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생산한 18가지 '맞춤 배양액' 난임 정복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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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병원 연구지원본부를 가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난임 환자의 마지막 희망이다. 난자를 채취해 몸 밖 시험관에서 정자와 결합한 뒤, 만들어진 배아를 다시 자궁에 이식시켜 임신을 완료하는 현재까지 가장 진보한 난임 치료법이다.
 
단, 시험관 아기 시술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정자·난자 선별과 채취, 수정, 분화, 착상 등의 과정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임신 성공률이 뚝 떨어진다. 모든 과정이 몸 밖에서 이뤄지는 만큼 정자와 난자, 배아를 담는 배양액은 ‘난임 해결의 토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양액을 얼마나 생식세포 친화적으로 만드는지가 정자·난자의 질과 배아 발달을 좌우할 수 있어서다.
 
매년 8000여명의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 마리아병원은 배양액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수십 년의 연구개발(R&D)을 통해 지금은 정자·난자 채취부터 발달한 배아를 산모의 자궁에 이식하기까지 사용되는 배양액을 모두 자체 생산한다. 그 중심에 서울시 중랑구 마리아에스(상봉 마리아병원)에 위치한 마리아병원 연구지원본부(Maria Research Center·MRC)가 있다. 이곳에서 생산한 배양액은 전국 10개 분원에 보급돼 ‘생명을 잉태하는 물’로 쓰인다.
 

마리아병원은 수십 년 전부터 시험관 아기 시술에 사용하는 배양액을 자체 개발, 생산해왔다. 1995년 연합통신에 실린 마리아병원 시험관아기 시술용 배양액 관련 기사 전문. 사진 마리아병원 

이달 초 찾아간 마리아병원 연구지원본부에서는 각 분원에 보낼 배양액을 소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연구원들은 작업실에 들어서기 전 무균복을 입고 수 분간 에어샤워를 거쳐 감염 위험을 최소화했다. 배양액이 담긴 저장고에는 배양액의 종류와 생산 날짜가 각각 부착돼 있다. 모든 저장고에 온도계와 알람 시스템이 달려 정전 등 응급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배양액의 종류는 다양했다. 작업실에는 ‘MRC#D01’ ‘MRC#D13’ 등 저마다 다른 배양액이 담긴 병이 가득했다. 마리아병원 연구지원본부 윤정 실장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위해 정자·난자 채취에서 배아 발달 등 전 단계에 사용되는 배양액 18종을 자체 생산한다”며 “각각의 생식세포 특성에 따른 맞춤형 특화 배양액을 통해 임신 성공률을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각각의 배양액은 사전에 산성도(pH), 오염 여부, 삼투압, 세포 내 독성 등 품질 테스트를 거친다. 동물실험을 통해 실제 배아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한 뒤에야 작업실에서 소분해 각 분원으로 보내진다.
 
사실 대다수의 난임 병원에서는 시험관 아기 시술에 쓰는 배양액을 수입한다. 천재지변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배송이 지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배양액을 자체 생산하는 마리아병원은 이런 문제에서 보다 자유롭다. 윤정 실장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4~5개월분의 배양액을 만들 수 있는 시약과 단백질 등을 비축하고 있다”며 “2주마다 모든 배양액을 교체하며 안전성을 확보한다”고 자신했다.
 
마리아병원은 단순히 배양액을 자체 생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특화 배양액'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포도 껍질 등에 풍부한 항산화 물질인 레스베라트롤을 활용한 특화 배양액이 좋은 예다.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높이고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해 배아의 질을 끌어올린다. 38세 이상 고령과 난소 기능이 떨어진 환자의 착상·임신 성공률 향상에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 동물 실험 결과 레스베라트롤을 첨가한 배양액은 그렇지 않은 배양액과 비교해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좋아져 배아가 더 잘 발달했다. 구체적으로 착상 성공률은 16%, 임신 성공률은 27% 증가했다. 윤정 실장은 “마리아병원은 생식세포의 성장을 촉진하고, 발달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기 위해 실시간 배아 관찰경과 미세진동 배양플랫폼 등 첨단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특화 배양액 개발을 비롯해 타임랩스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는 등 난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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