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수두부터 B형 간염까지 해결, '혈장 치료제' 의외로 가까이 있네요

인쇄

#120 면역기능 보완하는 혈장치료제·글로불린주사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새롭게 조명 받는 약물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을 이용한 혈장 치료제가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0대·70대 중증 코로나19 환자 두 명이 혈장 치료제를 쓴 후 완치 판정을 받으며 대중의 관심이 커졌죠. 하지만 이런 혈장 치료제가 알고 보면 수두부터 B형 간염 치료까지 다양한 질환에 두루 쓰이는 ‘감염병 해결사’란 사실, 알고 계시나요?
 

혈장은 혈액에서 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 세포를 제외한 액체를 말합니다. 혈장의 90% 가량은 물이고 나머지는 단백질과 지질·당류·요소·아미노산·요산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양소와 노폐물 운반, 체온 유지 등 맡는 역할이 다양한데요, 이 중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성분은 혈장 속 단백질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글로불린이라는 단백질은 인체 면역반응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성분으로 꼽힙니다.
 

인체 면역체계는 크게 선천성·후천성 면역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선천성 면역은 이름처럼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진 면역체계를 말합니다. 세균·바이러스가 침투했을 때 곧바로 출동해 이를 물리치는 ‘5분 대기조’라 생각하면 됩니다. 대식세포, 호중구 등 혈액 속 백혈구가 대표적인 선천성 면역세포입니다.
 

특정 병원체만 공격하는 ‘면역 정예 부대’
반면 후천성 면역은 살아가면서 얻는 면역체계를 말합니다. 체내 침투한 병원체의 독성이 강하거나 양이 너무 빠르게 늘면 선천성 면역만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백혈구가 ‘정예 부대’ 격인 T세포·B세포 등 후천성 면역세포에 ‘SOS’ 신호를 보내는데요, T세포·B세포는 세균에 구멍을 뚫어 녹여버리거나 바이러스에 달라붙어 굶겨 죽이는 등 강력한 공격력을 앞세워 병원체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치웁니다.
 
그럼, 후천성 면역세포가 선천성 면역세포보다 공격력이 강한 이유가 뭘까요? 이때 등장하는 ‘비밀 무기’가 바로 혈장 속 면역 단백질, 글로불린입니다. 대중에게는 병원체는 항원, 글로불린은 항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죠. 후천성 면역세포 중 B세포는 특정 병원체에 맞춰 ‘글로불린’이란 무기를 맞춤·대량 생산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백혈구가 병원체를 가리지 않고 직접 백병전을 펼친다면, B세포는 특정 병원체가 등장했을 때 이를 물리칠 총·대포·미사일 등 효과적인 무기(글로불린)를 쏟아 부어 세균과 바이러스를 파괴시킵니다. 선천성 면역이 해결하지 못한 병원체를 효과적으로 처치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나아가 동일한 세균·바이러스에 다시 감염될 때를 대비해 글로불린이 ‘감시자’처럼 일정 기간 혈장에 남아있기도 합니다. 재감염 시 전보다 빠르게 글로불린을 생성해 인체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면역 전략의 일환입니다.
 

인간의 혈장에는 어떤 세균·바이러스에 감염됐느냐에 따라 다양한 ‘맞춤 무기(글로불린)’가 형성·저장돼 있습니다. 예방접종을 통해 병에 걸리지 않고도 특정 세균·바이러스를 처치할 글로불린을 만들어 둘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면역체계가 약해 글로불린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거나, 글로불린이 형성되기 전 감염된 세균·바이러스가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하는 경우입니다. 영유아, 고령층, 만성질환자, 장기이식자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경우 병에 걸린 뒤 글로불린이 자연 생성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게 위험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약물 치료가 이뤄져야 합니다.
 
면역력 약한 소아·고령층 등에 활용
이를 위해 개발된 약물이 바로 면역글로불린 주사입니다. 스스로 병을 극복했거나, 예방접종을 한 사람의 혈장에 해당 병원체와 관련된 글로불린을 뽑아 다른 사람에게 주입하는 치료법입니다.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이미 B형 간염, 수두, 홍역 등 다양한 질환 활용될 큼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받은 약물입니다.
 
예컨대 B형 간염에 걸린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생후 12시간 이내에 B형 간염 면역글로불린 주사와 B형 간염 백신을 동시에 맞습니다. B형 간염은 산모에게서 아이로 바로 전파할 수 있는데요, 면역글로불린 주사로 간염 바이러스를 억제해 시간을 벌고, 이 기간 아이가 백신을 통해 스스로 후천성 면역을 획득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나 임산부도 수두·홍역 환자와 접촉했을 경우 증상 관리를 위해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활용합니다.
 

코로나19에 쓰는 혈장 치료제도 일종의 면역글로불린 주사입니다. 다만, 코로나19가 ‘신종 바이러스’다 보니 이를 물리칠 글로불린이 어떤 종류인지 파악되지 않아 혈장 전체를 수혈하듯 투여해 환자 치료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혈장 치료제도 환자 치료에 활용될 수는 있지만, 완치자에게서 얻은 혈장에 바이러스를 이길 글로불린이 얼마나 포함됐는지 알기 어렵다 보니 치료 결과를 예측·검증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죠. 기존에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만들어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루빨리 코로나19를 이길 ‘맞춤형 치료제’가 등장하길 바라봅니다.
 
도움말: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서유빈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 저작권자 © 중앙일보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