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병원 "2분 기다려준 KTX 덕에 심장 빨리 받아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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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광주송정역 공조로 골든타임 내 수술 성공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코레일과 공조로 얻은 2분이 새로운 생명을 살렸습니다. 자칫 공여자의 고결한 희생과 환자의 8년의 기다림이 모두 물거품이 될 뻔했습니다. 이제 환자는 새 심장을 가지고 건강한 내일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 4일 저녁, 41세 남성 허모씨의 심장 이식을 위한 이송을 한국철도(코레일)와 공조를 통해 성공적으로 마친 가천대 길병원 장기이식센터 이순미 실장은 흥분된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4일 가천대 길병원에서 심장 이식을 받은 환자 허씨가 입원해 있는 격리실. [가천대 길병원]

시간을 되돌리면 이렇다. 허씨는 8년 전부터 확장성심근증으로 심장근육이 얇아지고 커지며 기능이 상실되는 말기 심부전증을 앓았다. 지난 3일 허씨에게 희소식이 들렸다. 전라도 한 대학병원에서 심장 및 여러 장기를 기증할 공여자가 나타났는데 허씨가 1순위 수혜자가 된 것. 

그는 가천대 길병원 심장내과 정욱진 교수에게 약물 치료를 받아오다가 지난해 5월 길병원에서 인공심장인 ‘좌심실보조장치’를 넣었다. 여전히 심장 이식이 시급했던 허씨에게 공여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정 교수와 장기이식센터 이순미 실장의 심장도 설레게 했다.

하지만 기증자가 있는 전라도와 길병원이 있는 인천과의 거리가 문제였다. 4일 오후 심장을 싣기로 예정된 소방헬기가 돌발적인 강풍으로 갑자기 이륙이 취소되면서 KTX와 앰뷸런스를 이용해야 했다. 게다가 기증자의 심장 적출은 다른 여러 장기의 적출 여부 결정과 함께 4일 오후 8시 반에 이뤄졌다. 

광주송정역에서 가장 빠르게 탑승할 수 있는 KTX는 저녁 9시발 KTX548 열차. 이 KTX를 놓치면 다음 열차까지 1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리거나 장시간 앰뷸런스로 이동해야 했다. 그럴 경우 심장이 적출된 뒤 환자에게 이식될 때까지 일종의 골든타임인 ‘허혈시간’ 4시간을 상회해 수술 결과가 나빠질 수 있었다. 

이순미 실장은 “장기적출이 늦어지고, 코로나19 사태로 배차간격이 길어진 탓에 자칫 기증자와 공여자의 희망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하얗게 됐다”며 “8시 20분경 무작정 KTX 출발지인 광주송정역으로 다급히 전화를 걸어 출발시간을 10분가량 늦춰달라고 사정했다”고 말했다. 
 
역 곳곳서 역무원이 심장 이동 도와

이에 코레일 측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전화를 받은 광주송정역 강정석 역무원은 역에 이 사실을 알렸고, 광주송정역 한영희 역무팀장은 의료진이 가장 빠르게 열차에 탈 수 있도록 곧바로 조치했다. 기증자의 심장을 실은 구급차가 바로 역에 댈 수 있도록 하고 역광장부터 에스컬레이터·승강장까지 역무원을 곳곳에 배치해 신속한 이동을 도왔다. 

이 같은 조치로 KTX548열차는 당초보다 2분 여 늦은, 밤 9시 2분 34초에 출발했다. 이후 광명역에서 미리 대기해 있던 앰뷸런스를 타고 무사히 길병원에 도착, 결국 2시간 40분 만에 흉부외과 박철현 교수의 집도로 수술이 이뤄졌다. 의료진은 기존에 이식받은 인공심장과 본인 심장을 최대한 빠르게 제거하면서 새 심장을 이식하는 고난이도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수술을 집도한 박철현 교수는 "수술은 성공리에 마쳤고 환자는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빠른 판단과 협조를 해준 코레일과 광주송정역 관계자들께 감사하다"며 "출발시간을 지체해 기다려야하는 수많은 열차 승객들의 열린 마음, 원치 않는 민원을 각오한 광주송정역측의 열린 마음이 한 생명의 개심술(開心術)을 완성시키는 일상의 기적을 이뤘다"고 말했다.

한영희 역무팀장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역무원이 매뉴얼대로 침착하고 신속히 대처해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태 기쁘다"며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따뜻한 사연을 전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심부전 환자의 진단, 약물 치료에서 수술후 장기 추적 치료까지 전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정욱진(가천대길병원 진료1부장) 교수는 "밤중인데도 경식도심초음파 검사에 흔쾌히 해준 기증자 병원의 김모 교수, 대의를 위해 KTX를 2분 멈추는 등 빠른 판단과 협조를 해준 코레일 및 광주송정역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길병원 심장혈관센터는 1995년부터 심장이식수술을 시행해오고 있으며 국내 최초 심폐동시이식, 국내 최초 심근성형술, 무혈심장이식술, 인공심장(좌심실보조장치) 수술, 체외막산화장치(ECMO) 등으로 급성 또는 말기 심부전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힘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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