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혈당 사전에 알리는 ‘똑똑한’ 혈당측정기, 환자의 삶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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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혈당측정기와 당뇨병 관리

당뇨병 관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방심하는 순간 혈당 수치는 춤을 추고 그럴 때마다 환자는 뇌졸중·당뇨발·저혈당 같은 합병증의 불안감을 마주한다. 평생을 철저히 짜인 ‘식사·운동·약물’ 규칙을 지키는 것도, 매번 제 손을 찔러 혈당을 재야 하는 고된 과정도 환자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당뇨병을 제대로 관리하는 환자가 전체 5명 중 1명(20%)에 그치는 이유다.

최근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한당뇨병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당뇨병 분야 정밀의료의 현주소, 당뇨병관리 영역에서 사용되는 새로운 의료기술 등 당뇨병 치료 관리 전략에 대한 다양한 발표와 강연이 진행됐다. 박정렬 기자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치료 결과를 높이기 위한 ‘묘안'은 없을까.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당뇨병학회 국제학술대회(ICDM 2019)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의료기술들이 소개돼 주목받았다. 실시간으로 혈당 수치를 측정하는 연속혈당측정기가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당뇨병학회(ADA)가 당뇨병 표준 진료지침을 개정하면서 연속혈당측정(CGM)의 새로운 측정 기준을 포함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학회 발표를 위해 내한한 연속혈당측정기 ‘가디언커넥트 시스템’ 개발사인 메드트로닉의 헤더 랙키(Heather Lackey, 이하 Heather) 수석 글로벌 의학 교육 전문가와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김대중 교수(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 이하 김대중 교수)에게 연속혈당측정기의 이점과  당뇨병 치료·관리 전략을 물었다.

-올해 9회째를 맞은 'ICDM'은 내분비 분야에 대표적인 국제학술대회다. 준비된 발표·강연·부스가 다양했는데, 그중 당뇨병 관리를 위한 연속혈당측정기 등 새로운 의료 기술들이 참가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연속혈당측정은 기존 혈당 측정방식과 비교해 어떤 장점이 있나.
[김대중 교수] 기존에는 매번 손끝 등을 찔러 채혈한 다음 혈당기에 묻혀 결과를 확인했다. 이를 하루에 7~8번 반복해야 하는 환자도 있다. 아프기도 하고, 혈당측정기와 채혈 부분 소독을 위한 알코올 솜 등을 항상 휴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정부가 당뇨병 소모성 재료 요양비를 지원한다고 해도 불편함이 크니 환자들이 측정을 꺼리는 경우가 생긴다. 게다가 기존 혈당 측정 방식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혈당 수치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연속혈당측정기는 혈당 변화의 추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혈당 수치를 5분 간격으로 하루 최대 288번까지 알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고혈당과 저혈당 모두 주의해야 한다. 연속혈당측정기는 기록된 데이터를 통해 저혈당, 고혈당이 발생하기 전 알림을 받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심각한 상황에 빠지기 전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주대병원 김대중 교수(오른쪽)과 헤더 랙키(Heather Lackey) 메드트로닉 수석 글로벌 의학 교육 전문가. 프리랜서 인성욱


-당뇨병 관리에서 혈당 변화 파악이 중요한 이유는.
[Heather]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는 섭취하는 음식, 운동량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변화한다. 축적된 혈당 데이터를 추적하면 환자의 어떤 행동이 저혈당이나 고혈당을 유발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환자 개별적으로 치료, 관리 전략을 수립해 급변하는 혈당을 교정할 수 있다. 연속혈당측정기는 당뇨병 1형과 2형에 관계없이 혈당 관리에 고충을 겪고 있는 환자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미국당뇨병학회(ADA)의 당뇨병 표준 진료지침을 봐도 연속혈당측정이 혈당 관리의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1형 당뇨병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사용을 권장하고 2형 당뇨병 또한 저혈당과 고혈당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김대중 교수]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면 음식 섭취를 비롯해 활동량, 운동량 등 생활 전반에 따른 혈당 변화를 촘촘하게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세심한 관리가 가능하다. 예컨대 환자가 갈비탕을 먹으면 혈당의 변화가 크지 않은데, 국수를 먹으면 혈당이 급격히 올라간다고 하자. 이런 혈당 변화가 반복적으로 수집돼 의료진이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국수를 먹을 때는 미리 주사 용량을 조절해 고혈당에 대비하도록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헤더 랙키(Heather Lackey) 메드트로닉 수석 글로벌 의학 교육 전문가가 연속혈당측정기의 사용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인성욱

