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개 구충제 몰래 먹고 있나요? 그 사람은 면역항암제 먹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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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근거중심 약 복용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말기 암 환자를 중심으로 동물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논란입니다. 지난 9월 미국인 폐암 말기 암 환자가 동물 구충제를 먹고 완치됐다는 유튜브 영상이 국내에서 주목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약효·안전성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작정 복용을 시도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셀프 임상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죽을 텐데, 뭐가 문제냐’며 펜벤다졸에 목을 맵니다. 동물실험에서 이 성분이 항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뒤늦게 발견되면서 관련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습니다. 동물 구충제 품귀로 화학구조가 비슷한 사람 구충제(알벤다졸·메벤다졸)을 찾거나 해외 직구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펜벤다졸 항암 치료 논란과 근거중심 약 복용에 대해 알아봅니다.
 

세포·동물 실험만으로는 약으로 인정되지 않아
펜벤다졸(약품명 파나큐어·Panacur)은 위장관 회충·편충·요충·촌충·십이지장충 등 기생충을 치료하는 데 광범위하게 쓰이는 동물 구충제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개· 염소에게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펜벤다졸은 정말 암 치료에 긍정적일까요?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현재까지 진행된 세포·동물 연구에서 펜벤다졸은 암세포 증식에 필수적인 당 섭취를 방해해 암세포 마비·사멸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만으로 항암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유효성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암 치료 효과를 내는지를 확인한 정도 입니다.
 
연구의 의미 역시 제한적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과 동물은 다릅니다. 이는 의약품 복용에도 적용됩니다. 동물과 사람은 약 투여 후 반응이 다릅니다. 쥐·토끼 같은 동물실험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어도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 치료효과가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치명적인 부작용을 인체 임상시험에서 확인하기도 합니다.
 
글로벌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는 2016년 치매 치료 후보물질인 솔라네주맙 개발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27년간 무려 3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했지만 결국 임상 3상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국내도 이런 사례는 존재합니다. 신라젠에서 개발중인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은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생존율 개선 등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솔라네주맙·펙사벡 모두 동물 실험에서는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보였습니다. 동물실험은 새로운 약으로 상업화 개발하기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참고로 동물실험 이후인 임상 1상부터 신약허가 성공률은 9.6%에 불과합니다.
 

보건의료계에서 동물실험에서 펜벤다졸 성분의 항암치료 효과가 있다는 논문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이유입니다. 특정 성분이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야 합니다. 근거 수준에 따라 연구의 방식·규모·기간 등이 제각각입니다. 근거 수준이 가장 낮은 연구가 실험실 연구고, 그 다음이 동물 연구입니다. 임상적 근거가 있다고 밝히려면 최소한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대한암학회·대한의사회 역시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어 안전성·약효를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한 명의 사례를 연구한 것은 인과관계가 확실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요인의 작용을 배제하기 어려워서 입니다. 다른 사람이 반복해도 같은 치료효과가 나타나는지 재현이 가능해야 합니다. 사실 국립암센터에서도 펜벤다졸 논란이 커지면서 임상시험 타당성을 검토했지만 세포·동물실험에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몰래 먹으면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부작용 위험 증가
말기 암환자가 펜벤다졸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렴한 약값에 극적인 항암 치료 효과입니다. 게다가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말하다보니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항암 치료효과는 펜벤다졸만의 힘일까요? 이번 논란의 시작점인 미국인 말기암 환자 조 티펜스는 펜벤다졸만 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임상시험을 통해 1년 동안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복용했습니다. 방사선 치료도 받았습니다.
 
면역항암제는 가장 최신의 항암치료법입니다. 암세포를 직·간접으로 공격하던 것에서 인체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식으로 암 치료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2018년에는 면역항암제 개발에 크게 기여한 연구자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이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면역항암제는 국내에서도 처방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경우가 제한적입니다. 비싼 약값에 약이 필요한 암환자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실제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환자 단체는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확대를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개 구충제와 면역항암제, 이 둘 중 암 치료효과가 어느 것이 확실할까요? 암 전문가들은 100% 면역항암제의 효과라고 강조합니다.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개발한 MSD는 올해 세계 최대 암 학술대회인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이 약의 장기 치료 효과를 공개했습니다. 비소세포폐암 3b~4기 환자를 대상으로 키트루다를 1차 치료제로 투여했더니 5년 생존률이 23.2%로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의학적 치료를 받으면서 몰래 펜벤다졸을 복용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펜벤다졸은 사람에게 투여한 의학적 경험이 없고, 간·신경·골수 독성이 존재합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말기 암환자에게는 약물 상호작용으로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약물 부작용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보호를 받기 어렵습니다. 장기 복용했을 때 부작용도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의학적 치료는 현재의 수준에서 가장 확실한 치료만 적용합니다. 무엇인가를 복용하고 싶다면 냉정하게 의학적 근거를 살피고, 그에 따른 득실을 따져야 합니다.
 
도움말 :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 식품의약품안전처, MSD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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