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 등 선행 질환이 ‘암 경고등’, 치료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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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대한간학회장


만성간염은 국내 암 사망률 2위인 간암의 주요 원인이다.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간경변증과 간암으로 악화해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로 돌변한다. 과거 치료가 어려웠던 B형, C형 간염은 부작용이 적은 치료제의 등장과 예방백신 개발로 이제 관리 가능한 병으로 탈바꿈했다. 관건은 간염이 부르는 ‘경고 신호’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일이다. 20일 ‘간의 날(Liver Day)’을 맞아 대한간학회 백승운(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사진) 회장에게 만성간염·간암의 위험성과 최신 치료 트렌드를 물었다.

 

-최근 만성간염의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2019년 만성간염 환자가 47만8077명에서 62만1291명으로 약 30%나 증가했다.
 
“간에 생긴 염증이 6개월 이상 지속하는 경우를 ‘만성간염’이라 한다. 급성간염의 경우 원인을 찾아 적절히 관리하면 3~4개월 이내에 치료할 수 있다. 반면, 만성간염은 질병을 유발하는 인자를 찾아 제거하거나 조절하는 등의 필요한 처치가 다양한 편이다. 문제는 만성간염의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환자 스스로가 감염 여부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만성간염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내에 간경변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경변이 발생하면 간암이 발생할 확률이 연간 2~10%까지 급증한다. 본인이 만성간염의 고위험군인지 확인하고 원인별 치료가 필요한지, 주기적인 감시검사가 필요한지 등을 명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B형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만성간염일 경우 간경변이 생기기 전 간암이 발생할 수도 있나.
“그렇다. 만성 B형간염은 간경변을 거치지 않고 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진단된 만성 B형간염 환자는 간암(간세포암종)의 조기 발견을 위해 간염 치료 여부와 관계없이 6개월마다 복부 초음파 검사, 혈청 알파태아단백검사를 받도록 권한다.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 역시 언제 만성 B형간염, 간경변, 간암으로 악화할지 모르므로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씩 복부초음파와 혈액검사를 받아야 한다.”
 
-만성 B형간염은 완치가 어렵다고 알려진다. 고령화로 인해 B형간염 환자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데 치료 시 고려할 점이 있다면.
“기존의 환자들이 고령화되면서 최근에는 장기 안전성을 가진 치료제를 처방하는 것이 만성 B형간염 치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병, 고혈압, 신장 장애, 골다공증 등 동반 질환을 보유한 환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TAF, 베시포비어 등 새롭게 출시된 B형간염 치료제들이 대표적이다. 기존 치료제와 유사한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으면서 신장이나 골 안전성을 높여 우선 고려될 수 있는 치료옵션이 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의 경우, TAF로의 교체투여가 어렵다고 한다.
“TAF 교체투여 시 ‘T-score≤-2.5 또는 골다공증성 골절이 영상학적으로 확인된 경우’와 ‘사구체여과율(eGFR) 60ml/min/1.73㎡ 미만’이라는 특정 기준을 충족한 환자에게만 급여가 적용된다. 기존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의 경우 동반 질환이 악화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TAF 급여 처방이 가능한 셈이다. TAF는 안전성이 개선된 만큼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TAF로의 처방 변경을 원하는 대부분의 환자가 이처럼 제한적인 급여 기준에 가로 막히고 있어 안타깝다. 학회 차원에서 현재 급여인정 기준 외에 단백뇨, 알부민뇨, 장기간 스테로이드 사용 예 등의 교체투여 사유를 추가하고, 또한 현재 인정하고 있지 않은 간이식, 비대상성 간경변증, 간암, 다약제 내성 환자에게서도 교체투여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처방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심평원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한다.”
 
-올해 이집트에서 세계 최초로 C형간염 퇴치에 성공했다. 대만에서도 2025년까지 C형감염 퇴치를 목표로 국가 주도의 C형간염 진단 및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대만은 세계보건기구(WHO)의 목표인 2030년보다 5년 앞당겨 2025년까지 C형간염 퇴치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이를 위해 대만은 국립 C형간염 프로그램 부서를 조직하고, ‘C형 간염 퇴치 국가정책 강령’을 발표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전체 C형간염 환자 수가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실제 치료를 받은 환자는 이 중 20% 정도에 불과하다. 2017년 국내 C형간염 발생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전수감시체계가 마련됐지만 무증상인 C형간염 질환의 특성상 감염 사실조차 인지하고 있지 못한 환자들이 여전히 많다. 다행히 지난 9월부터 질병관리청에서 C형간염 검사의 국가건강검진 항목 도입을 검토하기 위한 ‘C형간염 환자 조기발견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두 달간 1964년도에 출생한 국민을 대상으로 C형간염 항체검사 및 확진 검사를 시행하는 환자 조기발견 사업이다. 향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C형간염 선별검사 도입의 주요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형간염은 얼마나 위험한가.
“C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의 약 70~80%가 만성으로 진행되며,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간암 발생 위험이 3배 이상 증가한다. C형간염은 백신이 없어 예방이 어렵지만, 항바이러스제(DAA)를 복용하면 8~12주 치료만으로 완치가 가능하다. 누구든 일생에 한 번은 C형간염 검사를 꼭 받아 보기를 권한다.”
 
-간암은 세포독성항암제의 효과가 제한적이고 항암제 개발 속도도 더디다. 이유가 무엇인가.
“세포독성항암제는 일부 혈액암을 제외하고는 치료반응률이 낮은 것이 보통이고 특히 간암을 포함한 소화기암에서는 생존율의 유의한 증가를 보이지 못했다. 간암의 경우 대부분 간경변을 동반해 이미 백혈구감소증이나 혈소판 감소증이 있고, 이로 인해 항암제를 쓰기 어렵거나 다른 간독성을 갖는 약제를 적절히 선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 여러 개의 유전자 변이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한가지 종양 관련 경로만을 차단해 효과를 못 보는 경우도 많다. 앞선 임상시험에서는 종양 억제는 효과적이지만 간기능 이상으로 복수가 차거나 저나트륨혈증 등 부작용으로 투약을 지속할 수 없던 경우도 있었다.”
 
-최근 간암의 치료에 아테졸리무맙과 베바시주맙의 ‘병합치료’가 등장하면서 진행성 간암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아테졸리주맙은 면역관문 억제제이고 베바시주맙은 신생혈관 억제제이다. 이 병합치료법은 표준치료인 넥사바보다 환자 생존율을 월등하게 개선하여 진행성 간암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여겨진다.  두 가지 면역관문 억제제 두 가지를 병합하는 요법이나 면역관문 억제제와 TKI의 병합치료 등에 대한 임상시험이 활발히 진행 중이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단독치료보다 훨씬 높은 반응률을 보여 고무적이다. 단, 이런 병합치료를 1차 치료로 선택했을 때 만약 반응이 없다면 이후 2차 치료에 대한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추가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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