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마약성 진통제 '쇼크' 한국도 자유롭진 않아”

인쇄

[인터뷰]순천향대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준호 교수

마약성 진통제 남용으로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990~2017년 마약성 진통제 남용으로 인한 사망자는 4만7000여명에 달한다.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돼 이를 과다 복용하거나, 환자가 헤로인과 같은 ‘진짜 마약’을 찾으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지난해 9월 대형 제약사 퍼듀 파마(Purdue Pharma)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과 관련해 미국의 모든 주에 소송이 걸리면서 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소송에 참여한 10여 개 주와 비밀회동에서 총 배상 금액으로 약 120억 달러(약 14조5700억 원)를 제시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는 안전할까. 순천향대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준호 교수는 지난해 대한통증학회지에 ‘미국의 마약성 진통제 확산과 위기: 한국은 어떠한가?(The Opioid Epidemic and Crisis in US : How about Korea)’ 라는 사설에서 “한국도 마약성 진통제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 등을 운영하곤 있지만, 불법거래 가능성과 불필요한 약물 처방 등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를 만나 국내 마약성 진통제 사용, 관리 현황과 개선 방안을 물었다.
 

순천향대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준호 교수가 우리나라 마약성 진통제 사용 현황과 문제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하는 이유는.
“진통제는 통증 강도에 따라 단계별로 처방된다. 통증이 강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세트아미노펜, 소염진통제 등 비마약성 진통제를 쓰고, 이걸로도 해결이 안 되는 중등도 이상의 통증에는 대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다. 부작용이 무서워 통증을 참고만 있다간 만성 통증으로 악화해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단순히 말초신경에서 통증을 인식하는 게 아니라 척수나 뇌 등 중추신경의 변화를 유발해 자극이 없어도 통증을 느끼거나(이질통) 사소한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호소(통각 과민)하게 된다. 이렇게 신경병증 통증화된 만성 통증은 강한 마약성 진통제로도 해결하기 어렵다.”

-주로 어떤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가 쓰이나.
“마약성 진통제는 암으로 인한 통증(암성통증), 대상포진 후 신경통과 같은 신경병증성 통증, 척추통증을 비롯한 만성 통증 관리에 활용된다. 비마약성 진통제로는 이런 통증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술 중, 수술 후 통증 조절을 위해 투여되는 약물에도 마약성 진통제가 포함돼 있다. 이른바 ‘무통 주사’라고 하는 자가통증조절기(PCA)에는 마약성 진통제와 소염진통제 등이 주 약제로 사용된다.”

-미국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 세계에 유통되는 마약성 진통제의 80%가 소비된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 시 용량 제한도 없었고, 비싼 의료비 탓에 환자들이 저렴한 마약성 진통제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의학적인 목적으로 처방됐다고 하지만 중독 위험을 너무 간과했던 게 화근이었다고 본다. 이미 중독된 환자들이 헤로인 등의 마약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오피오이드 크라이시스(Opioid Crisis)’라 불릴 정도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관리한다. 암으로 인한 통증(암성 통증) 환자가 아니라면 처방 용량이 제한되고, 한 달 이상 처방할 수 없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도 하다. 다만, 그렇다고 병원에서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중독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불법적인 거래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부 의사들은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없이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많이 써도 위험하지만, 적정량 이하로 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불충분한 처방으로 환자가 마치 중독된 것처럼 약을 찾는 ‘위중독(pseudo-addction)’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의료진의 교육이 중요할 것 같은데.
“물론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사 한 명당 진료하는 환자 수가 과도하게 많다 보니 개별적인 통증에 주목할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적절한 처방 용량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통증학회에서 학술대회뿐 아니라 매년 약물치료 연수강좌를 통해 통증 치료의 약제 교육을 시행하는 이유다. 하지만 교육을 반드시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의사 스스로 비용과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라 참여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

-통증 조절에 마약성 진통제 외에 대안은 없나.
“수술 후 통증의 경우 전신마취나 부위마취와 함께 신경차단술을 병행하면 진통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을 일시적으로 잠재워 수술로 인한 불편함을 덜어주는 것이다. 다만,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시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신경차단술을 마취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마취를 동시에 시행하는 것처럼 돼서 치료를 하더라도 비용을 모두 인정받지 못한다. 통증의 ‘회색 지대’에 쓸 약도 마땅치 않다. 아세트아미노펜 제제나 소염진통제 등 비마약성 진통제로 조절되지 않지만, 마약성 진통제까지는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통증에서 사용할 마땅한 진통제가 없다. 통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사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이준호 교수는 "의사와 환자를 대상으로 마약성 진통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효과적인 통증 관리를 위해 개선돼야 할 점을 꼽는다면.
“의료진과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 안내 시스템이 확충돼야 한다. 의사가 정확한 지식 없이 환자를 진단, 치료하게 되면 효과적으로 통증을 잡지 못할 것이고 이 때문에 환자가 불필요하게 진통제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환자에 대한 교육은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과도한 공포와 거부감을 낮춰 적절한 통증 관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만성 통증 환자의 경우 우울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통증과 정신 치료를 연계할 경우 치료 효과를 배가할 수 있다. 통증에 대한 의료진과 환자의 인식 개선이 중요한 시점이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 저작권자 © 중앙일보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