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장기'는 간? 그보다 무서운 '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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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 박진석 교수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 박진석 교수

흔히 ‘침묵의 장기’라는 말을 들으면 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간 못지않게 침묵의 장기이면서 염증이나 암에 걸리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신체기관이 있다. 바로 ‘췌장(이자)’이다. 췌장에 발생한 염증, 특히 만성 췌장염은 췌장암의 원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췌장은 위의 뒤쪽(등 쪽)에 위치한 장기로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이자액이라고 불리는 췌장액을 분비하는 것이다. 이 액체는 췌관을 통해 십이지장으로 분비되는 무색투명의 액체로 하루 평균 1.5 리터 분비된다. 단백질 분해 효소, 지방 분해 효소, 탄수화물 분해 효소로 구성된 소화액으로 소화효소와 함께 탄산수소나트륨을 함유해 위산을 중화한다. 

두 번째 역할은 호르몬 분비다. 인슐린과 글루카곤을 분비하는데, 인슐린은 혈당이 상승할 때 분비된다. 포도당을 글리코겐이나 지방으로 바꿔 식후 고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반대로 글루카곤은 저혈당이 발생할 때 나온다. 간에서 글리코겐을 분해해 혈당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한다.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두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췌장이다.
 
췌장 기능 떨어지면 등 통증, 황달, 소화불량 발생
췌장에 이상이 생기면 당뇨, 급성 혹은 만성 췌장염, 종양(암)이 생길 수 있다. 만성 췌장암의 경우 췌장의 만성 염증으로 인해 췌장 조직이 위축되고 만성적인 복통과 당뇨를 유발하며 소화액 분비 기능이 감소한다. 보통 복부 초음파나 CT·MRI·내시경 초음파 등 영상의학적 검사 결과를 조합해 진단한다.

췌장의 기능이 떨어지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등으로 방사되는 명치 부위 통증이 심해진다. 식사하거나 누우면 심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체중이 감소하거나 황달이 생길 수 있다. 식욕 부진이 발생하거나 지속적인 소화불량을 겪기도 한다. 제산제를 투여해도 좋아지지 않고 병이 많이 진행됐다면 통증이 상당히 심해진다. 등 쪽이 아프다면 병원을 꼭 가야 하는 이유다.

췌장암을 일으킬 수 있는 만성 췌장염의 발생 원인은 다양하다. 유전적인 차이를 비롯해 고지방·고단백 위주의 식사나 안주, 술을 곁들여 먹는 식습관, 흡연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흔하고 중요한 원인은 음주다. 또 다른 주요 원인은 흡연이다. 음주와 함께 만성 췌장염을 유발하는 요인이며 그 자체가 발생 원인이 된다. 췌장염으로 인한 사망률과 췌장암 발생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음주를 즐기는 사람은 흡연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한 위험 요인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술·담배 끊고 고단백·고지방식 피해야

만성 췌장염 환자의 치료는 통증과 영양 흡수 장애를 개선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음주는 반드시 피해야 하며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소화 장애를 유발할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 만약 췌관에 협착이 있다면 내시경적 췌관 스텐트 삽입이나 부분 절제술을 통해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군데에 국한돼 있지 않다면 효과가 낮을 수 있다. 이럴 땐 췌관의 압력 자체를 낮춰주거나 체외충격파 쇄석술, 내시경적 췌석 제거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치료할 땐 합병증에 주의해야 한다. 당뇨 치료 역시 중요하다. 만성 췌장염과 당뇨가 함께 있는 환자는 사망 확률이 높아진다. 저혈당이 유발되는 합병증을 피하기 위해 너무 엄격히 혈당을 조절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과 세심하게 상의한 후 치료에 나설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만성 췌장염을 예방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법은 아직 없다. 과도한 음주와 흡연, 고단백·고지방 위주의 식사를 피하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라 할 수 있다. 환자는 반드시 술·담배를 삼가야 한다. 술을 끊으면 통증도 유의미하게 감소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지속해서 복용하는 환자는 중독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비마약성 진통제로 조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췌장은 간 못지않은 침묵의 장기다. 이미 암으로 진행되면 손 쓸 도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강관리에 항상 힘쓰고 약간의 통증이 있더라도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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