-미국에서는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이 보편화했나.
[Heather] 미국에서는 1형 당뇨병 환자 5명 중 1명(24%, 2017년 기준)이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 미만인 것으로 안다. 미국에서도 처음부터 연속혈당측정기가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항상 몸에 부착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환자에게 생소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중심으로 연속혈당측정기의 필요성과 가치가 공유되기 시작했고, 실제 환자들의 긍정적인 경험이 더해지면서 관련 시장이 확대됐다. 현재는 개인보험도 연속혈당측정기 비용 부담에 동의하고 있다.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 환자를 만나본 적이 있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하나.
[Heather] 사실 나는 제1형 당뇨병 환자로 현재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고 있다(웃음). 얼마 전 가족과 그랜드 캐니언으로 하이킹을 갔는데 약 10마일(약 16km) 이상의 거리를 하루 만에 완주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당뇨병 환자가 아닌 이들과 함께 이동했지만 부담이 없었다. 연속혈당측정기가 나의 혈당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 주고, 저혈당 발생 최대 한 시간 전에 알림을 보내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환자 본인뿐 아니라 함께 당뇨병 관리에 힘쓰는 보호자나 주변인에게도 혈당 상태에 대한 알림을 보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실제로 내 남편은 내가 한국에 와 있는 지금도 나의 혈당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김대중 교수] 연속혈당측정기를 통해 혈당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목표 혈당을 70-180mg/dL으로 정했는데, 200mg/dL 이상으로 올라가면 어떤 형태로든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연속혈당측정기로 파악하면 당뇨 환자가 스스로 음식 조절, 운동, 인슐린 투여 등의 방법으로 현재의 혈당을 목표치 내로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점차 목표 혈당 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혈당의 변화 추이가 안정되는 모습이 눈에 보이면 환자는 동기부여가 돼 더욱 혈당 조절에 신경 쓴다. 당뇨병 관리에 자신감이 붙고 더욱 적극적으로 생활해나갈 수 있다. 특히 소아 당뇨병으로 불리는 1형 당뇨병에도 이점이 큰데, 아이와 떨어져 있을 때도 보호자가 실시간으로 아이의 혈당 상태를 확인하고 알림을 받을 수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메드트로닉의 ‘가디언커넥트 시스템’(왼쪽 )은 몸에 붙이는 ‘CGM 센서’와 ‘가디언커넥트 송신기’로 구성돼 있다. 얇고 부드러운 ‘CGM 센서’를 복부나 엉덩이, 팔 등에 고정하면 피하지방 내 포도당 수치가 측정돼 결과가 ‘가디언커넥트 송신기’를 통해 스마트폰 등에 다운로드한 앱으로 전송된다. ‘가디언커넥트 송신기’는 동전만한 크기에 무게가 5g에 불과해 가볍다. 방수 기능이 있어 부착한 채로 수영, 샤워, 목욕이 가능하다. 센서는 한 번 부착하면 7일간 사용할 수 있고, 송신기 배터리는 충전식으로 센서를 교체할 때 충전해 사용하면 된다. 혈당 정보는 클라우드에 저장돼 있어 시간, 공간의 제약이 덜하다. 병원을 찾을 때 이를 토대로 의료진과 상담할 수 있다. 최대 5명까지 저혈당, 고혈당 등 혈당 경보 관련 문제 메시지를 24시간 전송할 수 있게 시스템을 갖췄다.


-연속혈당기의 장점이 다양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자가 적은 것 같다.
[김대중 교수] 의료진이 연속혈당측정기와 같이 당뇨병을 관리하는 새로운 기술이 있다는 점을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사용을 유도해야 확산될 텐데, 사실 국내 여건상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 환자의 어려움을 듣고 여러 부분에서 교육하는 시간이 확보돼야 하지만 진료 시간 자체가 짧지 않나. 당뇨병 관리는 의료진, 간호사, 영양사가 팀으로 움직일 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의료진이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를 하면, 간호사와 영양사에게 환자 개개인에 맞는 상담과 교육으로 후속 조치를 하는 식이다. 의사뿐 아니라 진료실을 나선 뒤 간호사, 영양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는 과정이지만 시간, 비용적인 보상이 미비한 터라 관련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Heather] 연속혈당측정기는 특별히 교육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이를 통해 축적된 혈당 데이터를 분석하고 치료 계획을 세워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의료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토대로 간호사, 영양사가 환자의 행동 교정을 비롯한 전문적인 교육을 시행해야 비로소 진정한 당뇨병 관리가 가능해진다. 미국에서는 연속혈당측정기가 처음 출시된 이후 13년에 걸쳐 이러한 당뇨병 관리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활동하고 있는 전문 당뇨병 교육자 수만 5만6000여 명이다.

아주대학교 내분비내과 김대중 교수는 "당뇨병의 치료, 관리를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도적으로 전문 인력과 교육 시간 확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리랜서 인성욱

[김대중 교수] 우리나라 당뇨병 진료 인원은 300만~350만 여명으로 적지 않은 수다. 이들의 수요에 맞는 전문 인력과 교육 시간 확보는 당뇨병학회 차원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시간과 비용이 투자돼야 하는 일이다. 미국에서 많은 수의 전문 당뇨병 교육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부분이 보험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당뇨병의 효과적인 치료, 관리를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도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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