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허탈감 극에 달했어도 만남 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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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심신 달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로감과 허탈감이 가중되고 있다. 거리두기 강화에도 하루 환자 수는 1000명 내외에서 증감을 거듭하는 중이다. 급격한 확산은 억제되고 있지만 뚜렷한 감소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적어도 다음달 말까진 방역수칙 엄수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하는 새해는 예년과 달라야 한다. 전문가들은 방역 피로감이 높아진 지금, 계절적 요인까지 겹쳐 가장 위험한 때라고 경고한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기후가 건조하고 추워지면 바이러스는 며칠씩 생존한다”며 “경각심이 지난해 2~3월 1차 유행 때보다 많이 떨어진 상황이어서 거리두기 상향 효과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급격한 확산세를 누그러뜨리긴 했으나 유행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정기석 교수는 “이번 겨울만은 호흡기 질환이 창궐하는 1월 말까지 일절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잘 쓰며 서로 조심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았지만 코로나19로 변화한 일상에 스트레스가 높다. 우울함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를 넘어 화를 뜻하는 코로나 레드, 막막함을 일컫는 코로나 블랙까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처음에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걸릴 것에 대한 두려움·불안이 컸다면 코로나 확산이 반복되고 장기화하는 요즘엔 공격적 감정인 분노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나은진 과장(서울시 정신건강 복지센터)은 “현재의 분노는 코로나19로 야기된 일상생활의 균열에 집단적 좌절이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며 “코로나19가 끝나면 해결될 문제라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끝이 어디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방역에 지친 사람들의 경각심은 느슨해졌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지난해 11월 성인 10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코로나19 인식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6.1%는 “코로나 감염 여부는 어느 정도 운에 달렸다”고 대답했다. 연구팀이 ‘질병의 발생을 운에 좌우된다고 여기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동일 문항에 대한 지난해 5월 인식 조사 결과와 비교한 것이다. 지난해 5월 ‘감염 여부는 어느 정도 운이다’는 진술에 “그렇다”는 답변이 37.5%였던 것에서 8.6%포인트 상승한 결과다.
 
특히 젊을수록 질병 발생을 운명론적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컸다. 본인의 감염이 운에 달렸다는 응답은 20대에서 57%에 달했고, 30대·40대 51% 50대는 40%, 60대는 38% 순이었다. 유명순 교수는 “질병이 운에 따라 발생한다고 여기면 방역수칙 준수 등 감염 예방을 위한 노력에 소홀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며 “안 좋은 일이 자신에게는 생기지 않으리라는 낙관적 편견의 심리가 작용한 것인데 대유행 조짐을 보이는 지금은 누구나 감염에 취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 받아들이고 바뀐 삶에 순응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심신을 다잡으려면 먼저 코로나19가 지속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은진 과장은 “코로나19가 언젠간 끝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를 높이기만 할 뿐”이라며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변화된 삶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시 한번 경각심을 높여 방역수칙과 거리두기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감염원이 일상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이제는 유행이 상당 기간 길게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며 “바이러스는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몸에 들어가서 옮는 것이므로 내가 안 걸리고 내 가족을 지키려면 마스크를 잘 쓰는 것뿐 아니라 가능한 사람과의 만남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리두기는 전 국민이 동시에 같이 지켜질 때만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 지인과의 만남은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당연하고, 가족끼리도 조심해야 한다. 김우주 교수는 “일대일 사람 간 거리두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사람 간 2m 신체적 거리두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음 백신 5가지

전문가들은 신종 감염병과의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할 수 있는 현명한 대처는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력을 형성할 정도가 될 때까지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리두기 실천에 도움되는 ‘마음 백신’ 5가지를 짚어본다. 

 
1. 짜증 날 땐 받아들이기
일상의 변화가 한꺼번에 생긴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모두에게 처음이기 때문에 현재 느끼는 불안·짜증이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면 나만 이렇게 불안하거나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부분이 있다. 다만 부정확한 소문을 전하거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2. 마스크·손 씻기·환기 실천
많은 것이 불확실하지만 내가 통제하고 조심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스크를 잘 쓰고 손을 잘 씻는 것,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환기도 중요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들어 있는 침방울의 공기 중 농도는 환기를 통해 낮출 수 있다. 자연 환기가 가능한 경우 창문을 항상 열어두고, 계속 열지 못하는 경우에는 오전·오후 각 2회 이상 환기하면 된다.
 
3. 일과표 짜 생활하기
비대면 수업, 재택근무 등으로 무너진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려면 특정 시간엔 정해진 활동을 하도록 일과표를 만드는 것이 도움된다. 단조로운 생활 패턴으로 활동량이 확연히 줄어드는 것 자체가 우울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식사·수면 시간을 규칙적으로 유지하고 가족·친구와의 통화, 스트레칭하기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마스크를 쓰고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햇빛을 쐬는 것도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
 
4. 믿을 만한 정보 선별하기
감염병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이 커지기 쉽다. 나도 모르게 자신을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시키는 행위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올라가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 믿을 만한 채널을 선별하고 과도하게 찾아보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팩트체크센터에 따르면 작성자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는 신뢰하기 어렵다. 또 허위 정보일수록 감정을 부추겨 과도한 불안을 주는 경우가 많다.
 
5. 감정 조절 힘들면 전문가 찾기
감정 조절이 지나치게 힘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좋다. 일시적인 불안과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이 장기화하면 문제 될 수 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입맛이 떨어지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 신체 증상이 나타나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감정 조절이 힘들면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
 
도움말=강동우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홍나래 한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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