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상처가 빨리 아무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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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개한테 물렸을 때 응급처치법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반려견 1000만 시대라고 합니다. 개를 키우는 가구·사람은 계속 많아지고 있죠. 이젠 거리나 공원에서 반려견을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반려견이 늘다 보니 자연히 개에게 물리는 사고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귀엽다고 섣불리 만지다가 물리고, 반려견 사이의 싸움을 말리다 물리기도 합니다. 개한테 물리면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죠. 전에 약 이야기에서도 상처 치료에 대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약 이야기]상처에 소독약·연고부터 바르지 말고 습윤밴드 붙이세요'참고). 하지만 물린 상처는 일반적인 상처와 개념이 좀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한테 물렸을 때 응급처치법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감염률, 일반 상처의 8~9배
 
상처에는 어떻게 생기게 됐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외부의 물리적 충격으로 조직에 손상을 입은 것을 '타박상'이라고 하죠. 맞거나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생깁니다. 반면 마찰로 인해 피부 표면이 긁힌 상처는 '찰과상'이라고 합니다. 반면 '창상'은 외부 압력으로 조직의 연속성이 파괴되는 상처를 말합니다. 칼에 베인 상처가 대표적입니다. 창상 중에서도 찔려서 생긴 것은 또 '자상'이라고 하죠. '열상'은 피부가 찢어져 생긴 상처입니다.
 
그럼 개에게 물려서 생긴 상처는 뭐라고 할까요. 바로 '교상'입니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에게 물려서 생긴 상처를 말합니다. 다른 상처와 교상이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감염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감염률이 일반 상처의 8~9배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어차피 피부가 찢어지거나 긁힌 상처인 건 마찬가진데 뭐가 그리 다를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염 위험이 큰 이유는 바로 구강 내 세균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의 입속에도 많은 종류의 세균이 존재합니다. 보균체에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균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에 감염과 질환을 유발하는 병원성 세균도 있죠. 일반 화농균 이외에도 혐기성 세균(파상풍균 등) 감염으로 인해 파상풍, 화농성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개 구강 내 세균 분포 사람과 달라…인수공통 병원체 발견
반려견의 구강 내에 존재하는 병원성 세균이 다양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은데요. 드물지만 반려견 구강 내에 있는 세균 분포를 엿볼 수 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10마리의 반려견과 그 주인의 구강 내에서 시료를 채취해 세균총을 비교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구강 내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세균의 종류(생물분류 체계상 '속')는 사람의 경우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43.9%), 나이세리아속균(Neisseria, 10.3%), 헤모필루스속균(Haemophilus, 9.6%), 프레보텔라속균(Prevotella, 8.4%), 베이요넬라속균(Veillonella, 8.1%) 순이었습니다. 
 
반면 반려견의 경우 방선균(Actinomyces, 17.2%), 미확인(16.8%), 포르피로모나스(Porphyromonas, 14.8%), 푸소박테리움(Fusobacterium, 11.8%), 나이세리아속균(7.2%), 파스퇴렐라속균(Pasteurella, 4.9%) 순으로 구강 내 세균총을 구성했습니다. 이중 나이세리아속균은 화농을 일으키는 균으로 수막염과 임질의 원인균이 여기에 속합니다.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파스퇴렐라속균인데요. 여기에 속하는 파스퇴렐라물토시다균의 경우 개에게 물리는 경로를 통해 감염을 일으켜 사람에게 패혈증, 화농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유명인의 개가 이웃을 물어 그 사람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연구자는 논문에서 "개의 구강 내에는 다양한 잠재적인 인수공통 병원체가 발견됐다"며 "공중보건학적으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경고하기도 했죠. 
 

실제로 전문가들도 감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일반 상처보다는 처치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개에게 물려 상처가 생겼을 경우, 먼저 흐르는 물에 씻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거즈로 감싼 뒤 병원 응급실이나 외상외과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거즈가 없다면 깨끗한 수건도 괜찮습니다. 일반적인 상처는 소독약으로 상처 주변을 소독하고 항생제 연고(후시딘, 마데카솔 등)를 바른 뒤 습윤밴드를 붙이는 것이 정석입니다. 물론 이 정도의 처치로도 괜찮은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교상의 경우 자가치료보다는 병원 치료가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감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어떤 균이 위험균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개에게 물린 상처는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손상이 더 심할 수 있다는 점도 우선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상처가 아무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균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아물면 급속도로 감염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개에게 물려 찢어져 꿰매야 하는 정도의 상처라도 바로 꿰매지 않습니다. 지혈하면서 소독과 드레싱, 항생제 주사 및 복용약으로 균의 활성화를 차단한 뒤에 봉합을 진행하거나 자연히 아물도록 합니다. 물린 뒤 12~24시간이 지나야 봉합을 할 수 있습니다. 
 

개에게 물리면 우선 광견병 걱정을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현실적으로는 광견병 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광견병 백신을 맞거나 위험성이 없는 개들만 사람을 무는 것은 아니죠. 지역과 환경에 따라 신원이나 백신 접종 여부를 파악할 수 없는 개에게 물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신을 문 개를 약 2주 정도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의 광견병 잠복 기간이 14일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에 자신을 문 개에게서 평소보다 공격성, 소리에 대한 과민반응, 흥분 상태, 침을 질질 흘리는 증상이 심해지는 등 광견병 증상이 나타나면 광견병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근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보다는 물리지 않는 것이겠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움말: 고대구로병원 응급의학과 조영덕 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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