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벌레물림약부터 무좀약까지... 마취제의 변신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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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일반의약품에 숨은 마취제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약의 대표적인 역할 중 하나는 증상을 없애는 겁니다. 이때 대표적인 증상으로 언급되는 게 ‘통증’이죠. 통증을 없애는 약으로 흔히 진통제를 떠올립니다. 보통 진통제는 통증이 나타난 뒤 복용해 이미 나타난 통증을 경감시킵니다. 반면 이후 발생할 통증을 미리 차단하는 약이 마취제입니다. 마취제는 흔히 시술이나 수술적 치료에만 사용된다고 인식합니다. 흔히 ‘마취제’ 하면 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약으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마취제는 의외로 우리 주변의 흔한 제품에도 다양하게 쓰입니다. 언뜻 보기엔 마취제가 들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입니다. 특히 여름에 많이 쓰는 제품에도 마취제가 들어 있습니다. 과연 어느 제품에 어떤 마취제가 들어 있을까요.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변화무쌍한 마취제의 다양한 모습을 알아보겠습니다.
 

국내 일반의약품에 함유된 마취제 성분으로는 ‘리도카인(lidocaine)’과 ‘디부카인염산염(Dibucaine Hydrochloride)’이 대표적입니다. 리도카인과 디부카인염산염은 신경 자극 전달에 필수적인 전해질의 통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통증을 못 느끼게 합니다. 국소적인 신경의 전도를 차단하면서 혈행을 개선하는 효과도 발휘합니다.
 
이 중에서 리도카인은 병원에서 마취 목적으로 주입하는 전문의약품으로도 쓰입니다. 다리 골절 수술(척추마취), 무통분만(경막 외 마취) 등을 위한 하반신 마취에 리도카인이 사용되죠. 또 치과나 피부과에서 국소부위 마취용으로 사용하는 마취제의 단골 성분이 리도카인입니다.
 
디부카인염산염은 국소마취제 중에서 약효와 독성이 가장 강력한 편에 속하고 약효의 지속 시간이 길어 세계적으로 척수 마취나 국부 마취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습니다. 말이나 소 등 가축을 안락사 시킬 때도 디부카인염산염이 사용됩니다.
 

여름 호발질환 약에 단골로 등장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현재 리도카인은 197개, 디부카인염산염은 73개의 일반의약품에 함유돼 있습니다. 크림·연고·겔·에어로졸·좌약 등 다양한 제형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럼 리도카인과 디부카인이 어떤 제품에 사용되고 있을까요.
 
첫째, 치질약입니다. 치질약에 마취제가 왜 들어있을까요. 치질의 정확한 의학 용어는 치핵인데, 피하조직에 혈전이 발생해 갑자기 부어오르는 병변입니다. 이때 항문의 불편함과 함께 심한 통증과 항문 주변의 가려움증을 동반합니다. 치핵처럼 항문·직장 부위에 생기는 또 다른 통증 유발 질환으로 치열이 있습니다. 치열은 대부분 딱딱한 대변을 볼 때 항문관이 찢어지면서 통증을 유발합니다. 리도카인, 디부카인염산염은 항문·직장 부위의 감각신경을 일시적으로 차단해 치열·치핵의 통증과 가려움을 일시적으로 경감할 수 있습니다. 환부에 바르거나 항문에 삽입하는 방식의 크림·좌약 등 제형으로 나와 있습니다.
 
둘째는 무좀약입니다. 무좀은 여름철에 잘 발병하는 흔한 질환이죠. 무좀은 피부사상균이 발 피부의 각질층에 감염을 일으켜 발생하는 곰팡이 질환입니다. 특히 땀이 많이 나면 불쾌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가려움증을 동반합니다. 발바닥이나 가장자리에 심하게 가려운 물집이 잡히기도 합니다. 리도카인은 무좀균으로 인한 가려움을 느끼는 신경을 차단합니다. 에어로졸·액상·크림 등으로 출시됐습니다.

