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인데 긁지마 대신 가려워서 힘들겠다고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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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인터뷰] 아토피 피부염 환우 정원희씨(아토피 전쟁 블로그 운영자)

아토피 피부염은 사회적 편견이 더 무서운 병이다. 어렸을 때 잠깐 앓는다든가, 보습제를 잘 바르고 긁지 않으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편견은 장기적인 치료가 필수적인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방해한다. 

아토피 피부염은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니다. 중증으로 악화하면 그 여파는 전신에 미친다. 아토피 행진으로 천식·알레르기성 비염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자극성 접촉 피부염 등으로 민감한 피부는 더 예민해진다. 덩달아 일상도 엉망이 된다. 심각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극심한 가려움증과 발진, 건조증, 진물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렵다. 특히 중증 아토피 피부염으로 피부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길 반복한다. 너무 가려운데 긁을 수 없어 가려운 얼굴을 때리다가 망막이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온 몸에 진물이 뚝뚝 떨어져 가족에게도 얼굴을 보이기 싫을 때도 있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사람은 가려움·진물이 심한 피부 악화기가 1년중 4달 이상 지속된다는 보고도 있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따로 구분해서 치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질병코드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질환에 대한 인식도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최근엔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 신약도 나왔다. 태어난지 100일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정원희씨에게 중증 아토피 피부염의 심각성에 대해 들었다. 정씨는 매일 아토피 피부염과 끊나지 않는 전쟁을 치루면서 네이버 블로그 아토피 전쟁에서 치료과정을 공유하고,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의 아토피 질환 인식 개선 캠페인 '나는 가픈 사람 입니다'에도 참여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Q1. 어렸을 때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과 일상이 달랐을 것 같은데.

“손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한다. 너무 가려워서. 피가 나도 긁고 또 긁는다. 수업시간에도 가려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나가서 20~30분씩 긁고 오기도 했다. 문제를 풀 때도 가려움증이 올라오면 집중하기 어려워 정신없이 긁는다. 거의 맨날 온 몸을 긁어대고, 피가 나고, 그게 또 교복에 묻고, 이런 생활이 일상이었다. 아토피피부염이 심할 땐 피부가 많이 상해 모습이 다르다. 스스로 ‘왜 난 이렇게 태어난 걸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 처음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따돌리는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체념하게 됐다.”

Q2. 중증 아토피피피부염 환자로서의 삶은 어떤가. 갑자기 피부가 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하면 평범한 학업·직장 생활이 어려울 것 같은데.

“고단하고 힘들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토피 피부염이라는 질환 자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피부 상처로 움직일 때마다 쓰라리고 아파도 주변에서는 잘 공감하지 못한다. 얼굴까지 아토피가 올라오기 전엔 잘 보이지 않으니 더 그렇다. 학창시절에도 체육시간이 제일 힘들었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으면 피부가 약해 땀을 흘리면 안된다. 상처에 소금물을 콸콸 붓는 것 처럼 따갑다. 그래서 수업을 빠지겠다고 말하면 꾀병으로 치부한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했더니 상황을 더 잘 이해하더라.

대인관계도 어렵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피부 상태가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르다. 지금은 괜찮은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빠진다. 그럴 땐 일단 너무 가려워 긁다가 상처가 많이 생긴다. 온 몸으로 아토피가 번졌을 땐 옷을 입고 벗는 것 조차 힘들 정도다. 소소한 집안일조차 감당하기 어렵다. 미리 계획했던 일정이나 약속도 몸 상태에 따라 매번 틀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다. 사실 내 몸 상태가 스스로의 의지로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의지박약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매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다가 어느 순간 주변 사람과 연락을 거의 안하고 고립된다.”

Q3. 피부 악화기땐 어떻게 지내나. 피부 염증반응으로 참을 수 없이 가렵고, 긁으면 염증이 심해지니 참 견디기 힘들 것 같은데.

“꽤 오랜 시간동안 아토피를 앓아왔는데도 피부 악화기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시련의 시기다. 가려움증을 참으려고 견디면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렇다고 손이 가는데로 긁으면 피부 상태가 나빠진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아토피가 심해질 땐 피부 자극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피부 상태가 무척 예민해져 있어 최대한 옷을 덜 입고 피부에 닿는 것을 최소화한다. 대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지내는 편이다. 정신적으로 지쳐 있어 다른 사람과 아예 만나지 않는다. 너무 힘들 땐 가족도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할 때가 많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 힘들어 하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렵다.”

Q4. 중증 아토피피부염 질환 인식도 개선 캠페인 '나는 가픈 사람입니다'에 참여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내 아픔을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싶었다. 아토피 피부염은 죽을 병은 아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은 온전히 본인만 느끼고 감당한다. 가족도 친구도 아픔을 공유하기 힘들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이다. 그래서 대부분 스스로 자신의 병을 숨기고 홀로 묵묵히 견딘다. 아토피 치료 과정을 공유하는 개인 블로그에 '자신도 아토피 피부염으로 힘들다'는 비공개 댓글도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읽다보면 그들의 외로움·아픔·슬픔 같은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던 이들에게 더 다가가 소통을 하면서 도움이 되고싶었다. 당신과 비슷한 나도 이렇게 살고 있다고, 내 편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힘든 시기를 버틸 힘이 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 같다.”

Q5. 캠페인 참여 이후 아토피피부염 질환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을 체감하나.

“물론이다. 당장 내 주변부터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이해도가 한 단계 깊어진 것 같다. 병을 알게 되니 내 상황에 대해 더 잘 공감하고 배려해주려는 것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내가 아토피 피부염인걸 알아도 '원희는 원래 그렇잖아'라고 말했다면, 이제는 '아~, 원희가 이래서 그랬었구나'로 반응한다. 내가 처한 상황은 바뀐 게 없는데, 주변 반응이 바뀐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과 고통을 교감하는 것 이상으로 삶이 풍성해진 것 같다.

특히 내 이야기를 듣고 아토피 피부염인 자녀에게 긁지 말고 참아라고 말한 것을 후회했다는 댓글이 인상깊었다. 나도 주변에서 '안 긁으면 되잖아' 혹은 '네가 긁어서 피부가 덧난거 아냐'란 말을 들을 때 마음의 상처가 컸다. 질환을 알게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는 점에서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Q6. 현재는 어떻게 아토피피부염을 치료·관리하고 있나.  

“아토피 피부염 치료 대부분이 스테로이드 계열이다. 아무래도 약물 치료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이제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다양해져 나에게 맞게 관리 중이다. 아토피 피부염은 장기전이다. 열심히 치료를 받아도 피부 상태가 나쁠 땐 정말 지치고 힘이 빠진다. 기상천외한 민간요법에 흔들리기도 쉽다. 듣다보면 터무니 없는 방법인데 진짜 저렇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 싶어 시도한다. 하지만 비용·시간을 낭비하고, 쳇바퀴 돌 듯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내가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잘 다독여야 한다.”

Q7. 마지막으로 하고 전하고 싶은 말은.

“아토피 피부염 환자도 긁으면 안되는 걸 알고 있다. 지적하듯 '긁지마'라고 말하는 대신 '가려워서 힘들겠다'라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공감해 줬으면 한다. 피부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견디기 힘들어서 긁는 것이라고 감정을 헤아려주면 더 위로와 지지를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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