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건강 챙기면서 뇌 인지기능 떨어지지 않도록 대비해야
사실 치매는 하나의 질병명이 아니고 뇌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을 통칭한다.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 질병에는 알츠하이머병과 뇌혈관질환(혈관성 치매)에 의한 치매가 있는데 이 두 질환이 치매 원인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 외에 뇌손상을 일으키는 모든 신경계 질환들(파킨슨병, 루이체치매, 전두측두치매, 신경계 감염과 염증 등), 호르몬 장애, 비타민 결핍도 치매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누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을까. 일단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혈관 건강이 나쁜 사람들이다. 치매는 뇌 신경학적 증상이 없어도 생길 수 있다. 바로 혈관성 치매다. 뇌 혈관이 좁아지고 막혀서 뇌로 산소·영양소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얼굴이 돌아가고, 발음이 어눌해진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관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혈관을 젊어서부터 깨끗하고 건강하게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40대 이후부터는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를 관리하고, 뇌혈관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좋다. 윤영철 교수는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안면 마비 증상이 있다 사라지면 다 나은 것으로 생각해 별다른 조치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런 증상이 반복되면 뇌졸중·혈관성 치매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악화할 수 있어 위험인자를 찾아 치료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알츠하이머병 치매는 누가 왜 발병하는지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건강했던 뇌세포가 유전자 이상으로 이상단백질을 만들어 뇌세포 사망을 유도한다. 특히 뇌 인지 기능이 감퇴하면서 알츠하이머병 치매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력이 높거나 새로운 자격증·외국어를 배우고, 글을 읽고 쓰는 등 창조적인 활동을 즐기는 사람에게 알츠하이머병 치매 발병이 낮은 이유다. 윤 교수는 “적극적인 두뇌활동은 치매 예방에 긍정적”이라며 “노년이 되어서도 저녁 취침 전 하루 종일 있었던 일과들을 돌이켜보며 어릴 때처럼 매일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지면 치매 예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규칙적인 운동도 치매 예방에 좋다. 매일 30~60분 정도 빠르게 걷는 정도면 충분하다.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중중신경계의 염증을 줄이고, 뇌세포의 산화손상을 감소시키며, 뇌에서 BDNF나 IGF-1과 같은 뇌 영양인자가 많이 만들어져 뇌세포을 보호하고 뇌 기능을 강화한다.
다만 치매를 막는다고 고스톱을 즐기는 것은 피한다. 고스톱이 전체 판세를 읽고 책략을 구사하면서 점수를 계산하는 등의 두뇌활동으로 인지기능을 증진·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고스톱으로 치매를 예방한다는 것은 다소 지나칠 수 있다. 윤 교수는 “일부 뇌기능을 활성화 한다고 전반적인 뇌 인지기능이나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향상되지는 않는다. 고스톱만 잘 치는 치매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도 인지장애 있으면 치매 가능성 10배 높아져
최고의 치매 예방법은 조기 발견이다. 독립적인 판단·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뇌 인지기능을 유지·활용할 수 있는 치매 초기나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일 때부터 적극 대비하는 식이다.
65세 이상 경도 인지장애가 있는 노인 가운데 매년 10∼15%가 치매로 진행된다. 정상 노인의 매년 치매 진행 비율은 1∼2% 수준이다. 경도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은 일반인보다 치매로 발전할 가능성이 10배 이상 높은 셈이다. 빨라지는 뇌 인지 기능 감퇴속도를 적절하게 늦춰주는 것이 필요하다. 뇌에서 보내는 치매 경고 신호를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활발한 이유다.
최근엔 간단한 혈액·뇌파 검사로 치매나 경도인지장애를 확실하게 감별할 수 있게 됐다. 윤영철 교수는 “지금까지는 아밀로이드 PET-CT(양전자단측촬영)이나 MRI검사 등 고가의 영상장비를 이용해 치매 여부를 감별해 부담이 컸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앙대병원 신경과 윤영철 교수 연구팀은 혈액 속 알츠하이머병 치매를 진단하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해 만든 진단키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또 인공지능(AI)를 적용한 뇌파 분석으로 경도인지장애 진단도 가능해졌다. 특히 진단 정확도가 90%에 이를 정도로 우수하다. 윤 교수는 “비교적 간편하고 저렴한 혈액·뇌파 검사로 효과적으로 치매 초기에 진단하는 것은 물론 중증 치매로 진행하는 비율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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