셋째는 자상·찰과상 통증 완화제입니다. 자상은 칼이나 송곳 같은 뾰족한 물건에 찔려 생긴 상처를, 찰과상은 피부 표면의 긁힌 상처를 말합니다. 자상은 외견에 비해 깊은 내부 손상과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찰과상은 가벼운 출혈과 함께 가벼운 동통을 수반합니다. 리도카인은 마취부 주위의 혈관을 수축해 자상·찰과상으로 인한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 있습니다. 연고·크림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넷째는 벌레물림약입니다. 여름철 극성인 모기나 다른 벌레에게 물리기 쉬운데요. 물린 부위가 가려워 긁다보면 염증이 생겨 곪을 수 있고 벌레가 옮기는 또 다른 병원균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벌레 물린 데가 일시적으로 가렵지 않도록 도와주는 성분이 리도카인과 디부카인염산염입니다. 말초 지각신경을 차단해주는 원리입니다. 액상형이 많고 겔·크림 형태도 나와 있습니다.
 
다섯째는 땀띠약입니다. 땀띠는 땀관 일부가 막혀 땀이 원활히 표피로 배출되지 못하고 쌓이면서 작은 발진과 물집을 만드는 질환입니다. 리도카인과 디부카인염산염은 땀띠로 인한 피부의 통증과 가려움증·염증 등을 완화시키는 작용을 발휘합니다. 습진, 옻 등에 의한 피부염, 두드러기 등 피부의 다양한 증상이 있을 때도 통증과 가려움증 개선에 도움을 줍니다. 크림·겔·액상 등의 제형으로 나옵니다.

가려움증 없애려 잘못된 약 사용은 금물
이처럼 국소마취제가 든 일반의약품을 사용할 때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연고·크림 등 바르는 제형의 경우 눈 주위나 벗겨진 피부, 물집이 있는 부위에는 바르지 않도록 합니다. 과량 사용 시 작열감이 생기거나 접촉성 피부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드물게는 국소 부위의 압통이나 자극이 있고 피부 두드러기, 염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피부에 바르는 제품을 사용할 때 옻 등에 의한 피부염을 앓았거나 약·화장품으로 발진·발적, 가려움 같은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난 적이 있는 사람은 사용에 주의해야 합니다. 5~6일간 투여해도 증상의 개선이 보이지 않을 경우에는 사용을 중지하고 의사와 상의하는 게 권장됩니다. 환부에 결핵성 감염증 또는 바이러스성 질환 환자, 질환부위가 곪아 있는 사람은 사용을 금합니다. 또 국소마취제가 든 일반의약품 상당수는 소염·진통제나 증상 치료제 등 다른 성분이 함께 들어 있으므로 무좀 부위의 가려움을 없애기 위해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치질약의 경우 과량 또는 장기 사용 시 뇌하수체·부신피질계 기능 억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정해진 용법·용량을 지켜야 합니다. 임신 가능성이 있다면 약을 사용하기 전 약사·의사와 상의하도록 합니다. 제품에 따라 약을 사용하는 기간엔 혈압강하제·항우울약 복용을 피해야 합니다. 또 자상·찰과상 통증 완화를 목적으로 사용할 땐 패혈증·간질 환자, 심장 전도 이상, 서맥, 간 기능 손상이 있는 사람은 사용에 주의를 요합니다. 특히, 자상의 경우 손상구(損傷口)는 크지 않지만 대개 깊은 내부손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병원에서 충분한 검사를 받도록 합니다. 벌레물림약의 경우 피부가 예민한 30개월 이하의 유아의 사용을 금합니다. 땀띠약의 경우 환부에 습윤이나 미란(진무름)이 심한 환자는 사용에 신중해야 합니다.
 
도움말=가천대 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장영진 교수, 한림대성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최이화 교수, 약학정보원.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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