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사용해도 될까? 헷갈리는 약 유효기간 판단 이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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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약 유효기간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상황1.
집에서 배가 아파 평소 약을 보관하는 약 상자를 열었더니 소화제가 있습니다. 근데 약 상자에 표기된 유효기간이 살짝 지났습니다. 이걸 먹어도 될까요.
 
#상황2.
아이가 열이 나서 해열제를 찾습니다. 시럽 약인데 사 놓은 지는 꽤 됐고 여러 번 사용했던 약입니다. 다행히 유효기간이 지나진 않았네요.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는 걸까요.
 
#상황3.
머리가 아파서 진통제를 찾았는데 박스는 어디 가고 없습니다. 게다가 예전에 먹은 부분은 떼 내고 두 알만 고스란히 남았네요. 이거 도대체 유효기간 파악이 안 됩니다. 아프니까 일단 먹는 게 나을까요.
 
이런 경험 많으시죠? 우리가 약을 사용할 때 빈번하게 접하는 상황일 겁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빵을 사 먹을 때 내 몸 생각해서 꼼꼼하게 챙기는 게 유통기한인데요, 약을 사용할 때도 우리 그러고 있나요? 이번 약 이야기에서는 평소 등한시하기 쉬운 약의 유효기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전성에 효능까지 보장하는 기간
약에도 당연히 식품의 유통기한과 같은 개념인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유효기한'이라고도 하고 '사용기한'이라고도 합니다. 식품은 먹어도 괜찮은, 즉 안전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면 약에는 안전성 외에 다른 개념이 하나 더 붙습니다. 바로 유효성이죠. 약의 효능이 보존되는지도 따지는 겁니다. 그래서 의약품의 유효기간은 효능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날짜를 말합니다.
 
우선 가장 궁금한 것이 유효기간이 지난 약의 사용 가능 여부일 텐데요. 물론 지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고 괜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효기간이 지난 약은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는 의약품국제규제협의체인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는 약의 유효기간(사용기한)을 "의약품의 용기·포장에 표시된 날짜로서 해당 제품이 허가(신고)된 저장 방법에 따라 보관됐을 때 허가(신고)된 품질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한"으로 정의하고 "이 기한이 경과한 뒤에는 해당 제품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날짜"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물론 기한이 지나도 괜찮을 수 있지만, 안전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 부분은 유효기간이 설정되는 과정을 보면 이해가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의약품의 유효기간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의약품 등의 안정성시험 기준'에 따른 안정성 시험 중 장기보존시험을 기준으로 정해진다고 합니다. 이 시험을 통해서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이 아무런 이상 없이 보존되는 최소한의 기간을 알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제약사는 이 기간에서 실온보관 의약품은 최대 2배, 냉장보관의약품은 최대 1.5배까지 신청이 가능합니다. 허가·표기된 유효기간에는 이런 부분이 이미 반영됐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시험을 통해 유효성분의 함량 기준이 95~105%를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을 통상적으로 유효기간으로 선정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대략 2~3년 정도입니다.
 
그럼 유효기간은 어디에 표기돼 있을까요. 우선 약이 포장된 박스(이차 포장) 겉면에 표기돼 있습니다. 여기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일차 포장에도 표기돼 있습니다. 연고제는 연고가 담겨 있는 튜브, 병으로 돼 있는 건 해당 용기, 알약은 블리스터(정제 또는 캡슐제가 통상 1회 투여 용량으로 개별 포장된 것)에도 표기돼 있습니다. 다만 블리스터 포장의 경우 한쪽 구석에만 표기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약을 사용한 부분을 떼어내면 확인할 수 없게 됩니다. 사용한 부분이라도 그대로 두는 것이 유효기간 파악에 도움이 되겠죠.
 

약을 개봉하면 달라지는 유효기간
근데 중요한 건 제품에 명시된 유효기간은 개봉하기 전 상태에서의 유효기간이라는 것이죠. 즉 개봉 후에는 사용가능기간이 달라집니다. 여기선 언제 개봉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개봉의 개념은 약이 포장된 상태에서 처음으로 외부 공기와 접촉한 시점으로 보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선 제품에 개봉 후 사용가능기간까지 명시돼 있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행히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한국병원약사회 질향상위원회에서는 '의료기관 내 개봉 의약품 관리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원내 조제(처방약)에 쓰이는 약이 대부분 대용량 용기에서 환자별로 조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병원에서 처방받아 약국에서 타오는 약(조제약)도 유효기간 개념이 아닌 개봉 후 사용가능기간의 개념이 적용됩니다.
 
개봉 후 사용가능기간은 당연히 약의 제형과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의료기관 내 개봉 의약품 관리 지침'에 따르면 경구용 약의 경우, 병에 많이 든 알약은 1년, 다량이 든 시럽 병은 6개월, 나눠 담긴 시럽 병은 1개월, 가루약은 제조한 날부터 6개월, 연고제도 6개월을 개봉 후 사용가능기간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일반약이나 처방약의 유효기간을 알 수 없을 경우, 약국에 문의하면 약국에서 소진된 약이라 할지라도 구입날짜, 제조번호, 처방 날짜 등을 근거로 약국의 구입내역과 대조해 유효기간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육안으로 품질을 확인하는 요소가 있으니 유효기간과 관계없이 이런 경우에는 약을 새로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움말: 고대구로병원 약제팀 임진우 주임약사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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