마치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지능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창조적인 분야에서 높은 성취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피카소, 에디슨, 스티븐 스필버그 등도 난독증이었다고 한다.(<뇌에 관한 75가지 질문, 학지사>)”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ADHD도 난독증과 구분이 어려울 것 같다.
“ADHD 아동은 단어나 문장을 성급하게 읽는 경우가 많다. 생략해서 읽거나 문장을 띄어 읽거나, 읽었던 곳을 모르고 다시 돌아가는 등의 실수가 좀 더 빈번하다. 그러나 ADHD 아동은 긴 시간 집중해서 읽기 어려울 뿐이지 짧은 시간 읽고 이해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난독증 아동은 글을 읽을 때 글자 인식, 글자 간의 음운 이해 자체를 어려워한다. 한글 학습을 할 때 글자의 음을 여러 번 알려줘도 잊어버리고 헷갈린다. 한 개의 글자도 음운을 인식하여 읽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난독증도 조기 진단, 치료해야 하나.
“난독증은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는 정도가 현저히 느리다. 보통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치료를 시작하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등교 거부, 학습 거부와 같은 다양한 행동문제를 보이기 쉽다. 또 자존감 저하, 불안 장애, 우울증, 게임중독, 반항 장애 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난독증과 ADHD를 헷갈리는 이유다. 또 난독증만 있는 경우, ADHD만 있는 경우, 난독증과 ADHD가 함께 있는 경우 치료법이 각각 다르다. 사전에 다양한 검사를 거쳐 진단한 뒤 맞춤 치료해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만 5~6세에는 진단,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료 방법은.
“난독증은 음운인식훈련과 음소결합훈련 등 중재치료가 효과적이다. 난독증도 말초성, 중추성 (표층, 중증)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에 맞춰 뇌파훈련법인 뉴로피드백이나 특수장비를 이용한 시지각 및 청지각, 감각통합훈련 등을 접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ADHD와 난독증이 같이 있다면 뇌의 도파민 활성을 높이는 중추신경자극제 약물치료를 하면서 난독증을 위한 음운인식 중재치료를 동시 진행한다. ADHD만 있다면 난독증 중재치료는 배제하고 행동치료, 중추신경자극제 약물치료, 부모교육 등에 중점을 둔다.”
 
-자가 치료도 가능한가.
“정확한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법을 찾고, 집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뒤 자가 치료를 진행하면 된다. 난독증 아동은 단어 인지만 가능해져도 점차 효능감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치료 효율이 높아진다. 난독증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독증 치료는 최소 1년 이상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조기 개입과 적극적이고 꾸준한 치료가 중요하다는 점을 부모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