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모두 환자 돌보는 원팀, 중증 질환 고치는 원톱 만든다

인쇄

권오정 삼성서울병원장 개원 25돌 맞이 청사진

1970~80년대 초만 해도 환자는 의사의 시혜를 받는 대상이었다. 의사를 만나려고 무작정 기다리거나 좀 더 빨리 입원하기 위해 의료진에게 촌지를 주던 시절이다. 삼성서울병원은 환자를 진료 대상에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고객으로 인식 전환을 하는 데 공헌했다. 개원과 동시에 ‘기다림·보호자·촌지 없는 병원’을 내세워 병원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대기업이 병원 경영을 본격화한 80~90년대에 삼성그룹 특유의 고객 서비스 정신을 병원에 수혈하며 차별화했다.

이런 삼성서울병원이 올해 개원 25주년을 맞았다. 94년 11월 개원한 이래 지금껏 병원 문화 혁신의 대명사로 꼽힌다. 권오정(62·사진) 삼성서울병원장은 “삼성서울병원의 가장 큰 성과는 좋은 치료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환자를 고객으로 대하며 환자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의료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 의료 선진국 시스템 선봬

삼성서울병원은 미국 메이요클리닉과 같은 의료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던 ‘환자 중심 병원’을 국내에 선보였다. 치료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부터 의료 장비, 시스템까지 철저히 환자 위주로 구성했다. 실력 있는 원로급 의료진을 해외에서 영입했고 중견 의사는 개원 3년 전 미리 선발해 해외 연수를 보냈다. 권 원장은 91년 3월부터 3년간 영국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와 개원을 준비했다. “개원 준비를 할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님이 적자가 나도 좋으니 최신·최고 성능의 기계를 구비하고 환자에게 가장 좋은 병원을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개원준비단 모두가 ‘정말 좋은 병원을 새롭게 만들어 보자’는 의지가 강했죠.”
 
그 결과 삼성서울병원은 진료 예약제, 진료비 후불 수납제 등을 도입해 환자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고 처방전달시스템(OCS)·의학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을 구축해 종이 없는 병원을 실현하며 선진화를 이끌었다. 특히 암병원·심장뇌혈관병원을 특성화해 고난도 중증 질환 치료에 집중했다. 과감한 투자로 최신 의료 기술을 도입하고 환자들에게 혜택을 돌렸다. 양성자 치료가 대표적이다. 암세포만 정확하게 파괴해 부작용이 적고 치료 효과가 뛰어난 암 치료 시스템으로 국내에선 삼성서울병원과 국립암센터 단 두 곳에만 구축돼 있다.
 
임기 중 개원 25주년을 맞았다. 
“2015년 10월 원장으로 취임했다. 메르스 사태로 병원이 어려움을 겪던 때다. 취임 당시 병원 구성원들에게 ‘자존심과 사회의 신뢰를 되찾고 좋은 병원을 다시 만들어 보자’고 독려했다. 이젠 영상 검사가 밀려 힘들 정도로 환자가 많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이다. 25주년을 맞은 지금, 환자들이 다시 삼성서울병원의 치료 성적을 인정하고 의료진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병원의 전문 역량과 신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의료 혁신을 이뤄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 있나
“5세대 이동통신(5G)을 기반으로 스마트 혁신 병원을 구축하려고 한다. 지난 9월 KT와 이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병원 양성자 치료센터에서 방사선종양학과와의 직선거리는 800m 정도다. 걸어가면 1㎞가 넘는 거리다. 이제까지 치료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의료진이 직접 이동했다. 근데 5G 기술을 적용하면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전송할 수 있어 이동하지 않고도 치료 정보·계획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진단 병리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유리 슬라이드 안에 머물렀던 방대한 양의 병리 정보를 디지털화하면 의료진이 언제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병원 리모델링 작업도 진행 중인데
“병원 내 수술장이 본관, 별관, 암 병원에 있는데 본관 수술실 공간을 좀 더 확충할 것이다. 별관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신생아 집중치료실·중환자실 등 관련 부서를 함께 배치해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외래 진료실도 환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위치를 조정한다. 이번 리모델링은 중증·고난도 환자 치료에 전념하고 환자 편의성을 높인 진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이미 교수 연구실, 행정 사무실 등 비진료 공간을 새로 건립한 일원역 캠퍼스로 이전했다.”
 

 
전 구성원 호칭 ‘선생님’ 단일화
 
삼성서울병원은 25주년을 맞아 병원 내 모든 직종을 ‘케어기버(Caregiver)’로 새롭게 정의했다. 환자가 병원을 선택한 순간부터 퇴원할 때까지 최상의 치료 성과를 만드는 전문가를 뜻한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의료직뿐 아니라 병원을 들어설 때 만나는 안내 직원, 원무과 직원, 미화원 등 모든 임직원이 병원을 인식·평가하는 경험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구성원 모두가 원팀이란 생각으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해야 진정한 환자 중심의 미래형 병원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이를 위해 전 구성원의 호칭을 직종·직급 구분 없이 ‘선생님’으로 단일화했다. 원팀이란 자긍심을 가지려면 상호 존중과 협력하는 조직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지에서다. 권 원장은 “삼성서울병원의 향후 25년은 미래형 의료의 중심에 서고 환자 중심 병원의 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임직원들에겐 월요일이 좋은 병원, 환자들에겐 국내에서 가장 치료를 잘하는 병원, 중증 질환 치료 성공률이 높은 병원,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