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조각 삼킨 남수단 아이, 세브란스병원서 새 생명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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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수술 후 건강 회복

2.5cm 쇳조각을 삼켜 생명이 위태로웠던 남수단 어린 아이가 세브란스병원에서 두 차례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퇴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하늘길마저 닫힌 5월. 쇳조각을 삼켜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국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던 글로리아 간디(4·여)가 세브란스병원의 초청을 받아 이집트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글로리아는 지난해 7월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해 인근 병원에서 X선 검사를 받은 결과 가슴에서 쇳조각이 발견됐다. 수단과 이집트 등지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워낙 위험한 수술인 데다 수술비가 부족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글로리아 사연이 현지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세브란스병원에 전달됐고, 검사 자료를 확인한 흉부외과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글로리아의 몸 안에서 꺼낸 쇳조각으로 만든 목걸이. 백원짜리 동전과 크기가 비슷하다.

지난 5월 5일 어렵게 한국땅을 밟은 글로리아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일반 검사로는 쇳조각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흉부외과에서는 AI 기업 코어라인소프트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를 3차원으로 재건하고 3D 프린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쇳조각은 식도를 뚫고 기관지를 밀고 들어가 대동맥궁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칫 대동맥 파열로 이어질 수 있어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 1년 가까이 몸 안에 있던 쇳조각 주변으로 염증도 심했다. 특히 쇳조각이 기관지를 뚫고 들어가 호흡을 방해해 호흡곤란 증상이 심했으며 식사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박성용 교수는 영상의학과와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소아외과, 소아심장혈관외과 등 관련 진료과와 협진해 글로리아의 상태를 파악하고 수술 계획을 세웠다. 한 번의 수술로 쇳조각이 제거되고 구조물의 손상이 완전히 복구될 가능성은 50% 미만이었다.
 

박성용 교수는 좌측 개흉술을 통해 주기관지를 절개하고 대동맥을 비켜 손상된 조직에서 쇳조각을 무사히 제거했다. 쇳조각은 나사나 볼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와셔(washer)였다.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주기관지의 뒷벽을 완전히 녹였고, 이로 인해 좌측 기관지 대부분이 손상됐으며 기관지 입구가 좁아져 있었다.


박 교수는 손상이 많이 돼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좌측 기관지와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약 5mm 누공(瘻孔)을 봉합했다. 수술 후 염증이 줄었고 호흡에도 무리가 없었다. 쇠붙이를 제거한 부위 역시 잘 아물었다. 그러나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누공은 오랫동안 손상된 조직이라 완전히 아물지 않아 1mm 크기로 남아있었다. 이 부위로 음식물이 기관지로 넘어가서 반복적으로 흡인이 일어나 글로리아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박성용 교수는 소화기내과와 내시경 시술을 통해 1mm 누공을 봉합하려 했지만, 복구가 되지 않아 결국 2차 수술에 들어갔다. 박 교수와 소아외과 호인걸 교수는 쇳조각으로 녹아버린 기관지 뒷벽을 식도벽을 사용해 새로 만들어 재건했다. 남아있는 1mm 크기의 누공은 기관지 사이 근육을 사용해 다시 봉합하고, 잘려진 2cm 길이의 식도는 당겨서 어어 붙였다.

(뒷줄부터 시계방향으로)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박성용 교수와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김경원 교수, 글로리아와 간디씨.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김경원 교수는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오랜 기간 쇳조각에 눌려서 녹아버린 좌측 기관지는 좁고 폐도 약해진 상태였다”며 “안정을 찾으면서 기관지와 폐가 호전됐고, 음식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2주간의 회복 기간을 거쳐 글로리아는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식사도 가능하게 됐다. 박성용 교수는 “쇳조각을 삼키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글로리아가 힘든 수술을 견디고 건강을 되찾아 수술을 집도한 의사로 보람을 느낀다”며 “글로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아버지의 헌신과 글로리아를 위해 함께 치료 방침을 상의하고 헌신적으로 치료해 준 의료진들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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