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판막 질환,시의적절한 치료 받도록 보장성 대폭 확대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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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덕우 교수

지난 5일 조 바이든 美 대통령은 2월을 ‘미국 심장의 달’로 선포했다. 미국 내 주요 사망 원인인 심장 질환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미국은 1964년부터 매년 2월을 ‘심장의 달’로 지정했다.

심장 질환은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힌다. 2014년부터 5년 연속 암에 이은 국내 사망 원인 2위로 뇌졸중·당뇨병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대체로 심장 질환이라 하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쉽게 떠올리지만 ‘심장의 문’ 역할을 하는 심장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심장판막 질환도 주요 심장 질환의 하나다.

  

심장에는 4개의 방, 그리고 각 방의 문 역할을 하는 4개의 판막이 존재한다. 이 문이 잘 열리고 닫혀야 혈류가 한 방향으로 잘 순환해 온몸에 혈액과 산소를 전달하고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평생 반복할 수 있다. 그런데 판막이 제대로 열리고 닫히지 못하면 협착이나 역류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갑자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거나 어지럽고 가슴이 뻐근하며 아프다면 심장판막이 보내는 이상 신호일 수 있다.

효과·안전성 입증한 TAVI 시술, 표준 치료 자리 잡아
심장판막 중 가장 빈번한 이상을 보이는 곳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을 내보내는 대동맥판막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대동맥판막이 노후화해 발생하는 퇴행성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최근 고령화 추세에 따라 급격히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 2015년에는 9000여 명에 불과했던 국내 환자 수가 2019년 1만5000명 이상으로 급증했고 환자 70%가 70세 이상 고령자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2년 이내 절반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중증 질환이다.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망가진 판막을 인공 판막으로 교체하는 판막 치환술을 받으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되도록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특히 증상이 없다가 중증이 돼서야 호흡 곤란, 가슴 통증 등의 급진적인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치료 적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고령자는 정기적으로 심전도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좋다.

판막을 교체하는 치료는 과거에는 개흉, 즉 가슴을 열어 시행하는 외과적 수술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나 요즘은 혈관을 따라 가느다란 관(카테터)을 삽입해 인공 심장 판막을 스텐트처럼 삽입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삽입술(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이하 TAVI)이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며 점차 보편화한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발표된 미국심장학회(ACC)·미국심장협회(AHA)의 심장판막 질환 치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환자 나이가 65세 이상인 경우 동등한 치료로 TAVI와 수술적 판막 치환술을 동시에 권고했으며, 두 가지 치료 방법 중 최종 결정은 다학제팀(심장통합진료팀)의 논의 과정뿐만 아니라 환자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실제로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빠른 회복 기간과 일상 복귀, 비교적 적은 통증과 흉터 등 TAVI가 가진 임상적 혜택 또한 치료법 선택의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한다.

세계적인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 따라야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고위험군의 환자에게 시행되는 TAVI 시술에 한해서만 선별적으로 급여가 이뤄지고 있어 전 세계적인 표준 가이드라인을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의 고식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다. 현행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따르면 TAVI는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 고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급여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환자 부담률이 전체 치료비의 80%에 달한다. 미국 FDA가 이미 2019년 수술 저위험군까지 TAVI 시술 적용 대상을 확대 승인하고 의료보험을 적용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상황이다.

  

실제로 필자의 진료 현장에서도 3000만원이 넘는 과도한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와 가족을 마주해야 할 때가 많다. 생명 연장의 기로에 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의 입장에서 경제적인 문제로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좋은 치료 방법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10년 전 과거의 치료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 환자들도 세계적인 표준 치료 가이드라인에 맞춰 더 늦지 않게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료 접근성 및 보장성이 이른 시일 내에 대폭 강화돼야 한다. 이제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의료진과 관련 부처가 머리를 맞대어 ‘심장의 문’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 위한 실질적 논의를 이어가야 할 때다. 비로소 우리 모두의 심장 건강을 되돌아봐야 할 심장의 달,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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