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문제로 인한 근육긴장이상증, 치료법 정립된 지금은 불치병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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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순천향대부천병원 신경외과 정문영 교수

순천향대부천병원 신경외과 정문영 교수

얼마 전 뉴스를 통해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기사를 접하게 됐다. 아직도 학창시절 봤던 올림픽에서의 역주가 생생한데, 그런 이봉주 선수가 근육긴장이상증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근육긴장이상증(근긴장이상증)은 필자의 전문 분야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몸의 특정한 근육이 수축하여 비정상적인 자세와 움직임, 통증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쉽게 말하면 몸이 자기 멋대로 꼬이는 병이다. 

근긴장이상증이 난치병 또는 희귀병으로 알려진 이유는 객관적인 검사상에서 비정상적인 결과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도 이상이 없고, 디스크는 좀 있는데 심하지는 않고, 뼈와 근육 자체의 구조에도 큰 이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몸이 꼬이는 증상은 있는데 검사를 하면 전부 정상으로 나오게 되고, 따라서 근긴장이상증을 잘 모르는 의사들은 이 병을 그냥 정신병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불치병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근긴장이상증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뤄진 만큼 더는 '불치병'이 아니다. 발병 원인도 많이 밝혀져 있고 치료 방법도 구체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근긴장이상증은 '기저핵'이라고 불리는 뇌 구조의 비정상적인 기능으로 인하여 발생한다. 기저핵은 훈련된 움직임을 기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운동선수는 책으로 운동을 익히지 않는다.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특정한 기술이나 움직임을 터득한다.

예를 들어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공 차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지 공을 어떻게 차야 하는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슛을 쏠 때 스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발에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훈련을 충분히 했다면 그냥 자동으로 슛 동작이 나오는 것이다. 기저핵은 훈련된 움직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를 사용해야 하는 때가 오면 기저핵은 그 훈련된 움직임을 출력한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근긴장이상증은 바로 이 기저핵의 기능 이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한 행동을 하려고 마음먹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행동이 출력된다. 근긴장이상증이 목에 온 경우를 사경증이라고 부르고, 눈에 온 경우에는 안검연축증이라고 하는데 팔, 다리, 허리 등 전신 어느 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이환된 부분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근육이 수축하고, 자세가 이상해지며 통증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환자가 받는 심리적, 사회적 고통은 심각하다.

약물치료, 뇌심부자극술로 원인 치료
근긴장이상증의 치료는 크게 원인에 대한 치료와 결과에 대한 치료로 구분된다. 원인에 대한 치료는 기저핵의 기능을 억제 또는 조절하는 것이다. 기저핵의 기능을 억제하는 가장 중요한 축은 가바(GABA)약물이라고 불리는 신경안정제와 항콜린성(anticholinergic)약물을 복용하는 것이다. 보통 증상의 30~50%가 감소하며 대부분 환자들은 약물치료만으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뇌심부자극술은 현재까지 기저핵의 기능을 조절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뇌심부자극술을 통하여 담창구내핵에 전기자극기를 설치하고 특정한 주파수로 전기자극을 시행하면, 기저핵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신경 신호를 억제할 수 있다. 뇌심부자극술은 증상의 50~100%까지 조절할 수 있다.

결과에 대한 치료로는 근육이완제나 보톡스 주사 요법이 적용된다. 보톡스를 증상이 있는 근육에 주사하면 3~5개월간 근육 마비가 발생하며 비정상적인 근육의 수축이 억제된다. 보톡스 주사 요법의 효과가 없어지는 3~5개월 이후에 환자의 근긴장이상증 증상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 충분히 시도할 만 방법이다. 

근육으로 가는 신경 자체를 자르는 선택적 신경근 차단술도 있다. 특정 근육으로 분지하는 신경을 찾아서 잘라내는 방법으로, 수술이 어려운 편이지만 특히 사경증에서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인류는 화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원소의 비밀을 알고 핵을 융합하기도 하지만 정작 이러한 과학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 뇌의 기능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뇌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근긴장이상증 역시 아직은 환자나 의사 모두에게 어려운 질환이다. 

하지만 적절한 진단과 약물, 수술적인 치료를 병행하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못 걷던 사람이 걸을 수 있고, 앞을 못 보던 사람이 볼 수 있으며, 글씨를 못 쓰던 사람이 쓸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근긴장이상증이 발병했다고 절대로 실망하지 말고 전문 의사와 상의하여 치료해 나간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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