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마약성 진통제, 하루 3~4번 써야 할 땐 제형·용량 바꾸세요

인쇄

#107 안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통증도 병입니다. 일시적인 통증이 아닌 암으로 인한 통증(암성 통증), 척추 질환이나 신경 손상으로 인한 만성 통증은 그 자체가 치료 효과를 떨어트릴 뿐 아니라 근 감소증, 수면장애, 우울증으로 이어져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약 10%(약 250만명)은 만성 통증을 앓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상 이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성 통증에 사용하는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거부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약성 진통제도 오남용에 주의하면 삶의 질을 높이는 ‘약 중의 약’이 될 수 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알아봅니다.
 

진통제는 크게 타이레놀·펜잘, 아스피린 같은 비마약성 진통제모르핀·타진 등 마약성 진통제로 나뉩니다. 각각의 진통제는 작용 기전과 통증 감소 효과가 다른데요, 마약성 진통제는 주로 통증을 인지하는 뇌·척수 등 중추신경계의 오피오이드 수용체라는 곳에 달라붙어 통증을 줄입니다. 오피오이드 수용체는 통증을 느낄 때 우리 몸이 분비하는 ‘엔도르핀’이란 호르몬이 결합하는 곳입니다. 엔도르핀은 통증을 가라앉히고 기분을 좋게 해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죠. 마약성 진통제는 ‘가짜 엔도르핀’처럼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달라붙어 흥분된 신경을 잠재우고 통증을 줄입니다. 반면 비마약성 진통제는 통증 전달 경로를 차단하거나 말초 조직의 염증 반응을 줄이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통증을 감소시킵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만큼 비마약성 진통제보다 진통 효과가 훨씬 강력합니다. 대표적인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의 진통 효과는 비마약성 진통제인 아스피린의 300배 이상으로 보고됩니다. 중증도 이상 통증(10점 만점에 4점 이상. 10점은 참을 수 없는 심한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만성 통증이나 수술·질환·외상으로 중추신경계가 손상 당하면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교란돼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때도 주로 말초 조직에 작용하는 비마약성 진통제로는 진정 효과를 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이런 통증에 비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경우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쓸수록 부작용만 커지는 역효과(천장 효과)가 나타나 몸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 중독률 0.01%
마약성 진통제는 천장 효과가 없어 복용하는 만큼 통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관건은 약을 쓸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죠. 마약성 진통제의 부작용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거나 적절한 처치로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구역질이나 졸림, 피부 발진 등은 신경계가 약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대게 1~2주가 지나면 자연히 해소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장운동이 억제돼 변비가 심해지기도 하지만, 이 역시 별도로 변비약(완하제)을 처방하거나 물·채소·과일 섭취 등 식습관 개선을 통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호흡수 감소는 약물 복용량을 갑자기 늘릴 때 나타나는 드문 부작용입니다.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약을 먹은 뒤 1분에 10회 이하로 호흡수가 줄었다면 즉시 병원을 찾아 진통제 효과를 낮추는 다른 약물을 투여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내성과 중독이겠죠. 일반인이 마약성 진통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써야 통증이 조절되는 현상을, 중독은 몸에 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신체·정신적으로 약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중 내성은 사실 마약성 진통제 사용 시 크게 우려할 부분은 아닙니다. 천장 효과가 없는 만큼, 통증에 비례해 복용량을 늘려서 진통 효과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으로 의료진의 통제 하에 사용됩니다. 치료 목적으로 쓰이는 만큼 단지 쾌락을 위해 스스로 사용하는 마약, 술(알코올), 담배(니코틴)와는 구분됩니다. 실제로 통증으로 인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한 환자 중에서 ‘원인 치료 후에도 쾌락을 위해 약을 찾는’ 중독 환자는 1만명 중 1명 가량으로 극소수입니다. 일부 의사들은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될 확률을 ‘골프 초보자가 홀인원에 성공할 확률’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통증 강도 맞춰 약효·제형 선택해야
실제 의료진들은 중독 등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처방하는 마약성 진통제의 종류나 제형을 다양하게 적용합니다. 첫째, 마약성 진통제는 통증 수준에 따라 단계별로 씁니다.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약한 마약성 진통제(코데인)강한 마약성 진통제(모르핀, 펜타닐, 타진, 아이알코돈(옥시코돈), 저니스타(하이드로모르핀))로 나뉩니다. 강한 마약성 진통제는 진통 효과가 강력하지만 그만큼 약에 취해 중독으로 이어질 위험도 큽니다. 진정 효과가 너무 강해 의식을 잃거나 자가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죠.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중등도 통증은 약한 마약성 진통제, 심한 통증은 강한 마약성 진통제부터 사용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둘째, 통증 양상에 따라 각각 다른 제형을 적용합니다. 예컨대 암으로 인한 통증은 암세포가 중추신경계와 뼈·장기로 퍼지면서 만성(지속성), 급성(돌발성) 통증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꾸준히 통증을 느끼다가 갑자기 강도가 심해지는 겁니다. 만약 평소 나타나는 만성 통증을 조절하지 않으면 급성 통증을 더 크게 느껴 많은 양의 마약성 진통제를 자주 먹게 되고, 덩달아 중독 등 부작용 위험도 커집니다.
 

급성 통증을 잡는 마약성 진통제는 하루 3~4회 이내로 사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만약 이 이상 써야 할 만큼 급성 통증이 자주, 강하게 나타나면 의사와 상의해 만성 통증에 사용하는 약물 용량을 늘리거나 통증 관련 신경을 잘라내는 수술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통증을 줄이는 데는 약만큼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합니다. 충분한 휴식과 마사지, 냉·온 찜질, 심호흡 등 내게 맞는 통증 완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도움말: 강동성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홍성준 교수, 고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이청우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 저작권자 © 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