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똑같은 뇌졸중 환자인데 사용하는 항혈전제는 왜 다른가요?

인쇄

#102 혈전 종류에 따른 항혈전제의 구분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박모(68)씨는 어느 날 오른쪽 팔이 마비되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뇌 왼쪽 부위의 혈관이 막힌 뇌경색으로 진단을 받았죠. 한모(72)씨는 길을 걷던 중 갑자기 온 몸이 굳으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진단결과 박씨처럼 소뇌 부위 혈관이 막힌 뇌경색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현재 두 사람은 모두 뇌경색 재발을 막기 위해 항혈전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항혈전제는 혈관 내 혈전이 만들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약으로, 급성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는 데 쓰입니다. 하지만, 박씨와 한씨는 서로 다른 종류의 항혈전제를 먹습니다. 박씨는 항응고제를, 한씨는 항혈소판제를 복용합니다. 똑같이 뇌경색을 앓았는데 각자 다른 약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주 약 이야기에서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인 사망 원인 2,3위를 차지하는 심장질환과 뇌졸중은 모두 혈전(피떡)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병입니다. 혈전은 ‘피(血)의 마개(栓)’라는 뜻인데요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의 일부가 굳어서 생긴 덩어리를 말합니다. 혈전이 쌓이면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혈액순환이 방해를 받습니다. 산소와 영양소 공급이 중단돼 심근경색, 뇌졸중 등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하고 빨리 대처하지 못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실 혈전은 손상된 혈관을 복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형성되는, 즉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기는 것처럼, 혈관이 손상되면 출혈을 막기 위해 혈소판과 혈액응고인자가 뭉쳐 혈전을 만듭니다. 문제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으로 혈관이 약해진 환자는 이런 혈전이 너무 많이 만들어진다는 점이죠. 특히, 혈전으로 인해 심·뇌혈관질환을 한번 경험한 환자는 이미 혈관이 나빠질 만큼 나빠진 상태라 특별히 약물을 먹어 혈관 건강을 관리해야 합니다.
 

혈전 종류 따라 약물도 달라져
근데 항혈전제는 왜 항혈소판제, 항응고제 두 가지가 개발됐을까요? 그건 심뇌혈관질환의 종류, 더 구체적으로는 동맥, 정맥 등 혈관에 따라 만들어지는 혈전의 종류가 다르고, 이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약물도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동맥에 문제가 있을 때 발생하는 급성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은 항혈소판제를, 정맥 문제로 인한 심방세동, 심부정맥혈전증에는 항응고제를 쓰는 게 훨씬 치료 효과가 큽니다.
 
혈전은 똑같은 핏덩어리지만 어느 혈관에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생성 과정은 물론 심지어 색도 다릅니다. 실제로 동맥 혈전은 하얀색이 돌아 백색혈전, 정맥 혈전은 빨간빛을 띄어 적색혈전이라고 부릅니다. 동맥은 심장이 내뿜는 혈액이 온몸에 나가는 ‘길’로 흐르는 혈액량도 많고 혈류 속도도 빠릅니다. 그런 만큼 혈관이 손상되기도 쉬운데요, 이때 상처를 메꾸려 백혈구와 혈소판이 빠르게 응집되면서 만들어지는 게 백색혈전입니다.
 
반면 정맥에서 만들어지는 적색혈전은 혈액이 고이는 게 원인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정맥은 심장으로 되돌아가는 혈액이 흐르는 길로 혈관의 압력이 거의 없고 혈류 속도도 느립니다. 특별히 상처가 없어도 혈액 속 혈소판이 서로 들러붙으면서 커지고, 여기에 혈액응고인자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적색혈전을 형성하게 됩니다.
 

항혈전제 병용 요법 연구 속도
적색혈전과 백색혈전을 없애려면 각각 혈소판, 혈액응고인자라는 주요 ‘재료’의 작용을 억제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동맥, 정맥 등 문제가 되는 혈관에 따라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 등 다른 치료제를 쓰는 것이죠. 심뇌혈관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면 심장초음파·심전도·MRI 검사 등 다양한 검사가 진행되는데요, 이를 통해 어떤 혈관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서 그에 따른 약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뇌졸중의 경우 ▶동맥에서 떨어져 나간 백색혈전이 뇌 혈관을 막거나 ▶정맥(심장)에 고인 혈액이 적색혈전이 돼 뇌로 이동하는 경우 모두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뇌졸중에서 한 사람은 항혈소판제를, 다른 사람은 항응고제를 복용하는 이유입니다.
 
사실 심뇌혈관질환을 완벽히 예방하려면 혈소판과 혈액응고인자 작용을 모두 억제하는 게 가장 좋겠죠. 하지만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를 한 환자가 동시에 복용하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심뇌혈관질환 예방 효과와 더불어 출혈 등 부작용 위험도 함께 커지기 때문입니다. 혈소판과 혈액응고인자를 하나만 억제해도 출혈 위험이 큰데, 이를 모두 억제하면 장기나 혈관이 손상될 때 이를 복구하기 어려워져 오히려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들어 이런 출혈 부작용을 감소시킨 약이 등장하면서 항혈소판제, 항응고제 동시 사용에 대한 연구도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와파린의 뒤를 이어 개발된 항응고제 ‘NOAC’은 특정 혈액응고인자에만 작용해 혈전 억제 작용은 유지하면서 출혈 부작용은 줄였는데요, 최근 동맥 질환을 앓은 환자에게 항혈소판제와 ‘NOAC’을 함께 쓴 경우 출혈 위험은 비슷한 반면 동맥의 혈전 예방 효과는 높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부작용이 없이 약물로 전신 혈관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날이 올 지 기대되네요.
 
도움말: 강동성심병원 심장혈관내과 서원우 교수, 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박재형 교수,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김치경 교수,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권순억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 저작권자 © 중앙일보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