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잇몸에 문제없는데 치통 호소? 진단·치료 까다로운 ‘비정형 치통’

인쇄

[치과 명의의 덴탈 솔루션] 경희대치과병원 구강내과 어규식 교수

구강내과 어규식 교수가 말하는 '비정형 치통'

치통은 치아가 아픈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치통의 원인이 항상 치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아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도 치통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치아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치통을 ‘치성 치통’이라 하고, 치아에 이상이 없으나 마치 치아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치통을 ‘비치성 치통’이라고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비치성 치통 중 가장 진단과 치료가 까다로운 ‘비정형 치통(Atypical odontalgia)’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불쾌한 통증 지속, 40대 중반 이후 여성 요주의

치과 환자들은 흔히 치통을 호소하는데, 이는 대개 치아 내부의 신경 또는 잇몸에서 기원하는 통증이다. 이러한 통증은 비교적 진단과 치료 결과가 예측 가능한 편이다. 간혹 치아 내부의 신경 또는 잇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도 치통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를 비정형 치통이라고 하며 주요한 원인이 없이 치아에 나타나는 극심한 박동성 통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임상적 특징을 보면 대개 하악보단 상악에 흔히 발생하고, 40대 중반 이후 여성에게서 많이 발병하는 편이다. 통증이 유발되는 치아를 마취해도 통증 완화가 불분명하고 마약 계통의 강력한 진통제까지 투여해도 증상이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실제로 비정형 치통으로 추정되는 환자를 진단하다 보면 ‘저린 느낌이다’ ‘찌릿하다’ ‘화끈거린다’ ‘따끔따끔하다’ ‘쿡쿡 쑤신다’와 같은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비정형 치통은 지속해서 불쾌한 통증을 동반하고 일반적인 염증성 통증과 달리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에 거의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이 굉장히 우울해 하거나 삶이 무기력해진다.
 

 비정형 치통의 진단 기준

1. 명백한 국소적 병리 원인 없이 치아가 계속 아프다. 
2. 치아의 국소적 자극이 통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뜨거운 자극, 찬 자극, 씹는 행위가 통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3. 치통은 수주, 수개월 동안 변화하지 않는다. 
4. 반복된 치과 치료가 통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5. 국소 마취를 해도 반응이 분명치 않다.

한편, 신경 손상과 관련돼 발생하는 통증을 ‘신경병성 통증’이라 한다. 구강 안면 부위에서 발생하는 신경 손상의 주된 원인은 바이러스 감염이나 방사선 치료, 골절, 악성 종양의 전이, 자가면역질환 등을 꼽을 수 있다. 비정형 치통의 정확한 기전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화끈거림과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하고 외상 등에 의해 증상이 시작되는 것으로 볼 때 삼차신경이 변성해 발생하는 신경병성 통증으로 추정된다. 즉 신경섬유에 존재하는 수초가 외상 혹은 면역의 이상으로 탈락(demyelination)하면 탈락 부위에 통증 수용기가 발현해 자발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신적·심리적 문제로 치통 호소하기도

간혹 얼굴에 대상포진을 앓고 나은 후 비정형 치통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이러스에 의해 수초가 공격받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면역기능이 떨어진 고령 환자에게서 주로 발생한다. 비정형 치통 치료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약물은 항우울제와 항경련제이지만, 아직 완치에 이르는 약제는 개발돼 있지 않다. 통증은 발생기전이 다양하기 때문에 서로 작용기전이 다른 약제를 겹치지 않게 투여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약제의 장기 사용에 따른 부작용에 유의하면서 투약해야 하므로 반드시 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부언하면 아미트립틸린(amitriptyline)과 같은 삼환성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기에는 저용량으로 시작해 조금씩 증량한 후 통증이 어느 정도 조절되면 다시 용량을 줄인다. 환자가 삼환성 항우울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 가바펜틴(gabapentin), 클로나제팜(clonazepam), 바클로펜(baclofen)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8% 캡사이신 패치를 통증 인접 부위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좋은 임상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가끔은 환자 중 다양한 치통이 여러 치아 혹은 좌우에서 나타나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양상을 띤다. 통증의 발생 양상이 일정한 형태를 보이지 않고 추정 가능한 생리적 패턴을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통증이 생길만한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치과 치료에 반응이 매일매일 일관성이 없다. 치통은 점점 만성화하고 약물 투여에 반응이 이상하거나 예기치 못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사례는 비정형 치통과 전혀 다른 경우다. 신체화 통증 장애와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의심해봐야 한다. 신체화 통증 장애란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어떤 정신적 혹은 심리적 문제 때문에 치통과 같은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비정형 치통은 환자에게도 치과의사에게도 까다로운 질환이다. 환자는 원인을 찾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 찾아 헤매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치과의사는 확진할 때까지 그 어떠한 비가역적인 치료도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